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전쟁>, 1894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검은 말과 함께 땅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분홍빛의 구름과 나무가 그 뒤로 펼쳐져 있다. 환상적인 화면과 부드러운 질감 묘사가 더해진 작품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다.
그런데 작품의 하단, 땅 부분을 다시 살펴보면 해석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체의 인간들이 쓰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있으며 신체가 절단되어 있다. 까마귀들은 죽음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다. 구름은 마치 피에 물들어 있는 듯 보이고, 앙상한 나무들이 즐비한 배경은 황량해 보인다.
다소 몽환적이면서 기괴한, 잔혹동화를 연상케 하는 이 그림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1894년 작 <전쟁(La guerre)>이다.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앙리 루소는 주말에만 그림을 그려 ‘일요일의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일러스트 같은 독특한 표현방식과 조형을 사용한 작가였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스타일을 사용한 그는 항상 칭송과 비난이라는 이중적인 평가를 받았다.
앙리 루소가 1894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전쟁>은 1870-1871년에 벌어졌던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보불전쟁)을 주제로 그려졌다. 전쟁 이후 50년이 지나 그려진 작품인 것이다. 앙리 루소가 작품을 그리던 시기 까지도 전쟁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이 도처에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프랑스의 역사에서 보불전쟁은 국민에게 큰 불만과 상처를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알자스 로렌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소설 ‘마지막 수업’은 보불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의 씁쓸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보불전쟁에서 항복한 프랑스 국민들은 큰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고, 이에 국가주의, 애국주의, 인종주의가 득세했다. 앙리 루소의 눈에 전쟁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휩쓰는 절망의 폭풍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보불전쟁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한 작가들은 많았지만, 앙리 루소의 작품은 당대의 아카데미즘적 화풍과 달랐다. 그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표현을 통해 전쟁을 표현했다. 이는 아름다워 보이면서 한편으로 기괴하다.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의 독일 제국 선포식을 묘사한 <독일 제국 선포식>과 달리, 앙리 루소는 전쟁 영웅이나 군주를 그려내지 않았다. 그는 가장 비현실적인 표현으로, 가장 현실적인 전쟁의 파괴성을 그려냈다.
“검은색의 신비로운 말이 지나간 어디든 불행은 덮쳤고, 범죄는 저질러졌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전쟁, 그것은 지나갔다, 끔찍하게, 도처에 절망, 눈물, 파괴를 남겨놓은 채”
갈등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 또다시 그 화살은 서로를 상처 입히는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앙리 루소는 바로 이러한 분쟁을 강하게 비판했다.
엔젤라 벤첼은 ‘Mercure de france’에서 “루소의 전쟁에는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의 진면목을 그려낸 루소는 진정한 예술가이다.”라고 평가했다.
죽음도, 영웅도 한순간에 불과한 전쟁은 결국 상처와 공포를 깊이 새긴다. 전쟁은 - 그리고 모든 폭력은 - 지나간다.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과 순간들 또한 결국 시간과 함께 우리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그 아래에서 상처 입은 삶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