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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Aug 22. 2020

비와 불안에 대한 단상들

비는 그냥 내리는 거고

 불안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많이 들었다.

지금 불안할 수 있지만 결국 이겨내야 하는 일이야.
그러니깐 걱정하지 말고 하던 일을 열심히 하면 어떨까?

 

 그래, 맞다. 불안은 이겨내야 하는 일이고, 누구나 한 번쯤 불안에 허덕일 때가 있다고, 너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위로는 힘이 된다. 하지만 다시 불안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뭘까?




 비가 올 때 센치해지는 편이다. 창문을 부딪히는 비소리가 라디오의 지지직 소리처럼 느껴져 누군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고, 또 내 이야기를 실어 얼굴 모르는 누군가에게 날리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가득 찬다.


 비와 함께 우울로 잔뜩 젖는 것도 싫진 않다. 하지만 비가 그 이상으로 많이 내리면 버거워진다. 우울해지고 싶어서 우울한거랑 비자발적으로 우울해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장마가 힘들다. 




 비가 그만 왔으면 좋겠지만 내리는 비를 보고 원망할 수는 없다. 그냥 그들은 엉겨붙고 엉겨붙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투두둑 하고 떨어지는 거니깐. 아무것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보고 그만 힘들어 하라고, 그것 좀 그만하라고 하면 지금의 비처럼 더 쏟아지거나, 천둥치듯 버럭 할 것 같다.




https://youtu.be/lyVDPo3pMsc

Chet baker -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어떤 감정에 몰입하고 싶을 땐 쳇베이커의 음악을 트는데 비가 올 땐 거의 대부분을 그의 음악과 함께 한다. Blue라는 멜랑꼴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감정들로써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내 마음을 대변해준다. 드럼을 쓸어내리는 소리(음악적 무지로 전문 용어는 모르겠다), 이질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는 트럼펫소리, 그 소리 위에 얹히는 쳇 베이커의 보컬. 내 20대 초반은 선우정아와 함께 했고, 중반은 쳇 베이커와 함께 하는 듯 하다. 내 시대를 대변하는 음악들로 그 때 들었던 수많은 생각, 고민, 감정들이 설명될 수 있을까? 흥미로운 일이다.




얄밉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친다. 안타깝게도 내 감정은 장마가 갑자기 그친 것 만큼 빠르게 개이지는 않는다. 꽉 닫힌 창문을 열어 가득 찬 습기를 빼내야 하고 뿌옇게 쌓인 거울을 닦아야 하고, 또 젖은 물건들은 밖으로 내어 말려야 한다. 


불안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했나. 글쎄, 다시 불안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뭘까. 고민을 하던 중, 맑은 하늘에 다시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겨우 널어놓은 빨래를 다시 걷어야겠다. 비가 내리는 걸 어떻게 하겠어. 비는 그냥 내리는 거고 그냥 내가 거기에 서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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