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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Mar 14. 2021

코로나가 끝나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해야지

코로나가 끝나면 여행을 가야지. 


아니지, 코로나가 끝나기 전에 어디 갈지 정해봐야겠다.

코로나 시작되기 전에 갔던 곳이... 코타키나발루였지? 그게 벌써 재작년이네. 원래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동남아 갈 생각을 못했는데 표를 미리 끊어놓은 탓에 일사천리로 진행됐지. 역시, 계획을 세우려면 저지르고 봐야 돼. 안 그러면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게 된다니깐.

그때, 얼떨결에 끊은 표 덕분에 도착한 코타키나발루는 엄청 예뻤다? 사람들이 노을, 노을 하길래 어느 정도는 기대를 했지. 근데 너무 기대하려고 하지는 않았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하기 쉽잖아. 근데 와... 5시부터 기다려서 본 노을은 정말 상상 이상인 거야. 말 그대로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하늘이라 상상조차 어려웠던 거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을은 주황색 하늘? 정도잖아. 근데 내가 본 노을은 한 가지 색이 아니었어. 푸른 하늘에서부터 점차 파스텔톤 주황빛이 물들기 시작하면서 하늘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노랑, 주황으로 가득 차. 그리고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해가 점점 저 바다 끝으로 지면서 보라색 물감을 풀어내. 하늘에서 그런 색이 보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 그 사이사이로 핀 구름들은 또 얼마나 그림 같던지. 

 그 시끄럽던 해변도 노을이 뜨면 신기하게 잠시 동안 고요해진다? 그 사이로 파도 소리는 은은하게 퍼지고. 아주 적당히 따뜻한 온도, 파도소리와 보라빛 하늘, 솜사탕 같은 구름, 그리고 사람들의 실루엣... 나는 눈만 감으면 아직도 그때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 보통, 코타키나발루 여행을 4박, 5박 했으면 많이 했다고 하거든? 왜냐하면 노을 외에 볼 게 많이 없고 스노클링이 맞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거든.



근데 나는 12박을 있었어. 매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노을은 몇 번을 봐도 지겹지 않더라고. 커피를 마시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밥을 먹으면서, 간식을 먹으면서 보는 노을은 매일 달랐고 심지어 노을이 뜨지 않는 흐린 날씨에도 그거 나름대로 좋더라. 그냥 첫날 노을에 콩깍지가 씐 거지.



항상 정신적으로 지칠 때쯤,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돌아보니 쉬러 떠난 여행은 전부 동남아였네. 동남아 특유의 여유로움이 좋았나 봐.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결국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나였고, 그런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곳은 동남아였어. 여유로운 쉼을 줄 뿐만 아니라 내 평범한 삶에 보라빛 노을같이 영감을 불어넣는 곳 말이야.

참, 이야기가 너무 밖으로 샜구나. 결론은, 다음 여행지도 동남아라는 거야. 나한테 여행은 동남아, 동남아는 여행, 인 거지. 성인이 되어 친구와 첫 배낭여행을 떠난 곳이 라오스 비엔티엔-방비엥-루앙프라방이었고, 두 번째 여행이 베트남 호찌민-무이네-달랏-나짱이었고, 첫 가족 배낭여행도 베트남 다낭이었고... 다른 나라, 여행지도 그만의 매력이 있겠지만 글쎄, 아직 나한테는 온전한 쉼을 줄 수 있는 나라들이 동남아에 있는 건 부정할 수가 없네.



코로나가 끝나면 이번엔 아예 한 달 살기, 이렇게 여행을 떠나보려고. 시간의 제약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예정에 없던 마음에 드는 곳,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더 오래 머무는 거야. 지역 토박이에게 찐 로컬 맛집을 추천받고 새로 온 여행자에게 또 그 집을 추천해주고. 어떤 날은 숙소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투어를 가고, 어떤 날은 숙소 앞 카페에서 진하게 글 한 번 쓰고. 아, 유튜브도 찍어봐야겠다. 아이 참, 나 너무 유명해지는 거 아냐? 유튜브로 세계여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구독, 좋아요, 눌러줄 거지?



 그래서, 자!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부터 내가 준비할 건 우선, 건강한 몸만들기! 지금 상태면 2주 정도 지나면 앓아 누을 듯싶다. 열심히 운동해서 체력을 키우고, 또 시원시원하게 수영도 하고! 그다음에는 영어 공부도 해야지. 현지인이랑, 혹은 여행객이랑 프리 토킹 하려면 공부해야지. 어차피 영어 공부는 해야 하니깐... 스피킹 위주로 한 번 해봐야겠다.

 

 그리고, 여행의 묘미가 예측 불가능, 불확실성 아니겠어? 한 번의 여행으로 내 인생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 속에서 나만의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것 같아. 우리 일상에서는 나만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조언, 관심, 약간의 강요들 속에서 왜곡된 선택을 내리기 쉬운데 여행지에서는 정말 나만의 선택을 내리게 되잖아. 여기서 묵어야 할까, 이 쪽 길로 가야 할까... 등의 사소한 선택부터 말이야. 오로지 나만의 선택이라 불안하기도 하지. 근데 그런 크고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엄청난 감동을 만들어 내는 거 알아? 여행 가면 고생했던 것들이 다 내 선택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즐거움으로 남는 거 아닐까? 인생도 똑같은 것 같아. 항상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냐. 그치만 그 선택이 내가 내린 선택이냐, 아니냐에 따라 어떻게 기억되는지가 달라지지. 

 여행을 떠나기도 전인데 묘~한 기대감을 품으면서 일상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네. 벌써부터 그 효과가 나오는 것 같아! 그때를 기대하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왜? 너도 나랑 같이 여행 갈래?



@글쓰는 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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