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서울.

10/17-21

by 차구마

부모님의 집에서 나의 자취방으로. 양주에서 서울로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잠깐 글을 쓴다. 걸음과 눈꺼풀이 동시에 무겁다. 집밥을 잔뜩 먹고 나와서 그런가. 내 걸음을 무겁게 하는 게 집밥의 푸근한 맛인지, 아들과 다시 한 달의 이별이 못내 서운한 부모님의 느린 배웅인지. 한 시간 남짓 서울로 가는 길이 오늘은 멀다. 한적한 밤의 지하철에서 한숨 자고만 싶다.


한 달만에 돌아와 잠시 머문 육지의 닷새를 톺아본다. 금방 다시 돌아갈 테니 제주와 이별하는 아쉬움도 없었고, 김포행 비행기에선 착륙 직전까지 숙면을 취했으니 비행의 설렘 따위도 있을 턱이 없었다. 육지의 바람만큼이나 건조한 서울의 첫날. 공항과 이어진 삐까뻔쩍 쇼핑몰을 돌며 잠자던 물욕이 꿈틀거렸으니, 그제야 새삼 육지다. 육지는 제주에서 잊고 있던 것들을 금세 돌려놓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이는 불편함이 오랜만이다. 나와 비슷한 남의 체온은 왜인지 꽤나 불쾌하고 높은 인구 밀도는 짜증과 불편을 초래하니, 억지로 몸을 부대끼면 애정과 인정은 식는다. 적당한 거리 속에 오히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는 법(조금 있어 보이는 말로 '사회적 거리'라고도 하더라). 널찍한 자연의 거리에서 띄엄띄엄 만나는 제주의 사람들이 애정 어린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서울을 오가면 일상에서 멀지 않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본다.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남루한 나의 모습과 간극이 조금 있다. 얼굴부터 옷차림까지 예쁘고 멋지고 화려하다. 일상 속에서 그들은 샛별처럼 빛난다. 누구와도 사랑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준비가 된 그들의 모습이 서울의 거리 여기저기서 반짝거린다. 다만 그 반짝임은 화려해도 냥 밝지만은 않 보였다. 저마다의 슬픔을 속에 품고 겉으로 빛나는 작은 별들. 늘 머리에, 가슴에 고민을 품고 사는 요즘 젊은것들. 자리 없는 만원 지하철에서 그들은 무선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을 보고 단어장을 보고 사람을 본다. 그 익숙한 모습이 얼마 전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엉덩이 붙일 곳을 찾지 못한 그들이, 내가, 마냥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바랐다.


공항과 이어진 쇼핑몰은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옷가게부터 먹거리에 놀거리까지. 하루를 온전히 그곳에 쏟아도 충분할 규모의 화려한 천국이다. 같이 서울에 온 누나와 쌀국수로 점심 끼니를 했다. 쌀로 만든 면을 따뜻한 국물과 함께 먹는, 본디 삶과 가까운 소박한 음식이 한 그릇에 만 삼천 원쯤 한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쌀국수와 분짜를 사 먹는 어느 회사의 어느 직원들은 삶에 한없이 가깝지만 그들이 먹는 음식의 값은 삶과 다소 거리가 있었다. 국물은 진하고 국수는 맛있는데 입맛이 쌉쌀했다. 만 삼천 원 쌀국수 앞에서 식구들 먹이려 한 솥 가득 오래 끓여낸 식구 누나의 진한 감자탕 국물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주엔 말이 많고 울엔 사람이 많다. 그중에 나의 사람들도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이번엔 사람들을 많이 만나진 않기로 했다만, 그래도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이 늘 마음에 있다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회기에선 착실히 나아가고 있는 착한 동기를 보고, 홍대에선 제주에서 인연을 맺은 좋은 형님을 보고, 의정부에선 오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나의 제주 생활을 기꺼이 응원해준. 나도 진심으로 그들의 지금을 응원해준. 그들과 나눈 속과 정과 대화와 웃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했다. 제주에서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뜬금없고 불확실한 결정을 했을 때. 육지에서 고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나는 몰랐다.

그저 좋아서?

제주에서 너무 행복해서?

제주 생활을 이어가겠단 결정의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부모님이 까만 속을 더 태우며 나를 걱정하지 않을 테니. 내가 그들의 덜 아픈 손가락이 될 테니. 어리지 않은 나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제주에 좀 더 머물겠다는 아들. 부모의 걱정을 덜게 할 어떤 이유라도 찾고 싶었고, 찾아야 했다. 한참을 고민하며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문장을 만들고 허물다가, 결국 뚜렷한 어떤 이유도 찾지 못한 채 그들에게 돌아갔을 때, 그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다만 나를 보며 웃었고, 맛있는 걸 먹자고 제안했고, 언제 다시 가냐고 물었고, 네가 좋으면 된 거라고 말했다. 그런 순하고, 눈물 나게 간결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가족이라 나는 다시 행복했다. 나는 확실히 그들을 사랑했다.


우리 집이라기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주인이 아닌 것도 아닌. 오랜만이다. 동대문구 휘경동 나의 자취방. 오래 보지 않아도, 오래 눕지 않아도 아늑한 이곳도 한 달만이다. 친구가 가끔씩 들러 내가 없는 내 방을 썼다곤 하지만, 주인이 자리를 비웠던 것 치고는 깔끔하고 꽤 정갈하다. 읽던 책, 널브러진 책상, 잘 개어놓은 수건과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통기타. 떠나기 전 모습이 변하지 않고 생생히 남아있으니 이곳은 어쩌면 나만의 유적지다. 오랜만에 오니 새롭지만 낯설지 않다. 서울에서 다시 만난 것 중 그나마 반가울 따름이다. 어설프게 기타를 튕긴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 제주에선 늘 함께인데 여기선 나 혼자다. 그래서 한 편으론 마음이 편하다. 다시 잠시 동안 떠나 있을 곳이라 괜히 또 아련하다. 내가 없어도 요란한 소리를 내는 낡은 냉장고는 돌아갈 거고, 가스도 전기도 흐를 거고, 월세 30만 원은 얄짤 없이 나를 독촉할 거다.


서울에서 하루. 양주에서 이틀. 다시 서울에서 하루. 그렇게 육지의 짧은 날들이 금방 지났다. 떠났다가 돌아온 곳은 기억과 추억과 사람이 가득해 깊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 짧은 나날들이 남긴 인상들로 인하여 제주는 다시 낯선 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섬으로 간다. 멀지 않은 섬에서 흐른 시간만큼 또다시 어색해질 서울. 이곳에 남기고 간 것들이 애절하게 보고 싶어 질 때까지.


서울. 그렇게 잠시만 더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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