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의 반례가 되지는 못했다

제주에서 한 해을 돌아보며#2

by 차감성

"어디라도 좀 다녀와"

여행이란 걸 떠난 지 2년이 좀 안 됐을 무렵(가족 여행 제외), 엄마는 무슨 연유에선지 여행 좀 다녀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는 그만 좀 다니라더니.

당신의 눈에는, 긴 취업 준비 기간과 정신없는 신입 생활로, 그토록 좋아하던 여행을 못 다닌 아들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것과는 반대로, 20대 중반 떠났던 동남아 일주, 서른이 되기 직전에 떠난 호주/동남아 일주, 중간중간 다녀온 라오스, 친구들과의 해외여행으로 '여행'이 주는 자극에 무뎌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그러니깐, 총량을 다한 것이다.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속된 말로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하는데(나도 들은 말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떨 지랄은 총량이 있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어릴 적 신나게 놀았다면, 나이 들어 성숙(?)해진다는 말이고, 어릴 적 억눌려있었다면, 나이 들어 늦바람이 든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여행 총량의 법칙'에 근거하여, 일생 동안 떠날 여행을 몰아서 떠났다는 말이 되겠다. (물론 이 모든 법칙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떠도는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연차를 소진해야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디 좀 다녀오라"는 말이 새삼 충격적으로 들려 홀린 듯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나를 설명하는 사전이 있다면, 그 말은 '반의어' 혹은 잘못된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을 것만 같은데... 무언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자유인 차감성에게 감히 그런 말을...?


그렇게 오랜만에 다락 구석에 잠들어 있던 배낭을 꺼내어 짐을 싸고 긴 여행 기간 말동무가 되었던 고프로의 배터리도 완충해 비행기에 올랐다. 내게 그 시절의 설렘을 가져다주길 바라며.



비행기에 내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고, 홀로 저녁을 먹고, 분위기 좋은 바에서 글도 쓰며 시간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총량의 법칙의 반례가 되지는 못했다. 처음 일주를 다녔을 때의 설렘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록, 카페의 분위기가 좋을수록 외로움을 삼켜야만 했다.


기분이 한껏 가라앉은 탓에 게스트하우스의 파티에도 참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필참'이라는 문구를 뒤늦게 발견한 탓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자연스럽게 어떻게 제주에 오게 됐는지,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별을 겪고 그녀를 잊기 위해 제주로 왔다고 했으며, 그 옆 친구는 연인의 폭언에 이별을 결심하고 제주로 홀로 떠났다고 했으며, 누군가는 퇴사를 하고, 누군가는 입사를 앞두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던 와중에, 나는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아, 지금의 나는 이곳에 맞지 않는다'

충격적이게도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도통 생기질 않았다. 새롭지 않았고, 또 그 이야기에 공감하기엔 그 에너지가 부족했다.


이건 꽤나 큰 충격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나누는 일이 좋아 소셜 살롱까지 창업했던 내가,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20대 초중반의 그들과 비교해 나는 너무 건조해진 걸까. 하품이 새어 나오는 내 모습에 환멸이 났다.



다음날, 도망치듯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왔고 다음 숙소까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밀려오고 떠내려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그냥 걸었다. 그러다 문득, 해변에 비친 내 그림자를 봤다. 배낭을 메고 고프로를 든 내 그림자. 그건 과거의 나였다.



우두커니 서있는 내 그림자와 밀려드는 물결, 거센 파도소리. 검은 모래알과 저 멀리 떠 있는 배 한 척.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지금이 바로 그 그림자를 보내야 할 때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래, 지금의 난 그때의 내가 아니지. 시끌벅적 떠드는 게 아니라 시끌벅적 떠드는 당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야 하는 시간이지.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는 것보다 '함께' 어딘가를 가는 게 중요한 때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시간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오래 담는 시간이 필요하지. 보고 싶은 사람에게 보고 싶다고 말해야지.



그림자는 옅어지고, 나는 이별을 고했다. 잘 가. 즐거웠어. 네가 떠나야 나도 새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산이든 오를 수 있을 거라는 야망보다, 내 옆에 있는 작지만 소중한 풀 한 포기를, 나는 전심을 다해 지키고 싶어.


저 멀리 노을을 지켜보며, 내 여행의 총량은 다했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어두워진 창가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음을 느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키며, 멈춰야 할 때는 멈추고 가야 할 때는 갈 수 있는, 그런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나를 포장하는 모든 가식을 제하고, 소중한 진심 하나만 남겨두어야겠다. 그리고 이 여행을 함께할 사람과 매 순간, 내일이 없는 듯 사랑해야겠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수자




@글쓰는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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