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닮은 예술의 위로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by 차구마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오래 준비했던 시험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모든 걸 쏟았던 사랑에 실패했을 때, 혹은 소중한 누군가가 곁을 떠났을 때. 살면서 모두가 겪는 일이지만 정작 아무도 뚜렷한 방법을 모르는 위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건네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위로에는 정답이 없다. 이것은 난처한 사실이지만, 달리 말하면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이기도 하다.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 2023)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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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 그곳에서 누구나 우러러보는 직장에 다니며 승승장구하던 남자는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그는 사랑하는 형을 너무 일찍 세상에서 떠나보내야 했던 것. 가족의 죽음을 맞닥뜨린 후 큰 상실감에 빠진 패트릭은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75쪽) 삶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약해진다. 깊은 슬픔을 삭이며 남은 생을 무사히 견디고 회복하기 위해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패트릭은 어린 시절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온종일 아름답기만 한 세상”(같은 쪽)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에서 경비원으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살아보기 결심한다. 진보가 부재한 곳. 과거를 현재에 존재하게 하며, 그 현재가 앞으로도 변치 않는 미래로 보존될 멈춘 공간. “나아가야 할 일도 없고, 추진할 프로젝트도 없고, 지향하는 미래”(96쪽)마저 필요치 않는 미술관에서 그는 평안함을 느낀다. 그의 말마따나 이것은 일시적인 ‘속임수’이자 삶에 대한 도피일지도 모르지만, 우선 살기 위해서, 그는 미술관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어떤 시대와 그 시대의 누군가가 남긴 흔적이 오랜 시간을 견디며 머물러 있는 곳. 삶의 유한성―누군가에겐 특히 너무 빠르고 가혹하게 다가오는 삶의 끝―을 절절히 실감한 패트릭에게 과거의 작품들이 영구히 보존된 메트는 삶의 유한성을 거스르는 마법의 공간처럼 느껴질 테다. 매일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서서, 거대한 미술관 곳곳에 고요히 숨 쉬고 있는 예술 작품들과 마주하는 단순한 삶의 방식을 통해 그는 천천히 자신의 삶을 회복해간다.


예술 작품들은 시대를 건너와 우리의 마음에 말을 건다. 그러나 그 대화를 통해 모두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패트릭은 말한다. 우리가 너무 자주 놓치는 그 소리, 깊고 고요하게 울리는 예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예술에 대한 지식이나 분석이 아니라고.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질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36쪽)하므로, 예술 작품과의 대화 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의 물질성에 대한 인식, 유한한 삶의 끝에서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유기물로서의 존재라는 겸허한 감각이다. 이처럼 물질 대 물질로서의 교류가 먼저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예술이 건네는 위로가 들리게 된다. 예컨대 패트릭처럼 누군가의 죽음이 주는 상실감에 직접 맞닥뜨렸을 때, 어쭙잖은 조언보다 진실한 위로가 필요할 때, 그 목소리는 생생해질 테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 p.73


현실은 냉혹한 바위와 같다. 삶은 방대하고 어렵고 막막하다.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했던 위대한 예술가조차 자주 길을 잃는다. 우리는 모두 “실존적이고 승리하며 또 고통 받았으며”,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159쪽)을 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나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은 아니며, 고통이 있으면 때때로 ‘승리’나 ‘풍요’가 삶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 대부분의 삶은 오답투성이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이 각자의 정답이기도 하다는 것. 예술 작품에는 시대와 사람이,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사랑과 슬픔이 녹아있다. 우리와 비슷한 것들이 아름다운 모양으로 빚어진 것이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삶이고, 모든 삶은 예술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이 공유되는 순간에 열리는 가장 작은 단위의 위로다.


삶을 닮은 예술이 주는 위로 덕분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262쪽)이 일상의 평범하고 사소한 고민들로 메꿔지면 길었던 애도가 끝날 것이다. 이제 그 사소한 삶의 조각들을 덧붙이고 덧바르면 전보다 조금 더 튼튼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생겨날 것이다. 거장이 마침내 완성한 예술이 최초부터 위대했던 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308쪽) 예술을 닮은 우리의 삶이니까.


미술관은 지나간 시간이 지금껏 살아있는 공간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 패트릭은 시간과 공간에서 위로를 얻었다. 우리는 그 위로의 기록을 옮겨둔 책을 통해 각자의 위로를 얻는다. 위로는 그렇게 공유된다. 그 사실은 좀 위로가 된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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