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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크렐 Mar 28. 2021

'좋좋소'가 중소기업 까는 드라마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충범아, 그래도 너만 믿는다

*아래에는 웹드라마 '좋좋소'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를 요합니다.


저 말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뜻이 내포돼 있는가


요즘 유행하는 웹드라마인 '좋좋소'를 보며 'PTSD'를 호소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소위 'ㅈ소기업'이라고 불리는 중소기업의 안 좋은 점들을 있는 그대로 디테일하게 묘사하는데, 마치 내가 실시간으로 상황을 겪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반응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다녀봤거나 다닌 적이 있는 시청자들은 이 상황이 더욱 실감난다고 입을 모은다. 나 역시 그 중 하나다. '좋좋소'에 나온 회사만큼 상황이 안 좋은 회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ㅈ소기업'적인 면을 볼 수 있는 중소기업에 다니니 어느 부분에서는 뼈저리게 공감이 가고는 했다. 이런 흡입력 때문인지 몇 번이나 돌려보게 된다.


중소기업에서 길게 근무했던 유튜버 '이과장'이 직접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덕분에 디테일이 살아났고, 굳이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능한 유튜버 '빠니보틀'의 연출 방식이 빛을 발하면서 사람들의 호응을 더욱 불러 일으키지 않았나 싶다(사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들이다). 여기에 조충범, 정사장, 백차장 등 주요 등장인물 역을 맡은 배우들의 깜짝 놀랄 만한 연기력까지 받쳐주면서 그야말로 흥하고 있다.


그야말로 요즘 구직자들이 "왜 중소기업을 가지 않고 공무원·공기업 시험이나 대기업에 매달리는가"를 '좋좋소'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댓글 중에는 "'좋좋소'가 좋은 공부 자극제다", "중·고등학생들에게 공부 자극 영상으로 보여줘야 한다" 식의 반응이 많다. 'ㅈ소기업'의 실태를 '좋좋소'에서 보고 깜짝 놀라는 취준생들과 "현실은 이보다 더하다"며 쓰디쓴 댓글을 남기는 실제 중소기업 재직자들의 댓글도 보인다. 


그런데 사실 '좋좋소'가 단순히 'ㅈ소기업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드라마'로 끝난다면, '좋좋소'는 그저 누군가에겐 소름돋고 누군가에겐 '웃픈' 콘텐츠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제 전체 15부작 중 11부작이 끝났으니 슬슬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데, 앞으로는 그저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물론 현실을 잘 비춰주는 콘텐츠도 충분히 좋은 콘텐츠다. 하지만 단순히 'ㅈ소기업 ㄹㅇ 개노답 ㅉㅉ' 수준의 메시지가 전부라면 굳이 '좋좋소'를 봐야 할 이유는 없다. 이미 인터넷에 전직 혹은 현직 'ㅈ소기업' 재직자들의 무용담(?)이 글이나 영상 형태로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쭉 보다 보면 '좋좋소'에 나온 사례 정도는 애교다. 실제 'ㅈ소기업'들이 워낙 많고 그런 만큼 이런 곳에서 학을 떼다 나온 사람들도 수두룩하기 때문에 이를 비판할 사람들은 많다. 그런 만큼 우리가 다같이 'ㅈ소기업'을 씹고 뜯고 맛보고 까기도 쉽다.


배우가 아니라 진짜 ㅈ소기업 사장을 데려온 듯한 사장님...

 


9화부터 등장한 '좋좋소'의 뉴 빌런. 저 말 한 마디에 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까지 '좋좋소'는 작중 무대인 정승네트워크의 'ㅈ소스러움'을 에피소드별로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주먹구구식이었던 첫 면접, '현타'가 밀려오는 첫 출근날, 예정에도 없던 야근, 뼈빠지게 야근을 하고도 사장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이어지는 갈굼…참다 못해 '추노'를 시도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주인공 조충범의 현실까지. 정승네트워크는 장점은 찾으려야 찾을 수 없고 매번 단점만 갱신되는 그야말로 '개노답' 회사다. 


그럼에도 적어도 '좋좋소'가 'ㅈ소기업 까기' 그 이상을 추구하는 드라마라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주인공 조충범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등장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조금씩이나마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바로 조충범이다. 특히 11화 마지막에서 나온 이과장과의 술자리에서 충범이가 한 말은 그래도 그 동안 그가 많은 고민을 해 왔음을 보여준다. 


"저는요, 여태까지 평생 도망만 다녔던 것 같습니다. 힘들면 피하고, 외면하고, 쉬운 길 찾아다니고...그런데 과장님 보면서 제대로 한 번 해 봐야겠다. 그리고, 한 사람한테만이라도 인정받고 싶다.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주식 마이너스 된 거 갚아야겠다..."


사실 조충범이라는 인물도 드라마에서 마냥 긍정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지방대 영문과를 졸업했는데 토익은 500점이고,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다룰 줄 아는 언어는 HTML이고, 사회 생활 경험은 알바 몇 번이 전부고, 무작정 주식에 손을 댔다가 손해보고…그래도 조충범은 매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성장한다. 그래도 입사 직후보다는 빠릿빠릿해졌고, 일도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현장 소장에게 칭찬도 받고, 이제는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모습이다. 그래도 본인이 열심히 해서 뭐라도 이루고 싶다는 결심을 하는 게 쉽지가 않은데 말이다. 


즉 조충범이 극중에서 어떤 마음을 먹고 이를 실행에 옮기느냐가 앞으로 이야기의 메인 스토리를 좌우할 전망이다. 물론 말단 사원 하나가 변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주변이 크게 달리지지는 않을 테다. 2002년 설립된 정승네트워크는 10년 넘게 그렇게 굴러왔으니 한 사람의 각성만으로 변할 리가 없을 거고, 회사의 다른 인물들도 계속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수많은 청년들의 고민이 아닐까


그래도 조충범이든, 더 나아가 정승네트워크에 있는 구성원 누구든 간에 조금이나마 '달라져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획기적인 변화는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개연성이 떨어질 것이다. 작은 가능성을 잘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좋좋소'의 작품성에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판단한다. 한국에서 전체 근로자의 약 80%가 중소기업 재직자라고 하는데 이들에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클 테다.


총감독인 빠니보틀은 지난달 '좋좋소'를 소재로 진행된 컴퍼니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좋좋소'의 메시지는 '중소기업 안 좋으니 가지 말라'가 아니라 '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을 놀리고 까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고발'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덧붙였다. 제작자들도 '좋좋소'가 단지 'ㅈ소기업 개노답 ㅉㅉ'으로 끝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쪼록 오랜만에 좋아하는 드라마가 나온 만큼 마무리도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충범아, 그래도 너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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