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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디 Sep 07. 2020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https://www.youtube.com/watch?v=4Yk6rJhR6pI



사실 처음 글을 읽을 땐 이런 신경 장애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는 내 삶에 감사했는데,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더 멋진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에 흥미와 애정을 느끼는 사람의 글을 읽을 땐 난 늘 겸허해진다. 자신의 일에 얼마나 애정이 있어야 이렇게 일을 하고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도 내 일에 애정을 갖고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의사로서 단순하게 케이스를 나열한 게 아닌 주체성을 지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 점이 좋다. 과학적 지식에 감동적인 스토리를 얹은 느낌이다.  




메커니즘과 생명이 교차하는 장소로 병리적 기술과 ‘한 인간의 역사’가 맞물리는 지점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위해.  


의사는 자연학자와 달리 다양한 생명체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을 이론화하기보다 단 하나의 생명체,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자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다. 


1부 상실


정교하고 전문화돼 있으며 인간의 뇌 중 가장 나중에 발달한 부분인 좌반구와 달리 우반구를 연구하는 일은 어렵다.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증상을 알 수 없고 외부 관찰자가 환자의 내면 상태를 상상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반구 증후군을 밝히는 신경학은 ‘개인 주체의’ 과학 또는 ‘낭만적’ 과학이다. 이 과학에는 자기 또는 인격의 밑바탕에 있는 기초가 검증되기 때문이다.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전체적인 처리를 해 현실의 시각적 자아를 갖추지 못한 p선생

시각인식불능증, 영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각피질에 생긴 결함 


우리는 사라물을 접할 때 그것을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본다.’ p선생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이 보는 능력, 즉 관계를 짓는 능력이었다. 


현재 우리의 인지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은 p선생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인지과학 역시 시각인식불능증에 걸려 있는 것이다. 


⁃ 길 잃은 뱃사람

특정 순간에서 기억이 멈춘, 새로운 기억을 만들수도 없는 지미

코르사코프 증후군 


기억을 조금이라도 잃어버려봐야만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억이 없는 인생은 인생이라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통일성과 이성, 감정 심지어 우리의 행동까지도 기억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을. 

‘인생을 살았다’는 의식은 인간에게 때로 위안을 주기도 하고 때로 쓰디쓴 회한을 주기도 하지만, 역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이러한 의식조차 없어진다. 

그렇더라도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뤄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 

제육감이란 근육, 힘줄, 관절 등 우리 몸의 움직이는 부분에 의해 전달되는, 연속적이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감각의 흐름이다. 셔링턴에 의하면 제육감은 자신이 자신임을 아는 고유 감각으로, 이것이 있어 비로소 몸이 자기 고유의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는 그런 상태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으며 따라서 공감을 얻기도 어렵다.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그것이 겉으로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 매들린의 손 

매들린의 손에는 기본적인 감각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 감각을 한 걸음 전진시켜서 지각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힘은 전혀 없었다. 그녀에게 동기를 부여해 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 결어되었던 인격통합이 가능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로이 캠벨이 말했듯이 인격통합은 행동 속에 있기 때문이다. 행동이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괴테는 말했다. 나는 갓난아기가 엄마의 젖가슴을 향해 혼자서도 손을 뻗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지각한 것, 다시 말해 첫 번째로 인식한 대상은 도너츠였다. 헬렌 켈러의 경우, 말을 매개로 한 최초의 인식이 물이었듯이.  


⁃ 대통령의 연설

언어상실증 환자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 나고 만다. 언어상실증 환자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듣고 속는 일도 없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파악한다. “입으로는 거짓말을 해도 표정에는 진실이 드러난다”고 니체도 말했지만 언어상실증 환자는 표정, 몸짓, 태도에 나타나는 거짓과 부자연스러움을 민감하게 파악한다.  

이것이야말로 대통령 연설의 패러독스였다. 우리 정상인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속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서 실제로 잘 속아 넘어간다(인간은 속이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속는다). 음색을 속이고 교묘한 말솜씨를 발휘할 때 뇌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 빼고는 전부 다 속아 넘어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2부 과잉


‘위험하리만치 좋은 몸 상태’와 ‘병적인 특출함’, 그것은 기만적인 행복감이다. 그 밑에는 심연이 입을 벌리고있다. 그것은 과잉이 놓은 무시무시한 함정이다.  


⁃ 익살꾼 틱 레이

투렛 증후군에는 증상이 다소 완만하고 양성인 것과 대단히 괴팍하고 흉포성을 보이는 것 등 여러가지 증상이 있음에도 밝혀졌다. 이 증후군에 걸린 환자에게서는 항상 그것(본능적 자아)과 나(이성적 자아) 사이의 싸움이 엿보인다. 


⁃ 큐피드병

그러나 마음의 평온과 순수한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간질도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상태가 곧 병리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게, 깨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몽롱하게 취해 있는 상태 속에 진실이 존재하는 세계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다.  


⁃ 투렛 증후군에 사로잡힌 여자

투렛 증후군 환자는 억제라는 정상적인 보호장벽, 다시 말해 기질적으로 결정되는 정상적인 자아의 경계가 없다. 따라서 그들의 자아는 살아 있는 한 언제나 공격에 노출된다. 내측과 외측에서 오는 충동에 휩쓸려 공격을 받는 것이다. 그 충동은 기질적인 원인에서 오는 발작성 충동일 뿐 아니라 인격과 관련이 있는 유혹적인 것이다.  

슈퍼 투렛 증후군 환자는 진정한 인간, 어디까지나 개체대운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충동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싸움에서 승리한다. 살아가는 힘,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 개체다운 존재로서 살고 싶다는 의자력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떠한 충동이나 병보다도 강하다.  


3부 이행


3부의 주제는 관자엽과 변연계에 특이한 자극을 가한 결과 발생하는, 사람을 과거로 이행시키는 심상과 기억의 힘이다. 이것에 의해 우리는 뇌 속이 어떻게 될 때 환영과 꿈이 일어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셔링턴이 ‘신비로운 직물기’라고 부른 뇌가 우리를 과거로 운반해가는 마법의 융단을 어떻게 짜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회상

관자엽 발작은 회상과 경험적 환각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밤에 돌연히 아일랜드 음악이 들려온 까닭은 대뇌피질에 있는 음악 기록의 흔적이 갑자기 활발해진 탓이다. 그것은 분명히 뇌졸중의 결과였고 혈전이 사라지자 노랫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그러한 간질성 환각, 몽상은 결코 공상이 아니라 기억이다. 지극히 명확하고 선명한 기억이며 더구나 당시에 체험할 때의 감정과 함께 떠오른다. 그러한 기억은 대뇌피질이 자극을 받았을 때마다 되살아나는데, 평상시에 떠오르는 기억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뇌는 그 사람의 전 생애에 걸친 기억을 완전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보관하고 있다. 모든 의식의 흐름은 뇌에 보존되며 생활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언제라도 떠오른다. 그러나 간질과 전기적 자극이라는 특이한 조건 하에서도 환기돼 되살아나는 일이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왼쪽 뇌실 관자뿔 부분에 금속 파편인 탄환 부스러기가 있었다. 그는 그 파편을 제거하는 것을 몹시 꺼렸던 것 같다. 파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 반드시 음악이 들려왔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선율이 머릿속에 가득 차 그것을 작곡에 이용한 듯하다. 


⁃ 내 안의 개

“내 자신이 개가 된 꿈을 꾸었어요. 그건 냄새의 꿈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잠에서 깨어보니 냄새로 가득한 세계였어요. 병원에 가서 마치 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어요. 그렇게 냄새를 맡아보니 눈으로 보기도 전에 그곳에 있는 스무 명의 환자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사람은 모두 각자의 얼굴 냄새가 있었어요. 뭐 후각 골상학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사람의 얼굴 생김새보다도 냄새가 훨씬 더 생생하고 더 암시적이죠.”

그는 사람의 감정도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지, 만족하는지 그리고 여자인지 남자인지까지. 냄새만으로 길을 잃는 일 없이 뉴욕의 거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전에는 지적이었으며 무엇이든 숙고하고 추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던 그는 이제 개개의 경험이 주는 거부하기 힘든 집정성에 비해 사고나 추상화, 범주화 같은 것들은 성가시고 진실성도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원래대로 돌아와서 기쁘긴 해요. 하지만 잃은 것도 무척 많은 것 같아요. 문명화되고 인간호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포기한 것들이 뭔지 이제 알겠어요. 순수한 지각의 세상, 모든 게 선명하고 생기 있는, 자족적이고 충만한 그런 세상요.” 

프로이트는 인간의 후각에 대해 인간이 성장하고 문명화되는 과정에서 억압된 희생양이라 했다. 그는 인간이 직립을 하고 전생식기 단계의 원초적인 성욕이 억압당하는 과정에서 후각도 함께 억압당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시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현상은 성도착증, 물품음란증의 경우에 흔히 나타나며 퇴행이나 도착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실제로도 보고되어왔다. 

어느 환자가 머리 부상을 당해 후각로 부분을 다쳤다.

“후각?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보통 때 누가 그런 겡 ㅣㅆ다는 걸 의식이나 하겠어요? 그러나 막상 잃고 보니 인생의 맛을 꽤 많이 잃어버렸지요. 냄새에 얼마나 많은 맛이 있는지를. 사람들 냄새, 책 냄새, 도시 냄새, 봄 냄새 등이요. 모든 것의 뒤에는 온갖 풍요로운 냄새가 있답니다.” 

그는 이제 냄새 기억이나 냄새 그림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봄의 냄새를 맡는다. 이런 보상작용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의 경우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베토벤이나 앞을 보지 못했던 프레스콧 같은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4부 단순함의 세계


그것은 마음의 ‘질’과 관계가 있다. 게다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높아지기까지 한 마음의 질이다. 그들의 마음은 설령 지능상의 결함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이외의 정신적임 면에서는 흥미롭고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이다. 우리는 지적장애인이 가진 마음의 질을 인정해야 한다.  

지적장애인들에게 특징적인 마음의 질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구체성’이다. 그들의 세계는 생기 있고 정감이 넘치고 상세하면서도 단순하다. 왜냐하면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추상화를 통해 복잡해진 것도, 희박해진 것도, 통일된 것도 없다. 

구체성이야말로 새로운 해명의 실마리인 동시에 장벽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감수성, 상상력, 내면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반면, 구체성에 사로잡히면 의미 없는 세세한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들에게는 양쪽의 가능성이 증폭돼 나타난다.  


⁃ 시인 리베카

더러는 지능이 매우 낮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물쇠를 열지도 못하고 하물며 뉴턴의 운동법칙을 이해하거나 세계를 개념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세계를 구체적인 것,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쌍둥이 형제

인간의 영혼은 그 사람의 지능이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리학자나 수학자 같은 사람들에게는 여기서 말하는 조화의 감각이 주로 지적인 것이 수 있다. 그러나 지적이라고 해서 감각적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감각이 전혀 뒤섞이지 않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감각이라 단어는 항상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감각적이라는 단어에는 개인적이란 뜻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과 어떤 점에서든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

자폐증 환자는 원래 좀처럼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립적으로 살아갈 운명이 놓인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에게는 독창성이 있다. 우리가 만일 그들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들의 독창성은 내부에서 생긴 것, 그들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을 알면 알수록, 그들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완전히 내부로 향하는 존재, 독창성이 있는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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