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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짜이 Apr 04. 2021

소머즈도 괴로웠을까

어릴 tv에서 보던 소머즈는 참 멋진 성이었다. 무도 듣지 못하는  곳의 소리를 듣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 사건사고를 해결하던 소머즈. 남편은 가끔 나를 소머즈라고 하는데 물론 에게 초인적인 힘 따위는 없다. 비루한 몸뚱이에 건사고가 생겨도 아무런 힘을 못쓰는 무능한 인간귀만 소머즈다. 층간소음에 귀가 트인 소머즈.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후, 청소기를 돌리는데 시끄럽다는 연락이 왔다. 저녁 무렵이었다. 죄송하다고 전한 후 되도록 뛰지 않고 청소도 낮에만 하는 것으로 조심을 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연말이 되었고 인사라도 하고 싶어 아랫집에 내려갔다. 부모와 아이들이 우리 집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어린아이가 있냐고 물어보아서 들만 둘이라 했더니 밤에좀 조심해달 했다. 적당히 함께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집으로 라와서 아이들에게 이제부터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미 매트를 깔고 있었지만 두 장 더 구입했고, 9시가 되면 아이들을 재우 노력했다. 주말이면 무조건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는 번번이 갈 곳을 찾기도 힘들어서 아예 놀이공원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출석했다.


아이 둘 다 방학시즌이 되고 마침 명절도 다가왔기에 작은 간식거리를 들고 시 아래층을 찾았다. 조심하고 있지만 이번 주가 방학이라 혹시 시끄럽지 않냐 했더니 우리 이도 방학이라고 괜찮다고 하며 한사코 간식을 거절하셨다. 몇 마디 안부를 나누고 이번에도 함께  돌아섰다.


그리고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학교도 어린이집도 속절없이 문을 닫, 모두가 공포와 막막함으로 예민해지던 때. 어디도 갈 수가 없어서 고작해야 사람 없는 공원을 잠깐 다녀오거나 밤늦게 아파트 단지를 도는 것으로 한 숨 돌릴 수밖에 없 나날들이 이어졌다. 러던 어느 날 맘 카페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위층에 뛰기 시작하면 전등이 흔들릴 정도라고. 얼마 전엔 뭘 하는지 한 시간 넘게 지속적으로 쿵쿵대는데 잡기 놀이라도 하는 모양이라고. 제발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는 글이었다. 별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는데 뭔가 기분이 싸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 이야기인 것 같았다. 얼마 전에 간식을 가져다준 그 후로 더 심하다고 썼는데 간식이 내가 가져간 것과 같았 그 외에도 우리 집만의 사정을 특정하는 또 다른 이야기도 추가되어 있었다. 맞는구나, 순간 식은땀이 났다.


그 글에는 수많은 날 선 댓글들이 줄지 달려있었다. 모두 다 코로나로 일상이 중지되고 감금 상태가 되었으니 층간소음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댓글에는 간식 사다 줄 돈으로 애들 교육이나 잘 시 것이지, 명 매트도 안 깔았을 게 뻔하다, 그런 집은 말이 안 통한다는 등등 비난하고 아랫집의 고충에 공감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쓴이는 윗집이 매트를 깔았는지는 모르겠고, 전에는 이런 적이 없는데 그 집이 이사 온 후부터 이렇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우리 집은 매트가 복도까지 깔려있다고. 아이들은 9시가 되면 거실에 나오지 못한다고. 주말이면 혹시나 시끄러울까 봐 무조건 밖으로 나갔고 맹세코 집에서 잡기 놀이를 한 적은 없다고 댓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 뻔뻔한 변명만 늘어놓으며 반성을 모르는 층간소음 가해자가 될 것만 같았다.


글쓴이 아이디를 클릭해보니 지금까지 썼던 글을 볼 수 있었다. 그중 층간소음에 관한 글이 몇 개 더 있었는데 날짜를 보니 우리가 이사 오기 훨씬 전부터  글이었다. 우리 집 이사 오고 나서부터 시작된 소음이라더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싶었지만 직접적인 항의를 한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올린 글을 가지고 묻는 우스운 일 같았고, 괜히 더 큰 싸움이 날까 봐 려웠다. 나도 안다. 글을 쓰다 보면 과장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입장에 따라 관점에 따라 앞 뒤가 다른 글을 쓰게 된다. 정말 힘들었으면 관리실을 통해 항의하거나 직접 인터폰을 할 수도 있고 가끔 마주치며 인사했을 때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기조차 싫은 나 같은 소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저 우리가 더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절대로 인사하러 가지 않기로. 우리의 인사가 마음 놓고 뛰겠다는 표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걸 몰랐으니.


이미 온 집안에 매트가 깔려있었지만 두께 4센티미터의 초대형 매트로 다시 주문해서 거실, 복도, 안방까지 는데만 수십만 원이 들었다.  라리 전체 시공 할까도 고민했지만 그건 두께가 2센티였고 바닥이 썩거나 이사 갈 때를 생각해서 보류했다.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그렇잖아도 뛰면 안 된다는 말을 노상 들어서 질려버린 아이들은 이제는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나를 보며 무서워했다. 이들이 그저 걷기만 하는데도 나는 신경이 곤두서 쉴 새 없이 "뛰지 마. 조심히 걸어. 물건 떨어트리지 마. 빨리 방으로 들어가. 그러다 아래층에서 올라온다!" 리를 지르게 되었다. 뜩이나 예민한 성격의 둘째 아이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는가 싶더니 급기야 빈뇨 증상이 왔다. 하루에도 수십 번 화장실에 갔고 자다 깨서도 화장실에 서서 나오지 않는 소변을 보느라 힘들어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병원을 다니면서 겨우 아이가 좋아졌는데 때부터 나의 고 새로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온갖 소리가 귀에 는 것이었다. 이런 걸 귀트임이라고 한다나. 

분명 우리 집은 아닌데 어디선가 쿵쿵대는 소리, 고함소리, 웃고 떠드는 소리, 음악소리, 문이 닫히고 화장실 물이 내려가고 보일러 배관이 작동하는 소리까지. 치 소머즈가 된 것 마냥 모든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가 내 귀에만 들리는 소리인 남편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중해서 들으면 들리기도 하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9시가 되면 서둘러 불을 끄고 아이들을 재우는데 사방이 캄캄하고 조용해지는 순간부터 더욱 또렷하게 들리는 층간의 소음들 나를 롭혔다. 윗집 인지 옆집 인지  아니면 아집인 옆라인이나 대각선의 집인지도 모를 고 작은 소리들이 벽을 타고 - 화장실 환풍구 사이 지나- 천정 아래 맥없이 누워있는 나에게 집요하게 은밀하게 전해다. 점점 심장이 내려앉는 것 았고 나중에는 집에 있는 시들이 고통스러웠다. 나는 가족 모두에게 조용히 좀 하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어쩌면 아랫집 사람들도 이런 걸 경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싶다가도 지금 들리는 저 소음을 우리 집이라고 생각해서 또 글을 올릴까 봐 게 더 다.


우린 이렇게 숨죽이며 사는데, 차라리 인터폰으로 항의라도 해주면 해명을 할 텐데. 그, 언젠가는 항의를 하겠지. 그럼 증거를 보여줘야겠어. 라는 생각에 미치자 증거만이 살 길 같았고 소음이 들릴 때마다 녹음을 하고 기록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맘 카페에 층간소음 키워드로 알림을 해두고 글이 올라올 때마다 시 우리 집 얘기가 아닌지 살펴보았다.


편은 보다 못해 이사를 가자고 했다.

이사를 갈 거면 필로티층이 좋겠다고,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했다. 2년도 채 살지 못한 집인데, 이것저것 손을 보고 오래도록 살려고 마음먹은 집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사를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매물이 없다. 특별한 호재가 없어 늘 그대로였던 이 동네 집값이 대관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투자자들이 집을 사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돌더니 터무니없이 올랐고 놓았던 매물도 다 거둬들추세였다. 게다가 우리가 찾는 필로티를 구하기 더욱 어려웠다.


괴로워하는 나에게 지인은 충고해주었다.

최선을 다해 층간소음에 주의하되 더 이상 그런 글에 신경 쓰지 말라고. 직접 항의가 들어왔을 때 진짜 우리 집의 소음이 맞으면 사과하고 대책을 찾으라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맘 카페부터  탈퇴하라고 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지만 쉽사리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귀에 들리는 모든 층간소음을 기록하 동시에 우리 집 이야기가 올라오는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미친 소으니. 그러고 보면 소머즈는 일상생활 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속을 파고드는 모든 소리 선악을 구분해서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했을 테니. 이런 쓸데없는 상상까지 하며 몸서리를 는 나라는 인간이여! 정말이지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었다. 아래층과 대화를 해볼까, 아니면 쪽지라도 보내볼까 싶어서 다시 한번 맘 카페에서 그 글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치 거짓말처럼 그 글이 삭제되고 없었다.  댓글 답글까지. 아무리 찾아봐도 모두 자취를 감추고 라졌다. 그런 걸 '펑'이라고 한다지. 그러고 보면 그 아이디로 올린 제목에는 늘 (펑예)라는 글귀가 있었다. 삭제 예정.  나의 고통도 언젠가는 삭제가 될 예정이라면 좋을 텐데...


그 글을 그렇게 사라졌지만 맘 카페에는 여전히 윗집과 아랫집, 옆집과 그 옆집 그러니까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앞다투어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고 있다. '이러다가 정신병자가 될 것 같다, 살인나는 게 이해가 간다, 이사가 답이다, 이 정도도 이해 못하면 아파트에 살지 말라, 보복으로 우퍼를 달고 고무망치를 쳐라...' 모두들 층간소음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친다.

천천히 맘 카페의 탈퇴 버튼을 눌렀다. '탈퇴되었습니다'라는 팝업이 뜨 어딘지 모를 곳으로부터 쿵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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