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와 끼워팔기, 이를 통한 계획된 '락인 효과'
최근 쿠팡을 탈퇴했다. 그간 와우멤버십은 물론, 쿠팡플레이의 '스포츠 패스'까지 가입해 쿠팡에 월 1만7800원을 꼬박꼬박 내 왔다. 처음에 쿠팡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 해도 곧바로 탈퇴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사태에 대응하는 쿠팡의 태도가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고, 결국 고민 끝에 회원 탈퇴를 하고 쿠팡 관련 모든 앱을 지웠다.
결정적으로 사태가 커지면서 박대준 대표가 부랴부랴 사퇴하고, 새로운 대표를 외국인 임원으로 내세워 김범석 의장 대신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을 보면서 탈퇴 결심을 굳혔다. 물론 외국인 임원을 국회에 출석시키는 것은 국내에 진출한 해외 빅테크 기업(구글, 애플 등)들이 당장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얄밉지만) 늘 취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쿠팡은 자신들을 '한국 기업'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는 행동은 이들과 닮았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창업자, 의장, 회장 등 기업의 총수, 실권자가 직접 나와 상황을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사과는 한다. 쿠팡은 달랐다. 한국에서 창업했고, 한국에서 90% 이상의 매출이 나고 있음에도 정작 최고 실권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한다. 여기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다만 정작 실제 탈퇴하기 전까지 수차례 고민을 거듭했다. 하루도 걸리지 않아 무료 배송을 해 주는 압도적인 편리함도 편리함이었지만, 가장 큰 고민은 다름 아닌 쿠팡플레이였다. 쿠팡플레이에서 독점 생중계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등 각종 스포츠 콘텐츠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콘텐츠다. 특히 한국에서 프리미어리그는 2031년까지 쿠팡플레이가 독점 생중계하기로 돼 있어, 이를 해지하면 합법적으로는 볼 방법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프리미어리그를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쿠팡 로켓와우 회원에 가입해 스포츠 패스를 구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쿠팡을 해지하는 순간 나는 한국에서 해외축구 시청을 사실상 할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을 불매하는 것은 개별 소비자 관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생활의 편리함, 소소한 취미 등 누리고 있는 것을 하루아침에 포기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쿠팡 등 대형 플랫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비자들이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포기하기 힘들게 만들도록 노력한다. 여기에는 '끼워팔기'와 같이, 법적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방식도 포함된다.
쿠팡 와우에 가입하면 쿠팡플레이 서비스를 공짜로 주는 것은 전형적인 '끼워팔기'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끼워팔기란 말 그대로 어떤 제품을 팔 때 다른 제품을 얹어서 파는 것으로, 주로 인기 있는 제품에 인기가 별로 없는 제품을 끼워넣어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인기 없는 제품의 인기도 기존 제품의 효과로 자연스럽게 높아진다면 전략 성공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끼워팔기도 마찬가지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끼워팔기'로 시정조치를 받은 구글 사례를 보자. 구글은 수년 전부터 '유튜브 프리미엄'에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유튜브 뮤직' 이용권을 얹어 판매했다(현재 가격 월 1만4900원). 즉 광고 없이 백그라운드 재생으로 유튜브를 보려면, 아무리 이용자가 유튜브 뮤직을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만일 별로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를 덜어내고, 대신 월 구독료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선택지가 있다면 소비자 선택지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구글은 한동안 이러한 끼워팔기를 고집했다.
이로 인해 구글은 두 가지 이득을 얻었다. 우선 유튜브 뮤직이라는 서비스를 더함으로써 다른 동영상 서비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월 구독료를 책정할 명분을 얻었다. 타 OTT 서비스는 단일 서비스만으로 월 1만 원 안팎인 반면 유튜브는 유튜브에 유튜브 뮤직까지 제공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가격을 자신 있게 매긴 것이다. 유튜브 뮤직의 영향력도 강해졌다. 기존 한국에서는 멜론, 플로, 벅스 등이 경합 중이었는데 유튜브 뮤직이 유튜브 프리미엄과의 연계를 통해 빠르게 점유율을 늘렸다. 유튜브가 대체 불가능한 동영상 플랫폼이 되면서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용하는 고객도 증가했다. 이들은 무료로 쓸 수 있는 유튜브 뮤직을 놔두고 굳이 다른 음악 플랫폼을 쓸 이유가 없다. 즉 유튜브 뮤직은 자체 서비스 경쟁력보다는 유튜브와의 강력한 연계 덕분에 시장 지배력을 확대한 것이다.
그러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의 이러한 판매 방식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조사를 단행했고, 결국 올해 여름 시정조치를 내렸다. 그제야 구글은 유튜브 뮤직을 뺀 '유튜브 프리미엄 라이트'라는 새로운 요금제를 월 8500원에 출시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2020년 유료화 이후 무려 5년 만의 변화다. 구글은 이례적으로 행정소송 대신 신규 요금제 출시를 택했다. 본인들도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일 테다.
쿠팡이 쿠팡플레이의 점유율 확대를 위해 취한 방식도 이와 같다. 2020년 쿠팡플레이 출시 이후 쿠팡은 로켓와우 회원들에게만 쿠팡플레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을 지난 6월까지 유지했다(지금은 쿠팡 일반 회원들도 광고 시청을 하면 쿠팡플레이의 상당수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스포츠 패스'는 여전히 로켓와우 회원 전용이다). 이 기간 로켓와우 월 회비는 월 2980원에서 월 4990원, 현재 월 7890원으로 약 2.5배나 뛰었다. 쿠팡이 큰 인기를 끌며 로켓와우 가입 회원들도 빠르게 증가했고 쿠팡플레이를 이용하는 가입자 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지난 11월 기준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OTT 플랫폼 중 넷플릭스(1444만 명)에 이은 2위(819만 명)였다.
물론 쿠팡플레이가 다양한 스포츠 콘텐츠 중계권을 확보하고, 각종 오리지널 콘텐츠를 많이 발굴하는 등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키운 것도 맞지만, 안정적인 이용자 확보의 배경에는 쿠팡과의 결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힘을 키운 쿠팡플레이는 반대로 쿠팡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용자들의 이탈을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됐다.
경쟁당국에서 플랫폼의 끼워팔기를 독과점 행위 중 하나로 보는 이유는, 어느 한 분야의 시장에서 강력한 점유율을 가진 플랫폼이 끼워팔기를 활용해 다른 시장에서도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디오 스트리밍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플랫폼인 유튜브는 자신의 시장 지배력을 활용한 끼워팔기로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유튜브 뮤직을 고속성장시켰다. 쿠팡 역시 이커머스 시장에서 엄청난 성장세를 나타낸 영향력을 활용해 OTT 시장에서 쿠팡플레이의 점유율을 단기간에 늘렸다고 볼 소지가 있다. (물론 쿠팡이 유튜브만큼 명백한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쉽사리 쿠팡의 행위를 끼워팔기라고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러한 위험 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입장에서 끼워팔기는 참으로 매력적인 선택지다. 대형 플랫폼은 필연적으로 여러 사업 분야에 발을 걸치게 되는데,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끼워팔기를 단행하면 안정적으로 확장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것이 잘 이뤄진다면 이용자들이 플랫폼에 익숙해져 다른 플랫폼을 사용하지 못하는 '락인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다.
처음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을 때 쿠팡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막상 쿠팡 없는 일상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워낙 쿠팡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다 보니, 로켓배송에 매달 7890원을 지불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에 쿠팡이츠를 쓰면 배달비가 무료가 되고, 쿠팡플레이도 무료로 볼 수 있으니 아무리 가격을 올리고 올려도 로켓와우는 여전히 가성비가 좋은 멤버십 서비스로 여겨졌다. 주변 몇몇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쿠팡을 이미 끊었거나 끊을 것이라고 대답한 분들도 많았지만 워낙 쿠팡을 많이 써서 해지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쿠팡의 대체 서비스는 많다. 마음만 먹으면 쿠팡을 탈퇴하고 언제든지 갈아탈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로켓배송(빠른 배송도 배송이지만, 택배비가 언제나 무료라는 점도 엄청난 메리트기는 하다)과 무료 배달비, 무료 OTT를 한꺼번에 멤버십 하나만으로 한꺼번에 누릴 수 있는 서비스는 없다. 네이버 등 유사한 방향을 쫓아가는 몇몇 업체들이 있기는 하지만... 더욱이 사람들은 한 번 깊이 이용한 서비스를 갑자기 다른 서비스로 바꾸는 것을 귀찮아하고 어려워한다. 큰 계기가 없다면 보통 잘 쓰는 서비스를 계속 쓰려고 한다. 쿠팡이 수년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온 플랫폼 역량은 소비자들의 플랫폼 이용 습성과 결합해 강력한 락인 효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는 쿠팡이 온갖 비난 여론에도 아직까지 시원찮은 사과로만 일관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천이다.
3년여 전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카카오의 모든 서비스가 멈췄던 '카카오 먹통 사태'를 생각해 보자. 예고 없는 서비스 마비에 전 국민이 불편을 겪었고, 카카오의 미숙한 초동 대응까지 도마에 오르며 라인, 텔레그램 등 다른 메신저로 갈아타야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사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카카오톡의 이용자 수는 평소 수준을 회복했고 라인, 텔레그램의 이용자 수 증가는 일시적인 수준에 그쳤다. 내가 카카오톡을 안 쓰려고 해도, 주변 사람들이 여전히 이를 주로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후 카카오는 이용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에 수익성 증대를 위한 각종 기능들을 추가하며 강력한 락인 효과를 최대한 누리고자 했다. 이렇듯 한번 기세를 탄 대형 플랫폼들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꾸준한 성장세를 지속한다.
이렇듯 쿠팡은 강력한 서비스에 더해 끼워팔기와 최혜대우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사용자들의 이탈을 방지했다. 그럼에도 탈퇴하려고 하는 이용자들은 끈질기게 회유했다. 탈퇴하려는 이용자를 "정말 탈퇴하시겠어요? 쿠팡으로 그동안 이 정도 금액을 절약하셨는데도요?" 등의 문구로 수차례 만류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들만을 위한 할인 쿠폰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한다. 애초에 탈퇴 버튼을 찾기 어려운 곳에 배치한 것을 보면 (다른 플랫폼들도 많이 쓰는 방식이긴 하지만) 좀 치졸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쿠팡의 이용자 수와 결제액 등이 유의미하게 줄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소비자들이 쿠팡에 대한 실망감이 컸는지 알 수 있다. 12월 초만 해도 오히려 전보다 이용자 수가 일시적으로 늘었다는 기사가 보이기도 했지만, 최근 데이터 흐름은 반전됐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모바일인덱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12월 2주차와 3주차의 주간 결제금액이 9700억 원대로 최근 주간 결제액인 1조 원보다 확연히 낮아졌다고 한다(인용 자료 링크). 1인당 평균 사용 시간은 8.9분에서 8.6~8.7분으로 감소했으며, 쿠팡 앱을 실제로 실행한 스마트폰의 수는 12월 3주차 들어 11월 대비 1.1%까지 줄었다.
대체 플랫폼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강해지고 있다. 얼마 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쿠팡 대신 쓸 만한 플랫폼이 뭐가 있을지 의견을 모으는 설문조사(결과를 정리한 링크)를 진행했다. 12월 20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는 다양한 대체 플랫폼들의 이름이 언급됐고 이들의 장점도 공유됐다. 쿠팡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한 번에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새로운 플랫폼을 찾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탈팡'을 결심한 사람들이 적잖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실제 쿠팡의 이용자 지표가 급격히 줄어든 12월 2주차, 3주차에 네이버 쇼핑과 컬리 등 경쟁 플랫폼의 지표는 반대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글을 쓴 12월 25일 현재도 쿠팡은 "노출된 개인정보의 외부 전송은 없었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것 외에는 대응 기조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25년의 마지막인 오는 30일과 31일 쿠팡을 겨냥한 연석 청문회가 무려 6개 국회 상임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데, 만일 여기서마저 쿠팡이 외국인 대표와 임원을 어설프게 내세우고, 면피성 보상책 발표 등으로만 일관한다면 '탈팡' 행렬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결국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범석 의장이 어떤 식으로든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 쿠팡에게 가장 큰 위협은 실제 활성 이용자 수와 결제액 등의 감소이고,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김범석 스스로가 부채질한 것이나 다름없다.
아무튼 오늘 쿠팡을 해지한지 일주일이 지났고, 아직까지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자주 마트에도 가 보고, 해외축구 시청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취미생활을 찾아봐야겠다. 끼워팔기와 락인효과는 분명 플랫폼이 나를 설득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기회에 이를 한 번 제대로 뿌리쳐 봐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