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향

바다 위, 부유하는 이름

by 김채이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계신다. 치매가 시작된 지는 몇 년 됐다. 밤마다 거실엔 똑같은 발자국 소리가 맴돌았다. 화장실을 찾아 서성이는 걸음은 제자리에 기웃거렸고, 할머니의 흔적은 오래 지워지지 않는 얼룩 같았다. 알려줬던 것도 곧잘 잊어버려 같은 질문을 반복했고, 잠시 옆에 앉아있다가도 내가 일어서려하면 되게 갑자기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 예측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집안의 공기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할머니의 덩치는 작아졌고, 작은 발은 자꾸 흔들리며 바쁘게 움직였다. 겉보기엔 여전히 빠른 걸음 같지만, 그 안에는 예전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목소리와 손길에 늘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힘마저 잦아든 듯했다. 할머니의 방안엔 무엇도 쓰이지 않은 이름표들이 흩어져 있는 듯했다. 낡은 가구와 사진틀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지만, 주인 없는 표정들만이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매일 돌본다. 밥을 차려 드리고, 약을 챙기고, 씻기는 일까지. 고단한 간병을 시다 시간이 나시면 집 앞 바닷가를 산책하러 가신다. 그렇게라도 하루의 답답함을 바다의 파도소리와 바람에 흘려보내는 것이다.

해변에서 바짓단을 올리고 맨발로 물을 찰방이며 걸다 보면, 내 발은 통통하고 큼지막하다. 그런데 옆의 엄마 발은 어느새 더 작아지고 쪼글 해져 있었다. 할머니를 볼 때 느껴지는 불안감보다,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마음 깊은 곳을 누른다.


다른 가족들도 가끔 들른다. 삼촌은 시계를 흘끗 보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고모는 봉투에 담아 온 과일을 부엌에 내려놓은 뒤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그들의 입에서는 빠지지 않고 “고생 많다”는 말이 흘러나왔지만, 그것은 인사말에 가까웠다. 잠깐의 방문이 지나가면 방 안엔 곧바로 정적이 내려앉았고, 눌린 듯한 공기만이 남았다.


나는 안다. 엄마가 젊은 날 이 집에 시집왔을 때부터 할머니에게 호된 시집살이를 당했다는 걸.


“네가 우리 집에 온 걸 고맙게 생각해라.”


할머니는 아빠가 승진할 때마다 이 한마디를 엄마에게 내뱉었다. 손님 앞에서는 며느리 덕을 본다며 자랑했지만, 정작 엄마에게는 인정하지 않았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네 엄마 좀 봐라” 하며 우리 앞에서 엄마를 흉보았다. 그렇게 엄마의 삶은 늘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부유했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의 첫 상담에서 학교 선생님이 “지한이는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좋겠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 끝에 맴도는 말은 하나였다.


‘전혀 좋지 않다고요.‘


이젠 발을 담그기 힘들 만큼 차가워진 바닷가, 엄마와 나는 모래에 발을 스치며 걸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여러 칸의 팔레트 속 물감이 하나로 섞이듯 푸른빛은 한 평면을 이뤘다. 그리고 어느덧 어둠에 덮여 등대와 어선의 빛만이 그 존재를 내비쳤다.

엄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파도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오래 묵힌 한숨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내뱉었다.


“나이 들어서까지 내가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말은 파도소리보다 낮았지만, 더 깊이 울렸다. 할머니의 뇌에 부유하는 기억들은 휩쓸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파도처럼 가족들에게 부딪혔다. 할머니가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것처럼, 엄마도 역시 자신의 삶을 잃어가고 있었다.

간병의 세월이란 그런 것이었다.

큰 덩치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나를, 사람들은 듬직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는 엄마의 무너짐 앞에서 그저 조용히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에 불과했다.

나는 문득 서글픔에 어린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할머니는 낯선 사람처럼 우리를 바라봤다.


“너는 누구냐.”


동생을 향한 말이었다. 아빠에게도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아빠는 눈을 크게 떴다가 곧 고개를 숙였다. 모셔야 한다며 고집을 부르던 장남의 자리였지만, 정작 자신을 몰라보는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억지로 지켜온 의무가 한순간 허물어지는 듯, 방 안엔 더 깊은 정적이 깔렸다.


그리고 엄마를 보자, 할머니는 멈칫했다. 눈빛이 흔들리더니, 또렷하게 말했다.


“우리 며느리.”


엄마의 손이 허공에서 굳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억울했고, 또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말도 할 수 없이 그저 숨만 오래 붙들고 있었다. 시집살이로 울던 엄마를 떠올리는데, 그 엄마만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집에서는 늘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러웠지만, 회사에 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달랐다. 운동화보다 구두를 더 좋아하던 엄마가 집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비춰볼 때, 항상 얼굴엔 미소가 있었다. 쾌활하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회사에서 돌아온 뒤에도 남은 일을 즐겁게 이어가며, 틈틈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기억은 선명한데, 정작 할머니의 머릿속엔 며느리라는 이름만 남아 있었다.

그간 할머니의 기억보다 더 쉽게 지워지는 건, 엄마의 삶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잊히고 지워지는 이름 속에서도, 엄마의 삶이 얼마나 단단하게 우리 곁을 지탱해 왔는지를.

그 사실만큼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본 글의 인물과 사건들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했으나, 여러 파편을 엮어낸 창작소설임을 밝힙니다.


그날 좋겠다는 나의 말에 쭈뼛거렸던 너의 이유를

뒤늦게 알았지만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도

누군가를 지탱해온 시간이 지워지지않는 것처럼,

흩어지고 잊혀져도

삶의 무게를 버틴 마음이 끝내 남는 것처럼,


너의 마음이 너의 삶의 무게를 지탱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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