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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감성 Mar 19. 2024

기도

I will let down the nets.

내가 불안한 건 당신이 나를 잊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을 부정해서도 아닙니다.

결국엔 도달할 길, 그러나 사람인지라. 앞을 없는 나는 오늘도 방 한편에서 헛딛으며 넘어집니다.

오늘도 해는 지고, 어두워진 책상, 오로지 노트북 창백한 불빛만을 바라보며,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여러 기사들, 그러니깐 가까운 사람의 성공, 가까운 사람의 실패, 사람의 고백, 사람의 거짓들에 휩쓸려


갈 곳 잃은 채 부유합니다.


나는 지난날의 나를 동경합니다. 뜨거웠던 나의 눈물과 고백이 감사와 고백으로 흐르던 때. 앞으로 걷기만 해도 두려움이 없던 때, 그리고 교만하여 방황하는 자들을 향한 자만을 숨기지 않던 때. 그때와 지금의 난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무엇이 나를 옥죄고 있습니까.


새벽녘, 차가운 공기. 몸을 부르르 떨며 옅은 십자가 앞 가장 구석진 의자에 앉습니다.

사랑했던 만큼 미운 당신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나와 당신과 마주합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문을 열었다고 생각하지만, 압니다. 사실 당신은 늘 내 곁에 있었습니다. 너그럽게, 때론 강하게, 적극적으로, 때론 놓아주며. 그래요, 그랬지만, 오늘은 이렇게 의자를 고쳐 앉아 당신과 괴롭게 마주합니다.


- 이렇게 마주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어슴푸레 뜨는 해를 바라보며, 아직은 남아있는 밤공기를 차갑게 맡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제는 모르겠어요, 나는 그저 당신을 따를 뿐. 무책임한가요? 아니 오롯이 당신께 맡깁니다. 알려주세요. 나는 무지하니 베드로의 그물이 되어 강 속으로 내 몸을 던지겠습니다. 


나를 쓰소서.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나를 가장 필요로 한 곳에서 당신의 일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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