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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Jan 30. 2021

저기요, 왜 그렇게 굳~이 글을 쓰세요?

글쓰기의 이유

"아니,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가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하나씩도 가능하지."


 맞아.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한 장이 뭐야, 하루에 열 장도 쓰지. 근데 그거 알아? 그 마음먹는 게 무진장 어려워. 직장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퇴근길, 사람 꽉 찬 지하철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간신히 살아남은 다음, 집에 돌아와 침대에 풀썩 누우면 그날은 그냥 끝났다고 보면 되지. 

 그래, 어찌어찌 그 늪 같은 침대에서 빠져나와 책상 앞에 앉았다고 치자. 그럼 우릴 반기는 건 바로 하~아~얀 여백이야. 그 드넓은 설원에 작고 검은 발자국 하나 찍는 게 어찌나 어렵던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제법 멋진 글을 쓰고 싶은데 생각나는 건 쉬는 시간에 잠깐 본 유튜버의 시시한 농담밖에 없고 말이야. 진지한 무언가를 쓰려해도 내가 진지하지 않은데 무슨 소용이겠어. 그렇게 쓴 글은 내가 봐도 너무 가식적이라 에잉, 다 지워버렸지.  

 

영화 '러브 액츄얼리' 중


 "아니, 그럴 거면 왜 굳이 글을 쓰겠다고 하는 거야ㅋㅋ 그냥 차라리 술 한 잔 하고 싹 잊거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지. 글 쓰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면서 할 건 아닌 듯ㅎ"


 그렇지,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 하는데 쓰면 뭐하나 싶기도 해. 근데 글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게 아냐. 어떤 소재든, 어떤 형태로든 내 '생각'을 글로 쓰는 거지. 생각해봐라, 일상에서 '너만의 생각'하기 되게 쉽지 않다? 아침에 좀비처럼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어찌어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누울 때까지 온전하게 너만의 생각을 한 적 있어? 아, 물론 일하는 것도 너의 생각이고, 말하는 것도 네 생각이지. 근데 우리가 현장에서 말하고 듣고 하는 건 대부분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반응이야. 들은 대로 흘러나가는 거지.

 그런데 글쓰기는 그렇게 흘러나간 순간을 다시 내 앞으로 끌고 오는 거야. 그렇게 마주 앉아서 '왜?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고 묻는거지. 그러면 나와 관련이 하나도 없을 것 같던 누군가의 이야기, 어떤 사건, 그 날의 풍경, 분위기 등이 전부 되살아나면서 내가 던졌던 '왜'와 함께 자기화되는 거야. 한마디로, 네 삶의 폭이 한 뼘 더 넓어지는 거지.


영화 '작은 아씨들' 중


 "그게 꼭 글쓰기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나 글은 잘 못 쓰겠더라.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하는데 막상 글 쓰려고 하면 하나도 생각 안 나."


 꼭 글쓰기로만 하는 건 아니지. 근데, 안 쓰면 잊어버린다? 내 예전 글을 어쩌다 찾아서 읽어보면 아직도 깜짝깜짝 놀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아~지금이랑 되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네?'처럼 말이야. 물론 다시 읽으면 이불 펑펑 찰 거 같은 오글거리는 글도 있지. 근데 그것마저 소중하더라. 그때만큼은 진심이었던 거 아냐. 그런 예전의 나를 보면 푸석거리기만 한 지금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리고 꼭 글을 잘 써야 하는 건 아니라고 봐. 뭐... 내 글에 누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그게 글쓰기의 최종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해.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려! 나 봐, 원래 오늘 10시까지 글 한 편은 써야지 하면서도 끝내 이렇게 늦어버렸잖아. 이게 다 좋은 글을 쓰려고 했던 욕심 때문이야. 


 내가 하는 글쓰기 모임이 있거든?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는데 한 달 한 달 하다 보니깐 벌써 1년이 넘었더라고. 근데 그 글쓰기 모임에서 글을 제일 재밌게 쓰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는 사람?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 아니. 바로, 모임에 들어와서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의외지. 단어나 문장이나 어색할 수는 있어도 소재만큼은 제일 재밌어. 그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고 싶었던 거야. 그러다 보니 제일 개인적인 소재로 가장 진실되게 풀어내는 거지. 그 얼마 전에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식 때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영광 돌리면서 인용한 문구 기억나니?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 마틴 스콜세지


 그 명언이 딱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거야. 글을 잘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양하게 풀어낼 것인가가 관건인 거야. 솔직히 지금 나도 원래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맞아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엄청난 이야기를 쓰려했다가 영 아닌 것 같아서 다 지우고 그냥 너한테 이야기하듯 글 쓰고 있잖아. 참, 이렇게 하니깐 아까는 한 문단에 한 시간 걸리던 게 지금은 그냥 베토벤 피아노 치듯 자판기 위에서 연주를 하네, 연주를. 

 그래도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을 알고 싶으면 알려줄게. 아, 당연히 내가 알려주는 건 아니고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나온 말이야.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일방통행로'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서 그 사람이 '작가의 기술에 관한 13개의 테제'에 대해 이야기해. 그중에서 인상 깊은 항목은 바로 이거야.


5.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도 모르게 지나가도록 하지 말 것. 메모장에 노트를 할 때는 관청들이 외국인 등록부를 기록할 때처럼 엄격하게 할 것.
9. Nulla dies sine linea [단 한 줄이라도 글을 쓰지 않고 보내는 날이 없도록 할 것] - 하물며 몇 주일씩이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중>



 다른 내용들은 어려워서 골머리 앓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너무 공감되더라. 길 가면서 엄청난 글감이 번뜩 떠올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그럴 때마다 '오, 이걸로 집 가서 글 써야지' 했는데, 집에 오잖아? 그러면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해. 보고 있으면 어디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서 보니깐 어머니가 저녁을 차려주네? 그거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아까 들었던 생각 있지, 그것도 샤워하면서 같이 쓸려내려 갔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나더라고. 아마 그 생각들 다 모으면 난 대문호가 됐을 듯. 


  그리고 글쓰기는 습관인 것 같아. 뭐든 마찬가지지만 새로 뭘 꾸준히 하려면 너무 어렵잖아. 근데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최소한 그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 같아. 흰 여백을 마주하는 두려움 말이야. 아이러니 하지. 글쓰기를 꾸준히 하려면 글을 꾸준히 써야 한다니. 그래서 나는 그 방법 중 하나로 글쓰기 모임을 하는 거고. 거기선 글쓰기가 권리이자 '의무'거든. 강력한 동기가 되는 거지.


 자, 여기까지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글을 쓰는 방법이야. 원래부터 '글쓰는 사람'은 없어. 누구나 처음 흰 여백을 마주해야 하고 의외로 텅 비어있는 머릿속 단어사전을 발견하고, 소재를 끄집어내야 하는 스트레스와 직면해야 하지. 근데 그렇게 흘러간 순간을 붙잡아 치열하게 글로 써내면 그때마다 성장한 느낌이 들어. 뿐만 아니라 한쪽에 묵혀둬서 잊었다고 생각했던 글도 언젠가 내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슬그머니 다가와서 툭, 답을 내놓기도 해. 가장 나다운 답 말야. 내가 진짜 우왕좌왕할 때 나에게 꼭 맞는 답을 내놓는 친구가 있다면, 이 정도의 노력,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글의 내용과 별개로 추천하는 영화 '마틴 에덴'. 주인공에게 글쓰기는 삶 그 자체다.



@글쓰는 차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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