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자리, 다시 채워지는 빛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달빛처럼 타올랐다. 희영은 그 빛 아래서 오늘도 하루를 늘려 쓰고 있었다. 유튜브로 공부음악을 틀어둔 지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파란색 스케줄러에는 공부해야 할 과목들의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 위에는 ‘할 일은 한다.’ 같은 매일의 다짐이 짧게 쓰여있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지만, 때로는 자신에게만 하루가 28시간쯤 되었으면 싶었다. 시계 초침은 하루가 지날 때마다 더 빠르게 달려가는 것만 같았다.
책상 옆 구석에서, 열여섯 살 된 노견 달이 느릿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늦은 밤, 혼자만 깨어있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 존재였다. 한때는 집안 구석구석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달이, 숙제노트를 물어뜯기도 하고 공부하는 자신에게 와 놀자고 헥헥 웃곤 했던 달이. 이제는 낡고 색 바랜 그의 침대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희영은 문제집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귀에는 달의 거친 숨이 들려왔다. 달의 숨소리는 이제 하루가 다르게 절박해지는 것 같았지만 문제집 위에 줄줄이 남아있는 빈칸이 눈에 밟혔다. 한숨을 쉬는 듯한 그렁거림이 이어지자 희영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었다. 이젠 꼬리도 잘 흔들어주지 않지만 잠시 눈을 뜨고 희영을 바라보는 달을 보며 미소 지었다.
’ 이번 시험만 끝나면 산책 가자. 내가 안아서라도 데려가줄게.‘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펜은 멈추지 않았다.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뒤편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설이가 보였다. 올려 묶은 긴 머리, 짙은 눈썹과 동그란 눈매, 야무진 입술. 치마는 불편하다며 등교하자마자 체육복바지로 갈아입는 설이는 이번 학기 희영의 짝꿍이 되었다. 설이와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지만,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다. 단지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단순히 운동을 즐기는 게 아니라 체육 교사가 되고 싶다는 설이의 꿈을 알게 된 것이다. 국어교사가 되고 싶은 희영의 마음과 닮아,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함께인 것에 괜히 반가웠다.
중간고사가 끝난 날, 반 친구들은 근처 뷔페에서 뒤풀이를 하기로 했다. 모두가 들뜬 마음으로 음식을 담아 오느라 분주했지만, 설이는 좀처럼 자리에 웅크려 앉아 일어나지 않았다.
“설이야, 너는 안 가져와?”
희영이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으며 설이에게 물었다.
“배가 너무 아파.”
설이는 배가 움켜잡고 이내 테이블에 엎드렸다. 친구들의 웃음소리 속에서도 걱정스러운 시선이 오갔다. 담임은 엎드린 설이 곁에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고, 곧 설이는 엄마와 함께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설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희영의 옆으로 와 함께 이야기했지만 누구도 그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았다. 빈자리에 하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다들 조심스러웠다.
“몸이 많이 안 좋은 것 같다. “
담임선생님은 그 말만 되풀이했다.
두 달 뒤, 기말고사. 여전히 희영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시험을 치르지 못하면 내신 성적도, 입시도 어려울 텐데. 희영은 설이의 입시가 걱정되긴 했지만 모두가 수험생인 지금, 빈자리를 염려할 여력은 없는 것 같았다. 문제집의 빈칸은 여전히 무거웠다. 시간은 더욱 각자를 옭아맸다. 여름방학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다들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각자의 걱정에 매달리느라 빈자리는 빈자리대로 멈춰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 달이 쓰러졌다. 달이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입에선 구토가 흘러나왔다. 노견이기에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던 터라, 가족들은 언제나처럼 괜찮아지길 바랐다. 하지만 달은 자리에 누워 가쁜 숨소리를 뱉어냈고 몇 시간이나 꿈쩍하지 못했다. 온몸이 떨리는 달을 끌어안으며 희영은 혈변을 닦아냈다. 옆에 앉아 머리부터 등까지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지만, 달은 그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힘겹게 일어선 달이는 희영을 한번 바라보고는 털썩 다시 쓰러졌다. 희영은 달 이를 안고 거친 숨을 받아냈다. 달의 눈빛이 희미하게 꺼졌다. 멍한 두 눈만이 덩그러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동물병원은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는 무력감이 몰려왔지만, 동시에 주말이었기에 자신이 집에 있었다는 사실이 위안처럼 다가왔다. 희영은 달을 혼자 떠나보내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지켜줄 수 있었다는 사실만이 가슴 깊은 곳에서 작은 안도가 되었다.
그날은, 달이 지는 날이었다.
희영은 서랍에서 달의 목걸이를 꺼냈다. 날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노견의 냄새.
방학 내내 희영은 공부로 꽉 찬 하루를 채우려 애썼다. 장마가 끝나고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날들이 지날 때까지 희영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달의 빈자리가 불쑥 떠오를 때마다 책을 보다가도 눈물이 났다. 늦은 밤까지 옆을 지켜주던 존재는 더 이상 없었다. 달의 이름처럼 하늘에 떠있는 달, 달이가 남긴 물건에서 느껴지는 냄새만이 그리움을 덜어주는 흔적들이었다. 희영은 목걸이를 다시 제자리에 넣고 펜을 쥐었다.
새 학기가 되어 교실 문을 열었다. 여전히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치던 중 곧 선생님과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낯선 인물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씨끌씨끌했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설이었다. 희영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설이의 통통했던 볼은 푹 꺼지고, 긴 머리 대신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발그레했던 얼굴은 생기를 잃은 것처럼 희게 바래고 푸석했다. 더없이 마르고 힘없는 모습에 반 아이들 모두 하던 대화를 잇지 못했다. 아무도 병명을 묻지 않았지만 모두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설이는 자리에 앉는 것도 힘겨워했다. 뼈만 남았다는 말이 제대로 어울릴 법한 가느다란 손가락은 의자를 당기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희영은 이후 옆에서 매번 설이의 의자를 끌어주고, 책상을 당겨주고 가방을 걸어주었다. 설이의 사물함에서 대신 꺼낸 책들을 책상에 올려주고 집에 가기 전엔 다시 정리해 주었다. 이 모든 일들이 사소한 일이지만, 손길이 닿을 때마다 달의 기억이 떠올랐다. 작은 숨소리, 때론 책상에 엎드려 미동 없는 모습에서 달이가 보였다. 설이의 가방을 들고 교실로 걸어갈 때마다 달의 나지막한 발소리가 겹쳐 들려오는 듯했다.
희영은 조심스레 물었다.
“힘들지 않아?”
그럴 때마다 설이는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애쓰는 설이의 모습은 달이의 마지막 일으킴과 비슷해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 있었음에도, 결국 해준 것이 없다는 후회가 솟아올랐다. 달에게는 해주지 못한 것들을, 설이에게 해주고자 했다. 희영은 그렇게 입시에 치여있는 나날의 틈새에서 설이를 챙겼다. 설이를 살피는 일이 달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입시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또 다른 위안이 되고 있었다. 어쩌면 설이의 곁을 챙기는 매 순간, 달의 빈자리가 덜 아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축하해, 희영아.”
합격 소식을 확인하고 돌아온 날, 설이는 웃어 보였다. 희영은 합격이 기뻤지만 설이의 말에 마음 한쪽이 젖어드는 걸 느꼈다. 기쁨은 반쪽뿐. 미안함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설이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아주 짧았다. 그리고 여전히 설이는 의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난 내년에 재수하려고.”
설이가 힘을 주어 입술을 다물었다가, 곧 희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고 싶어. 나중에 꼭 학교에서 다시 만나자. “
설이는 희영을 안심시키려는 듯 희영의 눈을 바라봤다. 설이의 눈빛에서 작지만 확실한 빛을 보았다. 그리고 결국 눈물이 터졌다.
내년엔, 내가 널 챙겨줄 수 없는데.
달과 설이가 마음속에서 포개졌다. 희영은 설이의 손등 위에 자기 손을 겹쳐 올리고 싶었지만, 그저 눈을 마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복도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얇게 걸린 달빛이 공기를 타고 내려와 희영의 얼굴을 감쌌다. 희영의 마음에도 지난날 떠나간 달이 걸렸다.
하늘에 걸려 있는 달, 힘겹게 꿈을 쥐고 있는 설이, 아직 치유되지 않은 자신. 희영의 마음이 흔들렸다. 희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위안했다.
“다 괜찮을 거야.”
달이 지던 날보다, 내일은 조금 더.
힘겹던 십 대의 시기에 갑자기 사라졌던 존재, 설이
사라짐으로 나를 힘들게 했던 존재, 달이.
그 둘을 엮어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시작하겠다던 설이, 지금도 잘 지내고 있기를
그리고 달, 여전히 너를 떠올리면 가슴이 저리다.
언젠가 다시 만나자.
그날, 나는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게.
<“모두들 안녕하시길.”의 연재를 마치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기를,
안녕이라는 말이 다시 만나자는 인사이기를 바란다.
“모두들 안녕하시길.
그 말 안에 나와, 너와, 우리가 함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