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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yoon Jan 19. 2018

 쿠바의 쏘울, 아바나를 걷다

El alma de Cuba, La Habana

Jazzy한 흥의 나라

 아직까지도 아바나의 재즈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치는 것을 바라볼 때 느꼈던 강렬한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La Zorra y el Cuervo 재즈바 공연

 그의 표정은 한 음 한 음 민감하게 반응했고, 손가락은 마치 건반에 의해 조종되는 듯이 움직였다. 무엇보다 그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규율이나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날마다 즉흥적으로 공연이 창조된다는 재즈 콘서트에서 그만큼의 연주를 본 건 정말이지 큰 행운이었다. 누군가 아바나를 방문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제일 먼저 추천할 장소다.

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촉촉한 행복감을 안고 걸어가는 말레꼰 해변에는 쿠바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웃통을 반쯤 벗고 해변을 향해 난 낮은 담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하얀 눈들을 반짝이고 있는 쿠바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동양인 여자 하나가 밤늦은 시간에 홀로 거리를 다니는 것이 신기했는지 저마다 말을 걸어왔다. ‘중국 여자다!’라고 외치거나 가끔은 ‘이봐, 쿠바 남자친구가 필요하지 않아?’라면서 능청스럽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낮이었다면 받아쳤겠지만 밤에는 왠지 혼자 섣부른 행동을 하면 안되겠다는 기분이 들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척하면서 말레콘 해변을 거닐었다. 쿠바는 모두가 지나친 관심을 보이지만, 그것이 결코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느껴지는 이상한 나라다.

 하루는 말레꼰 해변에서 두 명의 또래 여자애들이 와서 쿠바 살사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그 시각은 새벽 3시. 그 중 한 명은 싱어송라이터이자 가수 지망생이라고 했다. 그 여대생이 불러준 노래는 쿠바의 고립과 쿠바와 나머지 세계 사이의 벽에 대한 노래였다. 약간의 멜랑꼴리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 함께 justin bieber의 sorry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쿠바 청년들은 팝을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우리는 동이 트는 걸 함께 바라보며 기약 없는 언젠가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하늘과 가까운 쿠바의 구름이 돋보이는 말레꼰 해변


Detachment, 과거로의 짧은 여행

 쿠바는 남미에서 인터넷이 잘 되지 않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물론 오바마 정부 때의 관계 정상화로 인해 여건이 점점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지만 내가 갔던 때만 해도 와이파이망이 깔려 있는 공원이 아니면 인터넷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런 공원에서는 쿠바의 젊은이들이 모두 몰려나와 주저앉아서는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변인들에게 빨리 쿠바를 가보길 권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토록 정당한 핑계가 있는 곳에서 외부와 연락을 단절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쿠바 여행의 묘미인 것이다.

 

 인터넷이 되지 않으면 뜻밖에 재밌는 일들이 많이 생긴다. 굳이 맛집을 찾지 않고 끌리는 곳에 들어간다던가 전날 친해진 여행객을 만나기 위해서 직접 숙소에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물론 maps.me와 같은 오프라인 지도를 미리 다운로드해 오면 편하겠지만, 일단 던져지고 나면 어디든 살아날 방법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주일간 묵을 숙소의 주소를 잘못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아바나에 도착해서야 알아챘다.  택시 아저씨는 내게 그런 번지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당황스러워했다. 숙소 주인 이름이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인 까를로스라는 것, 어느 거리에 위치한다는 것만 빼면 번지수를 잘못 기억하고 갔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거의 없는 셈이었다.  별다른 방도가 없던 나는 무작정 그 거리에 있는 모든 쿠바 사람들에게 까를로스를 아냐고 물어보고 다녔다. 당연히 그 거리에만 각기 다른 까를로스를 안다는 사람이 서너 명 되었다.

까를로스 부부

 다행히도 한 친절한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내가 찾던 까를로스의 집을 찾을 수 있었고,  까를로스는 쿠바에서는 그런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며 진담 반 장난 반으로 웃으며 꾸짖었다. 여튼 쿠바인들이 홀로 헤매고 있던 날 호기심 반 선의 반으로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쿠바에서는 호스텔 운영이 법적으로 허가되지 않기 때문에 집에 공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casa(집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쿠바의 공영 숙소를 의미하기도 함)’ 를 운영한다.


 내가 묵던 Casa의 발코니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내가 생각했던 쿠바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 같다. 낡았지만 다채로운 색의 건물들과 그 앞으로 허름하게 널려있는 빨래들, 문 앞에 모여 떠들고 있는 이웃들. 와이파이가 자유롭지 않은 그곳에서 면대면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더욱 중요해 보였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그런 사소한 정을 그리워했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쿠바를 빛내는 것은 거닐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색색의 올드카들의 향연이다. 생긴 것이나 색깔은 아주 멋스럽지만 연료 효율이 높지 않아 매연을 가득 내뿜으며 다니는 올드카들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지 못하게 하는 주범이다. 이러한 올드카들은 아바나의 다채로운 색감을 더 풍요롭게 하며 어떻게 찍어도 쿠바의 앤티크 하면서도 장난기 가득한 느낌을 한층 더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광객들에게 택시비를 받는 것이 의사로서 일하는 것보다 더 돈이 되기 때문에, 쿠바 사람들이 원래의 직장을 그만두고 올드카를 모는 택시기사로 전업하게 하는 슬픈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

올드카들의 향연



모히또는 Bodequita del Medio에서
헤밍웨이의 페이보릿, Bodequita del Medio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모히또와 다이끼리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작가의 발자국을 쫓으며 들어간 bodequita del medio라는 바에는 헤밍웨이의 서명과 함께 이곳의 모히또가 최고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 말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약간의 플라시보 효과와 함께 작은 바안의 재즈 밴드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모히또 두 잔을 마시고 올드 아바나로 향하는 길에는 쿠바의 화가들이 그려놓은 올드 아바나의 거리들이 실제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때를 회상하자니 아직도 약간의 알딸딸함과 황홀감이 기분을 들뜨게 한다.


 물론 어디나 trade-off는 존재한다. 앤틱한 멋이 있는 만큼 우리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온 여행객에게는 불편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닐 것이다. 환전을 하기 위해 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거나 변기 커버가 없는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아 여행 중 가끔 불편함을 느끼게 한 쿠바.

그러나 이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 굳이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그곳의 여유와 흥, 순수함, 빠르고 정확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주는 평온함은 이 시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당연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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