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은 늘 제한적이기에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한다
나의 첫 용돈은 정확히 천 원이었다. 일주일에 천 원. 초등학교 이 학년이 되던 해에 부모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용돈을 주겠다고 하셨다. 일주일에 천 원으로 알아서 살림 사는 거야, 다 써도 다음주가 될 때까지는 더 주세요 안돼, 같은 말을 하셨던 것 같은데, 사실 정확히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몰랐던 것 같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과자가 오십 원, 백 원 할 때라, 그저 천 원이라는 큰(?) 돈을 받으니 뭔가 두근거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첫 용돈을 받은 월요일은 학교 앞에 가서 불량식품이었는지, 떡볶이였는지 여하튼 군것질하는 데에 왕창 써버렸던 것 같다. 이틀인가만에 돈이 다 없어졌고, 수요일쯤인가 목요일쯤인가 아무 생각 없이 용돈을 더 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네가 이 돈을 잘 알아서 나눠서 써야지, 다 썼다고 또 주는 게 아니라고 했지 않냐며 단칼에 안된다고 하셨다. 그 뒤 며칠간은 사고 싶은 과자, 뽑기 뭐 이런 거를 전혀 하지 못한 채로, 돈을 생각 없이 탕진하면 안 되는 구나를 느끼며 학교를 다녔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 용돈을 받으면 나름대로 분할을 해서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백 원 혹은 이백 원씩. 그렇게 몇 주, 몇 달을 해보니 좀 더 요령이 생겨서, 더 크고 비싼 거를 사려면 지난주 용돈들을 남겨서 모아야 한다는 개념도 스스로 터득했던 것 같다.
조수용님의 ‘일의 감각’이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는데, 어린 시절 얘기가 나온다.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옷을 좋아하는 저자를 위해 매년 딱 한번 시험전날 어머니와 함께 옷을 사러 갔다는 것. 일 년에 딱 한벌을 사는 것이니 얼마나 소중할까. 가게들을 다 한참을 다 둘러보고 나서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직접 선택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처음부터 잘 고른 선택이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 맘에 들지 않는 옷을 골라 그 옷을 일 년간 입고 다닌 적도 있고, 그럴 때마다 다음 해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발전되어 갔다는 것. 어머니는 아들의 첫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아셨겠지만, 그걸 스스로 깨닫도록 두셨을 것이다.
나의 어릴 때 용돈을 쓴 경험과 책에서 본 옷을 사는 경험에는 닮아있는 구석들이 있다. 첫째, 스스로 선택하는 것. 내 경우에도 용돈을 어디에 쓰는지에 대해 부모님은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으셨다. 잘못된 선택도(어른이 보았을 때), 괜찮은 선택도 모두 나의 몫이라는 것. 가끔 무얼 산다고 했을 때 ‘그게 꼭 필요해?’라고 딱 한마디만 물어보셨던 것 같다. 물론 나는 필요하다고 했었을 텐데 지나 보니 정말 그랬던 것도 있었고, 아닌 것도 있었다. 그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내가 하는 선택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셨던 것 같다. 둘째, 실패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모든 경험이 좋지는 않았다. 용돈을 받은 첫 주는 하루이틀 만에 탕진해버리기도 하였다. 이러면 안 되는 구나를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하신 것 같다. 작은 실패경험을 쌓아서 작은 성공경험을 만들어주려고 하신 게 아닐까. 부모님께서 그걸 의도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작은 실패경험, 성공경험들은 다 훗날 도움이 되었다. 셋째는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는 것. 내가 받은 일주일의 천원도, 책에서 나온 저자의 사례에서의 일 년에 옷 한 벌도 제한된 자원이다. 돈이 무한정 주어졌거나, 옷을 무한정 살 수 있었다면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 또 궁리하고 또 고민했을까? 제한된 자원이기에 내 선택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그리고 그 두려움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체득한 약간의 자신감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비즈니스전략에서도 자원은 늘 제한되기에 더 나은 선택을 하게 한다. 그 경험을 아주아주 어릴 때 자연스럽게 체화한 것 같다. 작은 나만의 경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