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채윤 Mar 06. 2024

꿈을 이룬 재첩국

아직도 나에겐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위로의 해장국

위로의 해장국

 나는 재첩국 하면 경남 하동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몹시 귀엽고 작은 조개가 맛은 엄청난 매력을 가진 것이 바로 재첩국이다. 재첩은 탕이 일품이지만 부침개로 무침으로 먹어도 그 맛이 훌륭하다. 바다 조개와 다른 민물조개 특유의 풍미를 싫어하는 사람을 아직까지는 보질 못했다.


 섬진강 재첩국은 이미 유명한 향토 음식이라서 남녀노소 아무 때나 먹는 음식이지만 해장국으로도 몹시 훌륭한 음식이다. 간 기능을 개선시켜 주니 숙취 해소에도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경상도 사람들은 재첩을 '조개류의 보약'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늦은 나이에 조리 대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그래서인지 맛의 고장으로 현장 체험 학습도 많이 다녔다.

조리 전공 학부이다 보니 당연히 지역의 맛집을 투어 하는 것도 중요한 일정 중 하나였다.  어려서부터 요리를 배웠던 학생들 틈에 끼어 배우다 보니 부족함도 느끼고,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었다. 그래서 학교 행사라는 행사는 웬만하면 다 참석했다. 참으로 열심히도 따라다녔다. 어쩌면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열심히 따라다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게 참 그랬다. 그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괜스레 어린 학생들 틈에 끼어 있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선뜻 먼저 젓가락질을 하지 못했고, 더 먹고 싶지만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낮에 미처 다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럴 때마다 꼭 다시 가서 원 없이 먹고 오리라 다짐을 하고는 했다. 나의 음식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식을 줄 몰랐다.     


 그렇게 다시 찾아간 곳 중 한 곳이 바로 하동의 재첩국집이었다. 눈에 아른거리던 음식을 먹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나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현장 체험 학습을 따라다녔던 만학도 대학생이 이제는 그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만학도로 왔던 이곳에 그 학교에 교수자로서 다시 오게 된 것이다. 재잘대던 상큼한 학생들 틈에서 부단히 도 노력했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나 하동에는 특강을 겸하여 오게 되었다. 지난 추억을 생각하면서 먹는 재첩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원하고 담백하였다. 그때는 학생 신분이라 술 한잔 곁들일 엄두도 못 냈었지만, 지금은 반주로 소주도 한 잔 마신다. 재첩국뿐만 아니라 재첩 회무침과 재첩 전까지 한 상 가득 메워놓고 무얼 먼저 먹지라는 행복한 표정도 함께다.     


 함께 갔던 친구와 재첩국 맛집 리스트를 뽑고 근처 관광지를 살펴보면서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에 진심이고 조금은 우스꽝스럽기도 한 내 모습에 친구는 아낌없이 응원하고 공감해 주었다. 반주를 곁들인 후 나누던 대화라 많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쏟아져 나왔다. 그때는 재첩국 한 그릇이었지만, 지금은 재첩 정식을 한 상 가득 앞에 두고 무척이나 행복했었다. 무엇보다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만큼 마음껏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았다.      


 여기까지 오기에 어쩌면 집착스러운 음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더 알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것 같기 때문이다. 음식을 더 알고 싶었기에 계속 공부를 했고, 함께 하고 싶었기에 배움을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마음은 변함이 없다. 사람이 함부로 장담하는 게 아니라고 하던데, 이거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영원히 음식을 위한, 음식에 의한, 음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갈 거라는 것이다.     


 이렇게 재첩국 하나로 나의 히스토리가 이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1박 2일의 여정 중에 세끼를 재첩국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맛이었고, 특별한 의미가 담긴 맛이기도 했다. 심지어 돌아오는 길에는 재첩국팩을 포장해 돌아왔다.


 집에서도 맛있게 먹긴 했지만 하동에서 먹었던 만큼의 감동은 느껴지질 않았다. 역시 그 지역의 맛은 그 지역에서 직접 맛보아야 하나 보다. 그렇게 하동은 내가 가장 애정하는 지역 중 한 곳이 되었다. 사실은 재첩국 사랑이겠지만 말이다.     


 다시 온 하동에서 먹은 재첩국 한 그릇은 나에게 또 한 번 초심을 일깨워주었다. 그로 인해 다시 힘내서 살아갈 용기를 재첩국처럼 담백하게 전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는 드라이브 삼아 하동으로 재첩국을 먹으러 간다. 당분간 재첩국에 대한 나의 사랑도 지속될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도 나에겐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요리대회 금상을 안겨준 추어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