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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Mar 07. 2021

우리 애는 학원을 안 다녀요

13년째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보니 수시로 자아 충돌이 오곤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없었던 시절에는 그랬다. 아이를 낳으면 쓸데없이 사교육으로 돈 낭비하지 않을 거야, 되지도 않는 공부 억지로 시킨답시고 불행하게 만들지 않을 거야, 자유롭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울 거야 등등. 이런 다짐은 적어도 초등 저학년까지는 켜진 것 같다.

그래서 그때까지 아이가 조금이라도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은 일단 시켜주었고 (태권도, 축구, 농구, 피아노, 미술, 영어) 아이가 그만두고 싶어 하면 더 이상 시키지 않았다. (태권도, 축구, 농구, 피아노, 미술, 영)


그렇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그 어떤 것도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미적지근한 태도 친구가 한다고 하면 같이 했다가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지나면  제 더 이상은 하기 싫다 강력게 어필했다. 내 딴에는 하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시키지 말자는 신념은 지키고 싶었, 의욕 없는데 적잖은 돈을 써야 하는 것도 아까웠기 때문에 몇 번 달래본 후에 그만두게 했다.

한편으론 이래도 되는 건지, 끝까지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 아닐까 싶었지만 사실 끝까지 끝이 과연 언제인지도 모르겠거니와 저러다 예체능을 전공하겠다고 나서면 그건 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내심 실망스러운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저 중에 하나라도 평생 취미가 되어서 삶의 자산이 되길 바랐던 알량한 부모의 음이었다.


아이는 일단 운동을 싫어했다. 특히 시합은 질색이었다. 태권도를 배우면 띠를 따기 위해 대련을 하고 국기원 심사를 받아야 했는데 아이는 질색을 하면서 친구와 왜 싸워야 하느냐고 했다. 그건 싸우는 게 아니라 실력을 겨루는 거라고 했지만 2년 넘게 다니면서 한 번도 국기원에 가지 않았다. 축구와 농구도 마찬가지였다. 공이 오면 잡아서 골을 넣어야 하는데 일단 몸을 피해 달아나려 했다. 부모님을 초대해서 다른 팀과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이는 가기 싫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편과 나는 미드 속에서 봐오던 -아이가 슛을 하면 환호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응원하는- 풍경을 기대하며 호기롭게 참관을 갔다가 이가 쩔쩔매며 공을 피해 다니는 걸 고는 복했다. 

피아노 그나마 오래 배웠는데 집에 디지털 피아노를 얻어온 후부터 문제가 생겼다. 어지간한 악보를 볼 줄 알았던 내가 의욕에 넘쳐가지고 아이에게 하루 30분 이상 연습하기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일단 학원에 갔다 왔는데 또 연습을 하라는 게 싫었고, 연습을 하면 엄마가 자꾸 지적하니까 더 싫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학원에서 연주회 준비를 시작하면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아이의 연주곡 직접 치면서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잔소리를 해댄 것이다. (나란 엄마 왜 그랬을까. 오박사 님이 보셨으면 이 집은 엄마가 문제입니다!라고 호통치셨겠지...) 결국 연주회를 마친 후 아이는 피아노를 끊었다.

미술은 또 미술대로 만들기가 너무 싫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들기 시간이 있는데 보통 키트가 제공되고 설명대로 완성하는 식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그날을 제일 좋아하건만 이 아이는 바로 그거 때문에 가기가 싫단다. 이유는 자기는 마음대로 천천히 하고 싶은데 정해진 시간 내에 빨리 완성해야 하고, 제대로 못하니까 선생님이 채근하며 직접 완성을 시켜주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영어학원은 유일하게 아이가 원하지 않았던 학원이었다. 사실 난 초등학교 과목에 영어가 포함된 것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싫은 사람이다. 부모가 영어 사교육비를 얼마나 지출했느냐에 따라 자녀들의 영어 수준 격차가 말도 못 하게 벌어지는데 그것이 설령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라 해도 초등학교 아이들에겐 너무 가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뒤쳐진 의식 때문인지 학교에 학부모 참여수업을 갔다가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와 프리토킹이 가능한 아이가 한 조가 되어 수행평가랍시고 왓 이즈 디스를 주고받는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영어학원에 보냈다. 결과는? 학원 다닌 지 2년이 넘었는데 가끔 영어 읽는 걸 보면 도대체 뭘 배웠는지 모르겠어서 울화가 치민다. 그런데 가져오는 교재를 보면 매일의 단어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을(하지만 실은 잘 모른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아이의 흔적들이 스란해서 혼을 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조차도 코로나가 시작되며 가다 못 가다를 반복하다가 지금은 쉬고 있다.


이렇게 써 내려가다 보니 우리 아이가 되게 문제 많고 끈기없는 부진아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아이는 건강하고 잘 웃고 사랑을 많이 표현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매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려 쓰는 평범한 아이다. 성적이 뛰어나거나 취미와 특기가 분명하다거나 친구가 많은  아니지만 얼마 전엔 반에서 부회장이 되었다고 수줍게 전해서 우리 가족을 놀라게 했다. 제는 (늘 그렇듯) 부모였다. 교육에 관한 가치관과 신념이 없는거나 마찬가진데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은 많은게 오히려 독이었다. 아이의 자유는 지켜주고 싶은데 뒤쳐지는 건 싫고, 사교육으로 밀어부칠 경제력도 안되는데 이대로 놔두면 부모 잘못 만나서 낙오자가 될 것 같으니 이리저리 휘둘릴 수 밖에. 학벌없는 세상 사교육 없는 나라를 원하지만 사실학벌과 사교육을 너무나 동경하고 있는 게 불행의 씨앗이라고 해야하나.


부모도 아이도 서로에게 처음이라서, 어느 것에도 아직 특출 나지 않고 근성이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걸 서로에게 확인하고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끈끈하게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어서, 계속해서 싸우며 시행착오를 거듭하 중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가 아이를 망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난과 낙오의 대물림을 할 셈이냐고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겠다. 끔 아주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때 - 예를 들어 스카이캐슬 같은 드라마라던가, 대도시에 사는 친구들 자녀의 사교육 이야기들이라던가 - 이미 내가 범접할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내 아이는 자포자기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이런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으면 좋겠고...


그러다가 다시 생각한다.

어린날의 그 뽀얗고 말간 얼굴과 작은 손가락 발가락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빌고 또 빌었던 순간들을 잊지 말자고. 

이 아이가 앞으로 다녀야 할 학원이 뭐가 되든 간에, 얼마나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자존심과 눈물을 흩뿌리고, 후회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야 할지는 모르지만, 로 고단하기 그지없는 밥벌이의 자격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군분투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아이는 잘 해낼 것이다. 그게 믿어주는 것이 부모일 것이다. 나의 부모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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