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구차 Nov 06. 2024

일을 잘하는 것과 잘하게 하는 것

혼자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리더가 되면 위험하다

스스로 일을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하게 하는’ 것 사이에는 크고 긴 강이 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근육을 써서 하는 전혀 다른 활동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초보리더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리더가 된 후 일을 ‘잘하는’ 방법론으로 일을 ‘잘하게 하려‘ 한다. 처음 조직은 잘 굴러간다. 대부분의 리더는 ‘일을 잘한다’는 이들이 되고, 이들 스스로가 일을 잘, 많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리더의 번아웃 같은 더 이상 조직이 지속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한 명이 두 명분을 하면서 ’잘하는’ 방법론으로는 다섯 명, 열 명의 일이 ‘잘 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 명, 열 명 스스로가 일을 ‘잘하게 해야’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리더는 이미 지쳤고, 새로운 방법론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초보리더가 이러한 악순환에 빠지는 이유는, 개인의 성향도 일정 부분 작용을 하겠으나, 그보다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여러 구조적인 측면들이 있다.


많은 회사에서 리더, 즉 직책을 새로이 다는 것을 동기부여책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을 잘하는 역량 있는 조직 내 ‘허리’는 시장 내 찾는 이들이 많다. 회사는 이들을 놓치지 않고 싶으나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승진, 인센티브, 교육 등 자원은 제한적이고, 때로는 일을 잘하는 순서대로 할당되지 않는다.(순번제 승진, 평등하고 공평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차등식 인센티브 등 한국 특유의 문화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때 직책자 카드가 등장한다. 파트 같은 소규모 조직을 꾸려 약간의 직책수당(이마저도 없는 회사도 있으나)을 주고 리더로 추켜세운다. 팀장님~파트장님~하고 말이다. 일에서의 약간의 욕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처음엔 얼떨떨하기도 하고, 책임과 권한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조직 내 인정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저 팀장님, 파트장님 소리는 생각보다 듣기가 좋다. 그렇게 초보리더가 되지만, 리더는 어떻게 하는 걸까 그걸 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많은 회사에서 팀플레이, 리더십에 대해 소홀히 한다. 초보리더의 리더십교육이 형식적으로 끝나거나 아예 없거나 하는 데에서 그친다. 다만 리더는 갑작스럽게 준비되는 것은 아니다. 실무자 시절부터 작게는 후임과 둘이서 일하는 것도 일종의 팀플레이고, TF나 프로젝트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경험하는 것도 팀플레이다. 내 맘같이 않은 사람들, 나와 다른 업무스타일, 나와 다른 직무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방식, 리딩하는 방식을 은연중에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회사는 팀플레이보다는 개인의 역량을 먼저 써먹는다. 조금의 시간이 걸려도 팀플레이의 경험이 중요함을, 이게 더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더라도, 당장 눈앞의 업무, 실적, 보고를 위해 잘하는 개인의 역량, 맨파워에 의존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이는 역설적으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여 년, 초보리더가 되기까지 이런 팀플레이, 리더십 비스무리한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한 채 리더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가 된 이들은 필연적으로 벽에 부딪힌다. 번아웃 같은 상태로 팀 내 벌어지는 많은 이슈들을, 중요한 일들을 팀원들에게 맡기지 못한 채 꾸역꾸역 스스로 일을 해나간다. 공허한 눈, 피곤한 얼굴. 요 근래 내가 만난 초보리더들, 그리고 한 때 나의 상태가 이러했다.


요즘 승진이나 직책을 마다하는 의도적 언보싱 트렌드가 화제인 듯하다. 기사 대부분 요즘 MZ들이 그렇다로 종료되는 것 같다. 하지만 관리자를 마다하는 당사자들의 세대론, 트렌드로 치부하기 이전에, 이들이 이러한 선택을 하기까지 어떠한 모습들을 회사에서 발견했는지 살펴볼 일이다. 공허한 눈으로 번아웃에 빠진 피곤한 팀장님을 통해서는 아무런 리더십이나 비전을 발견할 수 없는 이들에게, 너도 이렇게 다음세대의 리더가 될 거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남발되는 직책과 팀장님, 파트장님이라는 호칭과 얼마 되지 않는 수당으로는 이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작은 결정부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