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의 깊이

가려진 얼굴

by 김채이





오늘도 친구들의 피드는 반짝이고, 요란했다. 누군가는 웃으며 문제집을 풀고, 누군가는 카페에서 사진을 찍었다. 좋아요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윤정은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고쳤다. 눈을 크게, 턱선을 매끈하게, 피부는 환하게. 화면 속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눈부신 듯했다. 하지만 그 계정을 아는 친구는 없었다.

화면이 꺼진 까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 윤정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이 사진들을 보면 윤정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풀이 삼아 오르내릴 것만 같았다. 그 따가운 시선들과 비꼬는 말들을 감수하기보다는, 온라인에서만 소통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편이 나았다.


긴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고 한 손으로 고개를 받친 채 문제집을 푸는 모습. 좋아요 수는 이미 몇백 개를 넘어서 있었다. 같은 또래, 같은 반 아이인데도 화면 속 미나는 누가 봐도 예뻐 보였다. 윤정은 사진을 확대하며 자신의 얼굴과 번갈아 떠올렸다. 비교할수록, 더 초라해졌다.


미나는 보정 같은 건 하지 않겠지.


윤정은 미나의 사진을 여러 번 확대하며 들여다보다가 다른 친구들의 계정으로 손가락을 옮겼다. 자기들끼리 팔로우하며 댓글을 달아주는 모습. 어차피 친구들은 자신의 사진엔 그런 다정한 댓글을 달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윤정은 책상 위 거울을 펼쳐 보았다. 턱에 난 작은 뾰루지가 신경 쓰였다. 손끝으로 누르니 통증과 함께 만져지는 덩어리, 내일이면 더 곯아 짜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뾰루지 위로 보이는 두툼한 입술, 옆으로 퍼진 듯한 광대와 그 사이의 불룩한 코, 그리고 작고 가는 눈. 거울 속의 얼굴은 늘 같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낯설었다. 사진 속에서 반짝이던 윤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남은 건 흐릿한 눈매와 불룩한 코, 울퉁불퉁한 피부뿐. 윤정은 스스로 봐도 영 못나 보였다. 마음까지 함께 곪아드는 듯했다.


다음날, 체육수업은 자율학습시간으로 대체되었다. 펜이 또각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만큼 교실엔 긴장감이 흘렀다. 윤정은 친구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집중해야 할까, 알 수 없는 압박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성적에 대한 부담과는 달랐다. 그저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었다. 윤정은 해봤자 안 되는 공부를 붙들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면 가장 많이 보는 건 뷰티 메이크업 영상이었다. 윤정은 휴대폰을 세워두고 거울 앞에 앉았다. 크리에이터가 브러시를 움직이면 그대로 따라 했다. 아이섀도를 바르고, 아이라인을 그었다가 삐뚤어지면 지우고, 다시 그었다. 화면 속 얼굴은 점점 화려해지는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은 아무리 흉내 내도 따라가지 못했다. 지워낸 자국 때문에 눈가는 더 붉어졌고, 마음도 함께 희미해지는 듯했다. 부모님은 혀를 차며 그냥 공부나 하라고 했지만, 그 말조차 갑갑했다. 공부로 답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하라는 건지.


이렇게 낳아놓고, 왜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게 해.


윤정은 친구 세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뷰티 크리에이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뷰티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자 돌아온 건 냉정한 눈빛. 그 눈 속에서 윤정은 ‘네가?’라는 말을 읽었다. 윤정의 머릿속에 예쁘고 잘생긴 크리에이터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매력으로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윤정은 자신이 트렌디한 메이크업을 소개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로막혔다. 꿈조차 조건이 필요한 것 같았다.


누군가는 샤프심을 꾹꾹 눌러가며 문제집에 매달려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채 연신 형광펜을 바꿔가며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런 풍경 속에서 윤정은 괜히 책상에 더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윤정은 책상에 엎드려 그대로 잠들었고, 깼을 땐 이미 다음 수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교복을 갈아입으려는 찰나, 창민에게 메시지가 왔다. 다른 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는 윤정이 유일하게 소통하는 중학교 시절의 동창이었다. 창민은 윤정과 달리 늘 웃기고 밝아 인기가 많았다. 윤정도 중학교 땐 남모르게 창민을 좋아한 적이 있었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반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과 사귀던 창민에게 자신은 그저 편한 짝꿍일 뿐이었다.


“인스타에 네 사진 올라왔던데? 봤어?”


창민이 캡처해 보내온 사진에는 책상에 얼굴을 묻고 자던 윤정이 담겨 있었다. 눌려 일그러진 눈, 벌어진 입술 사이로 고인 희멀건 침, 그리고 곪아 두드러진 뾰루지. 보는 순간 윤정의 얼굴이 달아올라 머리끝까지 뜨거워졌다. ‘저게 진짜 내 얼굴이구나.’ 생각이 스치자 더 끔찍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이런 모습으로 남는 거였다. 사진 밑에는 같은 반 수지의 계정 이름과 키득거리는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윤정은 방 안에서도 움츠러들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심장에서 쿵쿵 울려오는 소리에 머리가 울렸다.


“윤정, 괜찮음?”


창민의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했지만 윤정은 답하지 못한 채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멍하니 흐른 몇 분의 시간, 윤정은 천천히 거울 앞에 섰다. 손톱으로 뾰루지를 짜내니 피와 고름이 흘러나왔다. 대충 닦아내고 크게 숨을 고르려 했지만, 끝내 눈물을 참지는 못했다.



다음날, 교실은 언제나처럼 수다와 웃음으로 가득했다. 밤새 뒤척인 사람은 자신 뿐인 듯했다. 자리에 앉아 잠시 망설이다 윤정은 세희에게 다가갔다.


“세희야, 혹시 너도 이거 봤어?”


윤정의 휴대폰 화면을 본 세희는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웃어넘겼다.


“이거 금방 지웠던데. 어차피 넌 SNS도 안 하잖아.”


세희의 말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흘러갔지만, 윤정의 귓가엔 ‘넌 원래 그럴 애잖아’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도 내 허락도 없이 올린 건 좀 너무하잖아.”


윤정의 말에 세희는 미나와 얘기하던 수진 쪽을 흘끗 보았다. 교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둘. 자신감이 넘치고 두려울 것 없어 보이는 아이들. 세희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얼버무렸다.


“그냥 시험기간이라… 웃자고 한 거겠지.”


더는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세희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윤정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친구들 사이의 거리가 더 멀어졌다. 순간 교실의 웃음소리조차 자신을 향한 조롱으로 겹쳐졌다.

지워졌으니 괜찮은 건가. 윤정의 마음속엔 고름처럼 남은 상처가 닦이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마저 그러려니 하는 순간, 윤정은 이 교실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윤정은 창민을 만났다. 창민은 반팔 체육복 차림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시험기간답게 그도 공부에 지쳐 보였다.


“윤정, 오늘 학교에서 사진 얘기했어?”


공원 벤치에 앉은 창민은 지워지긴 했지만 너무했다고 말했다. 윤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이 아무 말도 못 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못했다. 창민은 독서실에 가야 한다며, 힘들다며 화제를 돌렸다. 윤정은 그저 그의 말만 듣고 있었다.


“너도 공부해야지.”


“공부는, 내가 해봤자지.”


윤정의 중얼거림에 창민이 잠시 말을 멈췄다. 다리를 떨다 팔짱을 끼고 윤정을 바라보았다.


“너는 왜 노력을 안 해?”


윤정의 손끝이 움찔했다. 쏟아지는 햇볕과 나무 그늘이 교차하며 윤정의 얼굴을 반쯤 가렸다. 바람에 흔들린 나뭇잎이 잠시 창민의 어깨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윤정은 숨고 싶었다.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매일 메이크업 연습을 하고 화장품의 특성과 트렌드를 공부하는 자신도 있었는데. 친구들이 하는 공부와 다를 뿐이었다.


“네가 뭘 안다고! 넌 뭔데 그래!”


창민은 잠시 윤정을 바라보다 낮게 말했다.


“넌… 진짜 모르네.”


그 말만 남기고 창민은 가방을 둘러메고 등을 돌렸다. 윤정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자신이 주먹을 꼭 쥐고 있음을 알았다. 여전히 화가 났지만, 창민에게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내비치지 못한 분노를 그에게 쏟아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결국 자신을 향해 되돌아와, 마음속을 더 깊이 긁어냈다. 윤정은 창민이 다시 돌아오길 바랐지만 그는 멈추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잠시, 주먹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윤정은 휴대폰을 열어 창민에게 메시지를 쓰려했지만 ‘미안해’라는 글자를 써놓고도 지웠다. 누구에게도 미안하고 싶지 않았다. 화면을 닫자 거울 같은 검은 화면에 자신의 얼굴만 덩그러니 비쳤다.


어디에도 두지 못한 시선.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말.


윤정은 얼굴을 가렸다. 화면 속에서도, 손바닥 속에서도.




본 글의 인물과 사건들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했으나, 여러 파편을 엮어낸 창작소설임을 밝힙니다.


부쩍 화장이 짙어진 아이,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비교하던 아이.

다른 얼굴의 간극 속에서 흔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빛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오늘도 너 자신을 믿으며,

조금은 당당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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