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점점 커지는데 여전히 업계에 판치는 불공정계약
최근 한 중견 웹툰작가와 만나서 식사를 하던 도중 이런 얘기를 들었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소속사와 계약을 맺을 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잖아요. 웹툰작가들도 많이들 그래요. 분명히 본인의 웹툰을 통해 수천만원에 달하는 매출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들은 거의 한 푼도 쥐지 못하고 오히려 손해를 떠안는 경우도 많고..."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마침 '이달의소녀' 전 멤버 '츄'가 소속사와 맺은 불공정계약이 화두가 됐던 때였다. 기사 등을 종합하면 소속사(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와 츄는 2017년 12월 전속계약 당시 다소 불합리한 계약을 맺었다. 모든 연예활동에서 발생하는 수익금 중 70%를 회사가 가져가는 반면, 활동에 드는 비용은 절반(50%)만을 부담하는 내용의 계약이었다. 더욱이 전체 매출 중 회사 쪽 수익을 먼저 나눈 뒤, 여기서 다시 비용을 제하는 방식이었다. 즉 만일 비용이 매출의 70%일 경우 츄는 연예활동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일을 하는데 오히려 돈을 줘야 한다니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연예계에서 이러한 불공정계약은 거의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고 이는 나중에 아티스트의 폭로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당연히 이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소속사가 나쁜 놈들이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행이 계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연예계가 비정상적인 관행 속에서 굴러간다는 의미다.
어쨌든 그 작가분에게 들은 얘기는 츄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구체적인 내용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한 것은 역시 일하면 일할수록 오히려 손해가 커지는 구조였다는 점이다. 신인 작가들은 일단 어떤 플랫폼이든 입점해서 데뷔를 해야 하니 급한 마음에 제작사들 쪽에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주로 후차감 MG가 많이 언급됐는데 구체적인 개념은 후술). 문제는 막상 작품을 연재하면 이러한 계약 조건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생각해 보면 신인 아이돌 가수와 웹툰작가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소속사와 계약을 맺어야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예기획사와 계약을 맺어 데뷔하는 아이돌 가수와 마찬가지로, 웹툰작가(웹소설도 마찬가지다)들이 웹툰 플랫폼(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 등)에 연재 계약을 맺을 때는 보통 'CP'라 불리는 제작사들과 계약을 체결한다. 제작사가 플랫폼과 작가 사이에서 일종의 '중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작가들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았던 네이버웹툰 역시 요 몇 년 간 CP를 통해 작가들과 계약을 맺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그리고 소속사(제작사) 앞에서 철저한 '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돌 연습생이든 작가 지망생이든 '데뷔'가 지상 과제다. 데뷔가 절실한데, 데뷔라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기회가 주어지면 덥석 물 수밖에 없다. 결국 그 데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게 소속사(제작사)이고, 그러다 보니 전권을 이들이 쥐고 있고 필연적으로 소속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아티스트를 상대로 계약을 체결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에게 불리한 온갖 형태의 계약들이 탄생한다. 그렇게 데뷔를 했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사례가 쌓인다.
웹툰작가들에 대한 불공정 계약 사례는 지난달 국회에서 벌어진 '웹툰작가 창작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간담회' 토론회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토론회에서 소개된 사례를 보면 분명히 높은 매출을 거뒀음에도 그에 비해 작가들에게 턱없이 적은 돈을 쥐도록 하는 악랄한 계약들이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수익 분배 방식으로 계산을 해 보면, 작품 연재로 총매출 1000만원을 찍었음에도 정작 작가는 65만원의 손해를 보는 구조다.
계약 방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우선 'MG(미니멈 개런티)'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MG는 제작사 혹은 플랫폼과 최소수익 보장을 약정하고 이를 미리 지급받는 방식이다. 즉 작품 연재 전에 제작사가 작가에게 100만원을 먼저 지급하면, 작가가 연재한 작품을 통해 거둔 매출을 통해 이를 순차적으로 갚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작가가 매출의 100%를 다 가져가는 게 아니라, 플랫폼과 제작사가 일정 비율의 매출을 가져가고 남은 매출만을 손에 쥐게 된다. 여기서 MG의 종류가 다시 '선차감'에서 '후차감'으로 나뉘게 된다. 선차감은 선지급받은 MG를 갚는 데 매출 전부(물론 인앱결제 수수료-보통 매출의 30%다-나 결제수수료 등은 제외하고)가 반영되는 방식이고, 후차감은 매출 중 작가의 몫만이 MG를 갚는 데 반영되는 것이다.
즉 만일 MG가 100만원이고 작품으로 150만원의 매출을 거뒀다면 선차감 방식으로는 MG를 다 갚고 작가들이 추가 정산을 받을 수 있는 반면, 후차감 방식으로는-보통 작가가 손에 쥐는 금액이 전체 매출의 2~30% 정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MG를 다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MG라도 방식에 따라 작가들이 체감하는 정도는 큰 차이가 난다. 문제는 선차감-후차감 중에서 업계에서는 후차감이 훨씬 보편적이라는 것이고(선차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한다) 후차감에서 변형된 형태의 다양한 MG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여기서 일일이 다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확실한 건 결국 이익을 보는 건 작가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매출 1000만원에도 작가가 65만원 손해를 보는 계약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우선 1000만원 중 앱 마켓이 30%를 가져간다. 남은 700만원 중 플랫폼이 절반을 가져가면, 다시 남은 350만원 중 90%를 제작사가 가져간다. 이제 남은 돈은 35만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작가가 MG를 100만원으로 맺고, MG를 갚는 방식을 후차감으로 했을 경우 여전히 65만원을 더 갚아야 한다. 즉 MG를 다 갚으려면 작가는 적어도 2천만원 이상을 더 벌어야만 하는 셈이다.
물론 이는 좀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다. 플랫폼 수수료는 보통은 40% 전후에서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제작사가 남은 몫 중 90%까지 가져가는 사례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보통 절반 이상을 가져가기는 한다). 다만 여기서 플랫폼과 제작사의 배분율이 조금 작아진다고 해도 작가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턱없이 적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보통 웹툰은 글작가와 그림작가가 구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은 수익에서 작가들 간 배분이 또 필요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구조라고 요약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나마 요즘 연예계 쪽에서 불공정 계약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츄, 이승기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연예인들이 총대를 메고 본인이 이전에 겪었던(혹은 현재진행형인) 불공정 계약에 대해 공론화를 했기 때문에 문제로 널리 인식된 것이다. 츄의 경우 소속사에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본인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을 변경하는 것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비하면 웹툰이나 웹소설 쪽은(물론 한국만화가협회나 웹툰작가노동조합 등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문제제기가 부족해서 그런지 이러한 부분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웹툰 작가들의 팬이 늘어나는 만큼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는 팬들도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왕이면 유명 작가들도 목소리를좀 더 내 줬으면 한다. 부담스럽긴 하겠지만.
지난해 한국 웹툰 시장 전체 규모가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웹소설 역시 아직 정확한 수치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사상 처음으로 연간 시장 규모 1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처럼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는 가운데서도 정작 그 원천이 되는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들의 계약은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상황이다. 시장이 커지는 만큼 내부 관행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자리잡는 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