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과정을 마치며 나는 무엇을 얻어가는가?
‘끝’이 다가온다. 대안학교 연수과정을 시작한 지 3개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놓았으며, 그로 인해 변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물이 반이 있을 때, 물이 반이나 남았구나(긍정)라는 생각과 물을 벌써 반이나 먹었다니(부정)와 같은 생각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3개월 동안 당연히 뭔가 달라졌으리라는 긍정, 혹은 3개월 동안 달라지기엔 너무 짧다라는 부정의 관점이 있지 않을까. 물론 둘 중 어느 한쪽일 수도 있고, 두 개의 관점 중 어느 쪽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양성과정의 끝을 맞이하여 나만의 결론을 내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매주 한번 ‘민주시민‘ 연수에서 3개월 과정이 끝을 맺어가던 때에 한 수강생이 소감을 발표하다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변화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속상했다고 한다. ‘속상하다’ 이 말 한마디로 그분의 소감을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좀더 면밀하게 본다면 그분은 회의를 치열하게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회의하면서 민주적인 소통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민주적인 소통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수강생들과 민주적인 회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좋은 회의인지 성찰하고 결론을 내면서 자신이 그 방법대로 회의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3개월의 시간이 지난 후 회의에서 자신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 앎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음을 지적받거나 혹은 스스로 깨닫고, 감정적인 동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눈물에서 모두가 잠시 멈칫했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분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떠올렸을까?
나는 그분의 눈물을 보며 ‘끝’을 생각했다. ‘끝’이 무엇이길래, 어떤 것의 ‘끝’에서 우리는 변화를 해야하는 것일까. 변화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일까. 끝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나의 경험이었다. 내가 거쳐왔던 것들의 끝을 생각해보았다.
먼저 내가 했던 연애들을 떠올려보았다. 흔히 연애를 할 때마다 조금씩 변하고 성장했다는 허물론이 있다. 허물을 벗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나는 과연 그랬는가? 나는 허물을 벗었던 것 같다. (번데기가 아니다) 달라진 듯 혹은 그 전과 비슷한 듯도 아닌 듯도 한 나를 만난 것 같기는 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러나 앞서 눈물을 보였던 그 분의 말처럼 변화했다는 것은 성충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는 과정을 거쳐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나비나 잠자리처럼.
상실의 경험은 고통스러웠다. 연애가 끝날 때마다 내가 만났던 그들을 미워하고, 미워하는 대상이 눈앞에 없어서 그 부재를 견뎌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밑바닥을 쳤던 감정을 회복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입맛도 없고, 생기도 없고, 눈에 초점도 희미해진 그 고통스런 시절의 끝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어느 순간 발바닥에 힘이 들어가고, 커피 한잔을 먹어도 맛이 있고, 친구의 농담에 웃기 시작하는 때가 온다. 그 순간을 감지하지 못하다가 내가 달라졌구나를 아는 때는 그 전환점을 꽤 지났을 때였다. 꽤 오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잔잔한 호숫가처럼 더 이상 출렁이지 않는 나를, 맑은 날을 꽤 여러 번 맞이하고 있는 나를 어느 순간 알게 된다. 다음 번 연애할 때 변하지 않는 나와 인식이 바뀌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고 나비나 잠자리처럼 변화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나의 속성은 그대로이지만, 사랑은 변한다는 것을 점차 받아들이는 ‘나’, 점점 욕심을 버리는 ‘나’가 된다는 것이다. 힘을 빼는 ‘나’가 보였다.
연애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픔을 겪을 때가 있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나서야 잔잔한, 맑은 날을 만나면 나는 변화되어 있었다. 나비나 잠자리처럼 변화하지는 못한다. 욕심을 버리고, 가벼워진 마음. 내려놓으면서 힘을 빼면서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로 인해 그전까지는 들리지 않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연수를 들었다. 그 연수의 끝에서는 앎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연수를 들으며 알게 된 사실을 내 교육활동에 쓰게 된 것도 있지만, 단기간이었다. 예를 들어 그림책 연수에서 그림책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게 되고, 수업에서 동기유발, 문학수업을 하는 데 활용한다. 연수에서 배웠던 내용이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면 또다시 내 시간을 내서 자료를 찾고, 적용해보면서 내 것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알고 있지만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이번에 들은 ‘민주시민’ 연수가 그렇다. 민주적인 소통을 하는 교사, 혹은 민주적인 소통을 하는 구성원으로서 살기 위해 수강했지만, 그렇게 변화하기란 쉽지 않음을 매번 느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민주적인 소통으로 치환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오랜 기간 훈련을 하고, 생활 속에서 꾸준히 접해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 그렇다. 아마 외국어도 그렇지 않을까. 생활 속에서 계속 만나지 않으면 쉽게 얻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장기간의 훈련을 통해 얻는 속성이자, 날마다 꾸준히 해야 얻어지는 습관과 같은 것이므로 습득된 ‘능력’이라고 일컬어야할 것이다. 민주적인 소통방식도 능력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다시 아까 눈물을 흘렸던 그분의 이야기로 돌아와본다. 3개월의 시간 동안 그가 얻기를 바랐던 것은 습관화된 능력, 앎, 인식과 행동의 변화, 그 어느 것이었을까. 그분은 민주적인 소통방식을 내면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소통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을 것이다. 그 연수는 2시간 중 한 시간은 강의, 한 시간은 수강생들끼리 회의 시간이었다. 나는 그 회의를 통해 앎은 있을지는 몰라도 회의 소통 능력이 향상되었다고 느끼진 못했다. 다만 여러 차례 소규모 회의에서 발언을 하면서 예전의 방식과 다른 회의, 강의를 통해 조금씩 회의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대안학교 연수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끝에 다다르니 처음이 떠오른다. 나는 왜 이 과정에 관심을 갖고 강의를 듣게 되었을까. 광명 볍씨학교의 교사를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만났다. 선배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늘 웃음을 지었다. 선배가 아이들과 만든 작품들 이야기를 할 때 자부심이 느껴졌다. 선배의 모습 속에서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자, 대안교육연대에 들어가보면 좋다고 한다. 선배의 이끎에 끌려 궁금해하며 들어가 보았다. 그때 시기가 적절하게 맞아 떨어져 삶을 위한 교사대학에서 대안학교 과정 연수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신규교사가 아닌 나도 들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대안 교육에 관심있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신청하게 되었다. 한마디 더 보태면 같은 시간에 하는 자격증을 따는 야간 연수가 있었는데, 그 연수를 포기했다. 아마도 첫 번째 들으러 갔던 연수내용이 나를 이끌었나보다.
첫 번째 강의는 한울 교장 선생님의 강의였다. 교장 선생님이 거쳐온 교육 운동으로서의 역사와 그분의 스승들, 교사들의 열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왜 교사의 길에 들어섰을까. 두 번째 시간은 금산 간디 선생님의 협동학습과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선생님의 도움을 바탕으로 삶을 통한 배움으로 나아가는 사례를 들었다. 교재에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적으며 모둠의 짝궁과 같이 이야기하면서 우리 모두 빛깔이 다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수업 내용은 교재 노트에 적혀 있다. 그때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서 노트를 보면 되지만, 그날의 울컥했던 감정은 잊혀지지 않았다. 내가 교사로서 소명의식을 가졌던 때가 떠올랐던 날이니까. 초심을 떠올렸던 날.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제천 간디학교에서의 1박2일 워크숍이다. 그곳에서 우리모둠은 활동발표 주제를 정하면서 손발이 맞는 느낌이었다. 각자가 원햐는 방식으로 순조롭게 이야기를 마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든다. 발표는 수료식 때하게 되겠지만, 준비하는 마음은 설렌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 외에도, 우리 모둠 선생님들이 각자의 관심사를 풀어내는 모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밤 늦게까지 했던-아마도 12시였을 텐데, 그 밤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하하호호 웃으면서 이야기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주로 5-6학년 학생들을 지도했던 나는 졸업식 또는 종업식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쓰세요.’ 아이들은 대개 교육여행, 체험학습, 특별한 교육활동을 했던 것을 떠올린다. 수업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경험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그 해의 기억을 아름답게 혹은 즐거웠던 기억으로 마무리하게 한다. 물론 교사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어떤 프로젝트 수업을 하면서 자신의 내면이 성장한 경험을 이야기해주길 바라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찾아온 제자가 이야기해주는 경험이나, 씨앗처럼 심겨져 있던 경험이 어떤 조건을 만나 발아되고, 싹이 자라서 그에게 열매를 맺고 그 경험을 후에 찾아와서 이야기해주는 경우이다. 물론 우리가 그 해에 한 것은 단지 씨앗을 심은 것뿐이었다. 어떤 학생은 그 씨앗을 키워 오랜 시간 물을 주고 키우면서 열매를 맺게 된다. 대안학교 연수에서 나는 우리 모둠 사람들, 워크숍, 강의하신 분들의 열정, 경험담, 간사님의 유머, 이사님의 경험담이 가장 떠오른다. 그러나 내 내면에 어떤 씨앗이 심겨져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안교육과 대안학교 교사, 대안학교가 걸어온 길, 제도화에서 들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는다. 대안학교 교육 운동으로서의 교육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과 그분들의 노력, 세계와의 연대, 제도화 과정에서 겪었던 부침과 지금의 결실 등을 마주하며 대안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내 어린 시절은 힘들 때가 많았다.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등교하는 교육 현장이었다. 해마다 좋은 교육자를 만났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끔 좋은 대우를 받았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교사는 항상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런 기회는 12년 동안 딱 세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내 담임 선생님은 해결해주었다.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내 세대의 학교교육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간헐적인 좋은 만남들이 좋아서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도 갖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교사가 되고 싶었다. 세 번의 그 대우가, 교육자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먼저 손내밀지 않아도 (고민 상담), 힘을 줄 수 있는 (먼저 이야기해주는 선생님) 교사가 되고 싶었다. 수업으로, 생활에서, 다방면으로 좋은 교사가.
대안교육 과정에서 내가 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길의 끝에 더 나은 교사로의 길을 알게 될 것만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다. 첫 수업에서, 두 번째 수업에서, 모둠에서 만나는 교사들에게서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은 나의 옛 경험이 불러온 힘이다. 대학 때 동아리 활동에 매진하다시피 했을 때 동아리에서 농촌으로 활동을 떠났다. 나는 덕분에 3년에 걸쳐 여름방학 며칠을 한 마을에 가서 난생처음 해보는 농사일, 밭일을 하면서, 땀흘리는 삶의 진가를 배웠다. 자연에서 길어올린 삶의 철학에서 나온 농부들의 말씀에서 감동을 얻었다. 그 어떤 스승에게 들은 이야기보다 깊었다. 나락 한 알에 우주가 있음을 알았고, 아침마다 이 나락들을 보살피고 길러내는 매일의 삶에 존경심을 가졌다. 그때의 기억이 가득해서, 올해 광명 볍씨학교에 방문했을 때, 농사일을 하며 겪었던 삶을 학교에서 배운다는 사실,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을 했던 시절이 대안교육 현장에서 하고 있음을 알고나니 부러웠다.
이번에 교사로서의 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명을 떠올렸고, 각자의 교육적 소명을 들으며 눈물이 났던 때가 있다. 초등학생들 캠프를 따라갔다가 그들의 맑은 마음을 만나 교사가 되고 싶었다. 교사의 사명을 이루고 싶어서 교사의 길을 걸었지만, 두 번째 해에 힘을 많이 주어서 아이들 눈밖에 났다. 그 뒤로 살기 위해 아이들 눈치를 보고, 포퓰리즘을 행했다. 그 당시 힘을 빼지 못하고, 뻣뻣하게 굴던 나는 꺾였고, 해마다 조심히 지내는 것이 다였다. 그러다가 혁신학교에 가면서 조금씩 교육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동료들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힘을 빼고, 학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알게 된 것도 중요하다. 나를 진단하고, 나의 방향을 찾아내는 일이. 양성과정 모둠 교사들과 이야기하면서 찾아냈다. 물론 또 다른 경험에서 조금씩 염두에 두었던 것인데, 연수 조별 발표 준비하는과정에서 확신을 얻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눈치보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잘못된 것을 보고도 슬쩍 넘어가버리거나 배려한다는 변명으로 상대의 모든 것을 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정해가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안학교 연수 3개월 동안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 대안교육을 배워왔고, 대안학교의 현장에서 들려주는 교사들에게 귀를 기울였다. 대안학교 선생님들, 예비교사들과 대화하며 나의 과거와 나의 소명의식을 일깨우기도 했다. 현재 내게 부족한 것을 떠올리며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연수의 끝에 가까워올수록 확실해지는 것도 있다. 나는 번데기 안에서 변화를 거쳐 나비처럼 날아오를리는 없다는 것이다. 나비처럼 날아오르기 위해선 고통의 시절을 겪어야 하는 것이기에. 하지만 알고 있다. 씨앗이 있음을. 민들레씨, 단풍나무씨, 겨자씨, 질경이씨, 토끼풀씨, 무슨 씨앗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때에 무엇을, 혹은 누구를 만나 발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게 왔다. 어떤 새싹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