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르프 학교 수학 수업>을 읽고
영화 <인터스텔라>가 그려냈던 지구에서 살고 있다고 상상해본다. 우리는 중력 이상 때문에 지구를 떠날 수가 없다. 지구는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표현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은 줄이지 못했다. 학교에서 기후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생태전환 교육을 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추겼던 욕망이 쉽사리 줄어들기는 어려웠고, 각 기관들도 미래세대와 타인에게 지구 위기에 대응하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나 하나는 괜찮겠지, 생각했다. 대도시의 차는 여전히 꽉꽉 막혔고, 산업이 발전한 국가들에서 베드타운으로 이주시킨 인력들이 혼자서 육중한 차를 몰고 출퇴근하여 공해가 심해져도 경제개발을 위해 수도권 확장 정책을 유지했다. 일회용품 사용은 여전했고, 줄인다고 해도 기업에서 생산해낸 제품들은 여전히 잘 팔려나갔다. 플라스틱 섬이 나타났다고 유튜브에서 떠들어대도, 우리 집 앞이 아니면 사람들의 충격은 곧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미세먼지와 가뭄으로 사막은 넓어졌으며, 먼지로 가득한 세상이 된 지구는 곡식도 단순화되어 가고, 생태계는 파괴되어 지구에 우울감이 퍼졌다.
그 전부터 땅과 하늘과 바다는 신음하고 있었지만, 몇몇 사람들만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치유하려 했을 뿐, 많은 사람들은 생활양식을 쉽게 바꾸지 못했다. 학교 역시 변화하고 있었지만 소수의 학교에서 시작된 생태전환을 향한 교육의 변화가 일반화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그려내듯, 더 높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올라가야 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삶, 경제적 풍요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며 살고 싶어서, 경쟁했다.
그렇게 멸망을 향해가던 인류의 상부조직 중에서 우주에서 신호를 받았다. 초월적인 존재는 지구의 인류에게 애정이 있어서, 웜홀을 만들어주었다. 그 덕분에 지구를 벗어날 행성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으로 떠난 한 우주비행사, 그는 딸을 지구에 남겨두고 연락이 두절되었다. 지구에 남은 자녀는 성장하여 재능있는 수학자(우주 과학자)가 되었다. 4차원 세계를 떠돌던 우주비행사 아버지가 자녀에게 메시지를 전하며 중력의 비밀을 풀어낼 수학 풀이를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행성 이주를 성공적으로 하고, 풍요로운 삶을 다시 일굴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누리던 것들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천재 우주 과학자가 지구 중력의 비밀을, 수식을 계산해서 해결하여, 우주로 떠날 수 있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끝에는 천재들 덕분에 구원받았다. 지구를 망쳐버린 인간들은 지구를 떠났고, 예전과 같은 혹은 더 첨단 사회를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었다. 영화는 길고도 심각했지만 재미있었다. 영화 속에서 한 명의 천재 우주과학자가 ‘영감’을 얻어, 스승이 일평생 매달렸던 미제 수식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에 큰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는 교사의 입장에서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하게 된다. 1) 모든 학생에게 중요하게 가르치는 수학과 2) 영재 대상으로 교육하는 수학.
전자는 기초 수학을 강조할 것이고, 후자는 고등 수학을 강조할 것이다. 우리 교육에서 가르치는 교육과정 속의 수학은 고등학교에서 수능 수학을 맞닥뜨리면 난이도가 높아지므로 고등수학이라고 부르겠다.
현재 우리 교육의 목표는 소수의 영재나 천재가 아니라 대다수가 수학적 사고력을 갖는 것을 수학교육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수학교육은 학력이 높아질수록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이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학습하는 집단들은 상위 등급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고급 수학을 견뎌내지 못하고, 수학을 싫어하고 포기하는 학생들은 하위 등급을 방석처럼 깔아주며 수학 시간에 멍하게 지내면서 살아간다. 그렇다고 대입이 끝나고 나면 지구의 비밀을 풀어 해결을 할 수 있는 위대한 수학자가 상위등급 만큼 나오는 것은 아니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통해 수학 영재를 발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공교육의 목표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지혜롭고 합리적인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수학을 포함하여 많은 교과들이 이 목표에 따라 과정을 설계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었다. 아무리 몇몇의 깨인 교사들이 수학을 일상에 도움이 되도록 지도하려고 해도, 실생활에서 잘 활용하고, 수학의 고등한 사고력을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지만, 교육과정 상 대입이 정점에 있다보니 수학이 기초 수학을 탄탄히 잡아주는 것보다 몇 단계 더 고등한 수학을 가르쳐야 되는 현실이다. 대입은 상대적이어서 줄을 앞에 서야 원하는 곳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것은 남들보다 앞에 서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우선시 되는 것은 앞줄에 서는 것이다. 계산법을 배워온 아이들은 수학시간에 풀이를 하면서 선행한 덕분에 풀이를 이해할 시간에 쉽게 풀고, 자신이 유능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렇게 나오게 되었어요?’ 하고 원리를 묻거나 이유를 물으면 쉽게 답변하지 못한다. 솔직히 대답할 수 있는 학생들은 많이 없었다. 차분하게 원리를 배우고 이러한 계산을 하게 된 이유를 가르치면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을 외워서(?) 풀이법을 생각해낼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수학은 여전히 혼자서 풀이방법을 고안해내기에는 많이 힘들게 설계되어 있다.
초등 5,6학년 때 ‘갑자기(학생과 보호자들의 표현)’ 수학이 어려워지는 것을 보면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고학년이 되면 한 두명씩 나온다. 때로는 공공연하게 혹은 조용하게 포기한다. 이들은 수학 선행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이해학습을 하기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수학 시간을 천천히 갔다.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설명과 예시 등을 들어가며 수학 원리를 가르쳤다. 일년 뒤, 한 학생은 수학이 재미있는 것 같다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 해에 이렇게 천천히 가는 수학 방식이 분명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영재 수학을 원한 몇몇 학생들에게는 목마름이 조금 있었다. 그것이 수학 시간에 드러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초등학교에서 기초 수학을 탄탄하게 지도하는 것이 수학을 통해 아이들이 추상성과 고등 사고력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 기자님이 수학을 포기하는 한국의 수학교육 현실에 대한 기사를 구성하고 있다며, 내게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6학년 학생들이 교실에서 어떻게 수업하는지, 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인터뷰를 할 거고, 나의 수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요청하였다. 나는 수학 수업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모든 학생을 참여시키기 위한 기초를 탄탄히 하는 수업을 하므로 자신있었지만, 내 수학수업을 돌아보며, 인터뷰를 최종 거절하였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기초를 탄탄히 한 수학에 대한 공책 자료나, 사진 자료도 남기지 않았고, 학생들의 수학적 사고력이 1년 동안 얼마나 발달했는지 측정(?)할 수 없었기에 인터뷰할 내용에 신뢰할 만한 자료가 없으므로 의욕을 잃었다. 그때 나는 일년의 수학수업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길이 없으므로 속단하지 않기로 했다. 또 더 많은 자료 축적과 수학에 대한 연구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원리를 가르치는 발도르프 학교의 수학이 궁금했다. 동료 교사 중에 발도르프 교육과정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수학 도형을 지도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책을 보시는 것을 봤는데, 그 책은 뭔가 다른 모습이 느껴졌었다. 수학 도형과 관련된 공책 자료가 책 속에 사례로 나타난 거였는데 도형을 예술적으로, 도전적으로, 스스로 탐구해보는 방식의 수학 공책이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발도르프 학교 수학수업- 수학적 센스는 어떻게 자라는가> 김진형 선생님의 책이다. ‘가르친다는 것’ 시리즈로 대안교육의 현장에 계시는 분들이 뜻을 모아, 대안학교 교육을 공유하고 나누겠다는 시도를 하였다. 이 책은 내가 궁금했던 내용들을 해소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겠구나 싶었다.
책 소개를 읽으니 무게감이 느껴진다. 머리말에서 시리즈를 펴내며 대안교육 25년 동안 창조적 축적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창조적 축적이란 새로운 교육을 창조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쌓이는 다양한 성공 혹은 삶의 경험 사례를 소중한 유산으로 축적하는 것을 말한다. 실패와 어려움 앞에서 주눅만 들었지 이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긍정적 에너지가 부족했다’고 한다.
나도 날마다 담임으로서 교육을 하면서 하루살이처럼 교육하고 마는 것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그것을 축적해볼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해마다 달라지는 담임 학년과 달라지는 학생들을 만나면서 숨가쁘게 달려가다보니 그럴 생각을 못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 몸에 쌓인 축적된 노하우들은 공유되지 않고 나만의 기술이 되어가기도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술은 늘고, 철학은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시기에 만난 <발도르프 학교의 수학수업>을 호기심과 연구심에 차서 읽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삶으로서의 수학, 현실에서 가져온 수학, 느리지만 깊이 있는 수학을 만나고 싶었다.
1학년부터 8학년까지 삶에서 배우는 수학을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것처럼 상세하게 묘사했다. 이렇게 배운다면 정말 재미이겠구나 싶었다.
인상적인 것은 158쪽부터 시작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정리를 해주셨다. 우리는 증명의 과정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외워서, 그것을 응용하고 익혀서 응용 문제를 풀었다. 계산을 하면서 두뇌활동이 시작되었다.
반면 발도르프 학교 수학에서 피타고라스 정리는 엄격하게 배운다. 유클리드 기하학 수업을 끝내갈 무렵에 나오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배우는 것이 증명의 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학생들이 엄밀하고 정확하게 작도를 하며 증명을 했다. 이러한 방식이 기하학 책에서 본 듯했다. 작도가 느슨해지면 증명에서 오류가 생기기에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정확성을 배운다고 한다. 이렇게 느리고 탄탄하게 배운 수학은 스스로에게도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교과를 배우면서 감탄을 한다는 것은 교과의 최종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것 아닐까.
177쪽에 가면 발도르프 학교의 수포자 이야기도 나온다. 수학이 실생활이었을 때와 달리, 사고 수학으로 전환하는 순간에 수학 수업의 위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활동을 하면서 발견하는 수학을 했을 때의 기쁨이 사고 수학으로 구조가 바뀔 때 힘들어한다고 한다. 7학년이 고비의 순간이라고 한다. 교사들은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수업의 주도권을 주며 이 고비를 넘겨갔다고 한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수학을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의지를 갖고 수학으로 고민을 하며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냈을 때의 그 기쁨이 말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뿌듯함이 생기지 않을까. 수학이 결코 쉬운 학문은 아니지만, 수학을 배운 결과, 문제를 발견하고,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사고하며, 지혜롭고 현명하게 해결하려는 시민들로 성장하는데 일조한다면, 수학을 좀더 하고 싶은 학문이 되지 않을까.
학교는 학교를 거쳐간 존재들을 민주 시민으로 키우고 싶어한다. 목표가 그렇다. 우리는 현재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제들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현재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지구의 문제를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연대하며 해결해나가려면 학교에서 문제 풀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이 끈기를 수학에서 배운다면 어떨까.
이 책을 읽으면서 삶으로서의 수학이 내 삶에서 도움이 되는 도구로서 나를 지혜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다고 보았다. ‘수학이 인류 문명의 정점에 있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수학이 병들고 아픈 인류와 지구를 살리는 도구로서 사용되지 않을까.
소수의 천재 우주 과학자가 초월적인 힘의 도움을 받아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영화 속 상상으로 남겨두자. 우리 모두가 지성을 키워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우는 것이 더 힘이 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