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일정 수준의 비효율성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효율을 높여주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사 어떤 장면에서든 비효율은 존재하는데, 이때 우리가 해야 하는 질문은 비효율을 어떻게 잘 피하는가, 보다는 얼마만큼의 비효율을 견디는 것이 최선인지라는 것이다. 조금의 비효율도 못 견디며 의견충돌, 타인과의 의사소통 오류, 비효율적인 일을 극도로 혐오한다면, 그야말로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다. 반대로 엉터리, 성가신 일, 불편함을 모두 감수해 버린다면, 산 채로 세상에 잡아먹혀버린다는 것.(여기까지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에서 일부 요약했다.)
사실 나는 솔직히 비효율이랄까, 비합리적인 것을 혐오까지는 아니나 싫어한다. 회사에서는 사실 책에서 말하는 역으로 효율을 높여주기 위한 일시적 비효율 같은 상황은 그다지 만나지는 못한 것 같고, 그냥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상황이 비일비재했고, 지금도 그렇다. 처음에는 이걸 그야말로 참을 수가 없었다. 다만, 비효율을 참을 수 없는 성향은 일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효율을 높여주는 개선, 조정 그런 일들을 발 벗고 나서서 하니까.) 비합리적인 상황에도 불같이 화가 났다. 과거 특유의 밀어주기식 승진(능력순이 아니라, 순번제랄까, 이번에는 뿅뿅이가, 다음에는 뿅뿅이가 같은 식의 점수 밀어주기가 암암리에 있었다.) 같은 얘기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듣기만 해도 한탄과 자조의 소스가 되었다. 연차가 쌓이면서는 어느 정도 머리로는 이런 상황이 일정 부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했던 것 같다. 비효율로 이를테면 나와 같이 일하는 동료나 선후배가 다 내 맘같이 일하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이 쏟고자 하는 열정, 실력도 모두 상이하니 사람이 모여 일을 하는데도 혼자 일하는 것보다 효율이 안 날 때도 있고, 비합리로 이를테면 글로 다하지 못하는 많은 상황들이 회사에서 발생하는구나를 하루하루 깨달아갔다.
이런 상황들을 겪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그리고 비율의 차이이나 나도 일정 부분 채택한 방법은 좀 더 순응하는 것이다. 서두에 말한 얼마만큼의 비효율을 견디는가에서의 ‘얼마만큼‘을 높이는 것이다. 걔 중에는 서두에서 말한 듯이 아예 잡아먹힌 듯이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온갖 이상한 회사의 상황, 상사의 요구에도 그냥 한다. 정말 그냥 한다. 옆에서 보기에 무서울 만큼 그냥 한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어느 순간이 되면 순응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자각조차 없어지는 것 같다. 직장인이 당연한 것 아냐? 되려 반문한다.
그런데, 나는 참 이게 안 된다. 신입시절보다는 조금은 둥글려졌달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참 재밌는 상황이 되었네’라는 생각을 한 번은 해보는 쪽이 되었다. 서두에서 말한 ‘얼마만큼’이 콩알만큼은 커졌다는 거다. 다만 뼛속까지 스며있는 비효율과 비합리를 참지 못하는 성격은, 드러내냐 아니냐의 문제지 죽지는 않았다. 그간을 돌이켜보아도 이 성향을 그저 툴툴대는데 쓰지 않고 일, 프로세스, 회사의 개선 기획으로 연결시켰을 때 가장 유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고, 보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긍정적인 연결을 시키기가 점점 더 쉽지 않아 진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순응하고 산 채로 세상에 잡혀 먹혀버린 사람들이 동료나 상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 혼자만 독야청청 외치기가 곤란해진다. 혼자 속으로만 툴툴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얼마만큼’의 비효율과 비합리를 견뎌야 할까.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