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해지지 않는 자리에서

답 없는 기도, 남은 질문

by 김채이





어릴 적부터 성당은 내 주말의 일부였다. 모태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늘 엄마 손을 잡고 제단 앞에 앉았다. 높은 천장과 뻗어있는 창들, 이 오래된 건물의 향은 은은히 배어 있었고, 제대 위의 촛불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며 기도문보다 길게 내 시선을 붙잡았다. 합창단의 목소리는 천장에 맴돌다 천천히 잦아들었고, 내 무릎 위엔 성서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내 손목의 묵주가 이리저리 튕겨 다니듯, 이곳은 나에게 그저 주말의 일상이었을 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어린 나는 그저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과 뛰노는 유치원 같은 공간이라 생각했다. 초등부에 올라가 미사에 참여하고 주일학교에 다녔지만, 그마저도 놀이터의 연장선 같았다. 미사 중간에 일어나고 앉아야 할 때면 귀찮기만 했고, 교리 수업에선 졸음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기도는 늘 흉내에 불과했다. 두 손을 모으고 입술을 움직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마음 깊이 무언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없었다.


성당으로 들어서는 길가엔 성모마리아상이 있었다. 푸른 나무 사이에 하얗게 서 있던 그상 앞에서 사람들은 잠깐 멈춰 묵주알을 굴리거나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나는 늘 지나쳤다. 사춘기 무렵이 되자 그 자리는 나에게 더없이 어색했다. 친구들 앞에선 종교가 없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예수쟁이’라는 말보다 차라리 ‘무교’라는 이름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 시절, 형도 어느 날부터 성당에 오지 않았다.


형은 일곱 살 위였다. 내가 중학교에 막 입학할 즈음, 그는 군대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형은 예전의 형이 아니었다.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형의 삶은 술로 물들어 갔다. 가방 속에 숨겨둔 소주병, 휘청이는 발걸음, 독하게 몸에 배어든 냄새. 때로는 몸을 가누지 못해 부모님이 부축해야 했고, 책상 아래엔 빈 병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형은 집에 들어오면 혼자 라면을 끓였다. 술냄새를 풍기며 라면을 끓이는 뒷모습을 볼 때면 라면냄새마저도 술냄새를 풍길 것만 같았다. 부모님은 고함과 울음을 오갔고, 형은 술기운에 욕설을 퍼부었다. 한때 씩씩하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점점 말라갔고, 통통하던 얼굴은 푸석하게 무너졌다.


나는 그 무너짐을 바라보면서도 형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는 공부를 이유로 형을 외면했고, 부모님은 막내인 나를 더 챙겼다. 형은 어쩌면 홀로 남겨져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알고도 애써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형과 식사할 때마다 떨리는 손가락 끝을 마주했고 형과 대화할 때마다 눈빛에서 초점이 흐릿해지는 걸 보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형이 망가져 가는 동안 나는 도망쳤던 걸까, 아니면 버틴 걸까.



집안의 공기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내 발걸음은 이상하게도 성당으로 향했다. 도망치듯 달려가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끝에서 묵주알이 구르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렸다.


“형을… 형 좀 구해주세요.”


그러나 형은 하루가 다르게 더 망가졌다. 기도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어느 날 미사에서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하느님, 오늘도 함께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 언젠가 그분이 함께하심을 알게 됩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기도를 따라 했지만, 형의 손이 바르르 떨릴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하느님이 정말 함께하신다면, 왜 형은 그렇게도 무너지고 있는 걸까.


나는 신부님을 찾아가 고해했다. 작은 고해실 안, 커튼 너머 어둠 속에 목소리를 눌러 담았다.


“신부님, 제가 형에게 잘못한 게 있나 봅니다. 형이 무너질 때 저는 옆에 있어주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저를 더 챙기셨고, 형은 다 컸다고 외면당했던 것 같아요.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가 용서를 받으면, 형도 나아질까요? 술을 끊을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짧은 침묵. 그 사이 내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이윽고 신부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변화가 올 겁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물었다.

정말 그렇게 믿으시나요?

이 종교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가요?

형도, 나도 구해주지 못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니 형은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켜진 텔레비전은 소리를 죽인 채 푸른 불빛만 흘려보냈다. 그 빛은 형의 뺨을 스쳐 지나가며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림자를 비추는 듯했다. 방 안 가득한 술 냄새가 내 숨을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형에게 다가가 물었다.


“형… 형은 왜 살아?”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형은 자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또렷한 대답 같았다.


문득 떠올랐다. 술에 절기 전, 형이 가끔 보여주던 웃음. 함께 농구를 하고 공원을 달리던 여름 저녁. 공을 튕겨대며 날쌔게 몸을 움직이던 형, 내 옆에서 걸음을 맞추며 달려주던 형의 모습이 선명하다. 그러나 지금, 내 앞의 형은 그 모든 시간을 부정하듯 침묵만 흘리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다시 성당으로 달려갔다. 기도해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데 왜 기도해야 하냐고, 이제 더는 기도하지 않겠다고 성당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몇 걸음도 채 못 가 멈춰 섰다. 뒤돌아본 순간, 성모 마리아상이 보였다. 가지 말라는 듯, 고요한 시선으로 나를 붙잡았다.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

나는 그 자리에 무너져 다시 무릎을 꿇었다. 참아왔던 울음이 터져 나왔고, 어깨는 들썩이며 떨렸다. 콧속을 파고드는 밤공기와 젖은 흙냄새, 어두운 하늘에 퍼진 성당의 빛까지 모두 눈물에 뒤섞여 흐려졌다. 숨은 넘어오다 막혀왔고, 목구멍에서 어린아이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까.

왜 하느님은 나를 모른 척하시는 걸까.

나는 지금 누구에게 울고 있는 걸까.’


무릎은 차가운 돌바닥에 눌려 저려왔지만, 그 아픔조차 내 것이 아닌 듯했다.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눈앞의 흰 마리아상뿐이었다.


얼마 뒤, 따뜻한 손길이 내 어깨에 닿았다. 순간, 내 몸은 더 격렬하게 흔들렸다. 고개를 들자 신부님이 서 계셨다. 언제부터 내 울음을 듣고 계셨던 걸까.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곁에 서 있던 사람. 신부님은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복하셨다.


“괜찮다, 괜찮다.”


그 목소리는 짧고 낮았지만, 성당 안 가득 울려 퍼지는 합창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나는 한참 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울음 속에서 오히려 미세한 숨결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 울음을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무너져 내리는 나를 붙잡아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주저앉았다.



지금도 나는 성당 의자에 앉아 있다. 기도란 현실을 바꾸는 주문이 아니라, 무너지는 순간에도 나를 부서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또 다른 손길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해 묻는다.


“저는 왜 살고 있나요.

그럼에도, 이렇게 묻고 있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겠지요.”


성모마리아상은 여전히 푸른 나무 사이에 서 있다.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반면 형은 여전히 방 어딘가에서 술에 기대어 있을 것이다. 손끝은 떨리고, 텔레비전은 소리 없이 푸른 불빛만 흘리며 방 안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변치 않고, 다른 하나는 무너져 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 앉아, 두 세계를 오가듯 질문을 반복한다. 구하지 못하는 자리, 그러나 여전히 돌아올 수밖에 없는 자리. 떠나겠다고 발걸음을 돌리면서도, 나는 또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문득 깨닫는다. 내 기도는 형을 구해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도 끝에 붙잡힌 건 나 자신이었다. 무너지는 집에서 도망쳐 이곳으로 달려와 울부짖은 끝에, 살아남은 건 결국 나였다.


나는 아직도 살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질문 끝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본 글의 인물과 사건들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했으나, 여러 파편을 엮어낸 창작소설임을 밝힙니다.


예전 한 제자가 종교의 가장 큰 가치를 묻는 질문에, 단 한 글자를 적었다.

“HOPE.”


그 대답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구해지지 않는 자리, 답 없는 기도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질문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

아마 그것은, 희망 때문이다.


나는 바란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