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스치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입사 동기와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너는 언제까지 회사 다닐 거냐?"
"형 상무까지는 가야죠" ( 이 동생은 올해 4월 퇴사했다 )
입사 3년차, 여전히 패기가 넘친다.
나는 받아쳤다.
"임원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 치고 그 자리에 간 사람을 못 봤다"
아무렇지 않게 상무를 달겠다는 동생 답변에 괜히 꼬투리를 잡았다.
임원은 신입사원에게 하늘같이 높고 별과 같다.
가문의 영광이다. 회사에서 받는 대우와 연봉은 매력적이다.
요즘에는 목표가 임원인 사람이 예전보다 줄었다
밑에 부하 직원이 바라보는 임원은 어떤 것일까?
임원이 던진 말 한마디에 팀장은 그 기회를 잡으려고 부하 직원을 달달 볶기도 한다.
말 한마디에 죽느냐 사느냐 그 경계에서 모든 부하직원은 에너지를 쏟는다. 파리 목숨이다.
그러나 임원 인사교체가 있는 연말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인사발령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오는 순간 사무실 분위기는 뒤숭숭해진다.
"제발 그 인간,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제발 집으로 꺼져 주세요" 모두가 하나같이 속으로 외친다.
상무님은 짐을 싸서 그길로 집으로 황급히 향한다.
그리고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사무실 내에 안도의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쳐다 봤다.
속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보낸 사람에 대한 여운은 1분도 안 남는다.
후임자에 대한 소문이 돈다. 사무실 공기가 금방 뜨거워진다.
앞으로 1~2년 어떻게 회사생활이 흘러갈까 각자 상상한다.
회사생활은 길다. 임원으로 있는 그 순간은 정말 짧다. 아주 짧고 강렬하게 불태우다 사라진다.
8년간 임원이라는 높으신 분과 함께 일했다. 불같이 속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어쩌다 그분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다.
임원 인사발령과 함께 마지막 인사도 없이 홀연히 집으로 향하는 높으신 분의 뒷모습을 보니 씁쓸했다.
더이상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퇴직자 신분이 되었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름 쿨한척하는 뒷 모습이 안타까웠다.
회사생활 최소 20년 이상은 해야 임원이 된다. 긴 세월동안 치열하게 싸우면 살아남은 업무능력과 생존능력은 정말 배우고싶다.
한 순간 임원에서 퇴직자의 신분이 되면 억울하겠다. 인생을 온통 회사에 갖다 바쳤는데 헌신짝이 된 기분이 들겠다.
나는 임원인사 발표와 함께 헤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아쉬운 감정이 남는다.
떠난사람에 대한 감정은 아니다. 그간 동고동락을 함께한 조직원과 마지막 인사 없이 사라지는 그런 분위기다.
마지막 순간에 여유 있게 웃으며 부하직원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떠나는 임원은 죄인인가?
그것을 바라보는 사원들은 무슨 생각을 가질까?
회사에 임원이 되고자 야망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열정 때문에 회사가 굴러가나보다.
임원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과 영향력은 내가 보기에 너무나 달콤하다. 열심히 회사생활 하다보면 그 자리가 곧 내 자리가 되겠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서 그 자리를 꿰차는 순간 얼마나 짜릿할까?
그 성취감을 맛보면 자기애가 충만해진다. 그러면서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겠지?
온정을 베풀고, 인간적인 교감을 쌓는데 관심있는 임원을 못 봤다.
그냥 주어진 칼자루 휘두를 만큼 다 휘둘러 보겠다는 심보다.
그래서 내 눈에 보기에는 임원은 불편한 존재다.
임원에게 하루종일 시달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숨 쉬는 팀장을 보았다. 임원은 악인 같다.
물론 내 경험이 다는 아니다. 누군가는 공감할 것이다.
임원은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좀 덜한 악인이거나 정말 끔찍한 극악무도한 악인이다.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뒷모습에서 그간 열심히 보필한 조직원에 대한 배려는 안 보인다.
그저 자신을 끝까지 지키려는 고집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