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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구차 Nov 04. 2024

바쁘고 정신없음은 핑계다

미팅이나, 회의 때마다 다른 연락을 받는 A가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초반부까지는 내용에 집중하는 가 싶다가도, 잠시뒤 어김없이 미안하다는 말로 메신저 알림에 응답하거나, 미안하다며 전화를 받으러 나가곤 했다. 모두들 그가 임원들이나 경영진과 소통하는 업무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 네 급한 게 우선이죠. 괜찮습니다, 는 말로 멀뚱멀뚱 그가 떠난 자리를 기다리곤 했다. 잠시 후 전화든 메시지든 용무가 끝난 그는 항상 다시 회의에 돌아와서도 내용에 집중하지 못했다. 어른들 표현대로라면 늘 마음이 콩밭에 가있었다. 눈앞의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빛과 말투, 행동은 어딘가 붕 떠있다. 공허하다. 그가 꼭 그랬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떤 민감한 내용을 제안해도, 그저 괜찮다고, 좋다고 했다. 그는 늘 내가 반대로 다른 회의인 줄 알면서, 다른 일정이 있는 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한 연락을 꼬박꼬박 받아주었다. 그 회의에 있는 상대방은 멀뚱멀뚱 그를 보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 네 급한 게 우선이죠. 괜찮습니다.


늘 죄송하다며 5분씩, 10분씩 회의마다 늦는 B가 있었다. 회식이 있는 날에는 30분, 1시간쯤 지난 후 꼭 마지막에서야 나타났다. 앞의 회의가 길어져서, 정신이 없어서라고 했다. 같은 직장생활을 하는데 유독 그만 바쁘고 정신이 없고 회의가 길어졌다. 그와 자주 협업을 하는 이는 웃으면서 뼈 있는 농을 건네기도 했다. 아이고, 주인공 오셨네요, 이제 시작하시죠. 그 말을 들은 그는 머쓱해하면서도, 다음 미팅이 되면 어김없이 5분, 10분씩 늦게 등장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건넸다. 정신이 없어서요.


회의를 중간에 끊을 수 있다는 건, 늦을 수 있다는 건 그가 가진 권력이다. 아니,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무례함이다. 바쁘고 정신없다는 것이 모든 것을 정당화해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것이 미덕이었던 과거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회사에서의 회의는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 그 논의에 필요한 사람들끼리, 굳이, 시간과 장소를 정해 모여 함께 논의하고자 하는 귀중한 이벤트이다.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있기 지겨우니까 만나는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 모이는 이의 직급, 직책여하와 상관없이 말이다. 회의에 오는 모두가 바쁘고 정신없는 사람들이다. 유독 자리를 뜨는 사람만, 유독 늦는 사람만 바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임원, 경영진과 가까운이 하는 직무를 맡고 보니 더욱 깨닫는 바가 있다. 회사에서 제일 바쁘고 정신없어야 할 CEO들 중 대부분이 시간약속이 칼 같고, 매 회의에 집중한다. 바쁘고 정신없음은 권력도, 성공의 척도도 그 무엇도 아니다. 시간관리를 못하거나, 상대방을 시간을 배려하지 못하는 못된 습관에 대한 핑계이다. 그 못된 습관과 핑계 덕에 매번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죄송하고 미안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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