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수를 보며 떠오른 작년 이맘때 KT의 구조조정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이하 '김 부장')'에서는 이동통신사(극 중 명칭 ACT)의 희망퇴직 관련 에피소드가 다뤄진다. ACT 영업팀에서 아산공장 안전관리팀장으로 발령받아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던 김낙수(류승룡 분)에게, 인사팀장인 최재혁(이현균 분)이 직접 찾아와 넌지시 건네는 희망퇴직 관련 공지문은 김낙수의 마음을 더욱 싱숭생숭하게 한다. 최재혁은 김낙수에게 아산공장에 권고사직 대상 20명을 추리라고 요구하고, 그러면서 돌아오는 월요일 전사 공지될 희망퇴직 공고를 쓱 내민다. 이걸 안 하면 사실상 완전히 짐 싸야 한다는 시그널이리라. 결과적으로 김낙수는 희망퇴직 처리돼 회사를 나가게 되고, 퇴사 이후 겪는 이런저런 일들이 드라마 중후반부의 주요 스토리가 된다.
'김 부장'과 관련해 몇몇 통신사 재직자 분들이 자신의 SNS에 남 일 같지 않다, 감정이입된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올렸다. 관련 기사도 많이 나왔다. 통신사 특성상 장기 재직자들이 많아 만년 부장들이 수두룩하고, 이들 간 임원 승진을 위한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또 이들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에 늘 언제 내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회사에서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해 온 역사가 있기에 더더욱 그럴 테다. 물론 장기근속자들은 희망퇴직을 하면 막대한 퇴직금과 함께 수억 원에 달하는 위로금을 별도로 받는다. 그럼에도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갑자기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불안정성은 그들에게 큰 압박일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가 통신사를 주요 배경으로 잡은 것이 참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통신사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어났기 때문이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심심찮게 희망퇴직 관련 소식이 들리지만, 이 분야의 대명사는 ACT의 실제 모델인 KT다. KT에서는 수천 명을 감축하는 희망퇴직이 몇 년에 한 번씩은 벌어져 왔다. 당장 지난해에도 KT는 4500여 명에 달하는 본사 직원을 희망퇴직, 자회사 전출 등으로 내보냈다. 전체 1만 8500여 명 중 4500여 명이 나갔으니 거의 4분의 1이 회사를 떠났다. 엄청난 인력 구조조정이었지만 KT가 감축 목표로 했던 약 6000명 수준에는 못 미쳤다. 당시 나는 기자로서 이 소식을 처음 전하고 취재에도 들어갔는데 김 부장을 보니 지난해 KT의 구조조정 생각이 절로 났다.
희망퇴직 대상자들도 정말로 희망퇴직을 하느냐, 자회사로 가느냐, 아니면 직무 전환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본사에서 버티느냐를 고민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본사 잔류가 최선일 테다. 하지만 '김 부장'의 허태환(이서환 분)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쉽지 않다. 허태환은 극단적 선택 시도 끝에 당초 울릉도 발령(직접 통신설비를 고치고 수리하는 고된 업무였다)에서 아산공장 발령으로 정리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회사를 떠나 경쟁사 영업 담당으로 이직하는 편을 택했다. 허태환은 그래도 동종업계로 이직했다는 점에서(기업 규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차이나지만) 아주 안 풀린 케이스까지는 아니라고도 할 수 있을듯하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김낙수가 됐고 허태환이 됐다.
지난해 KT가 처음 내부 공지한 구조조정안은 그야말로 살벌했다. 관련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이렇다.
*KT 본사에서 선로 통신시설 설계·시공·유지보수, 고객 전송/개통 AS 업무, 전원시설 설계·시공·유지보수, 도서·선박 통신 설계·시공·유지보수 관련 직종 종사자들은 모두 2곳의 신설 자회사 전출 대상
*신설 자회사 2곳으로 배치되는 인원 중 근속연수 10년 이상 직원은 기존 급여의 70%만 지급+별도 위로금
*자회사 전출 대상 업무에 더해, 법인 CRM 업무와 상권영업·법인가치영업 등의 직종 종사자 중 해당 분야 10년 이상 근속자들은 모두 특별희망퇴직 대상
*특별희망퇴직 대상자들에게는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2~3억 원의 위로금 지급
*자회사 전출+특별희망퇴직 등 포함해 5700명~6000명 인원 감축
*특별희망퇴직이나 자회사 전출 등에 동의하지 않을 시, 신규 영업 관련 조직으로 일괄 발령받아 근무
당시 KT는 이러한 사항을 노조와의 대화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이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일이 확 커졌다. KT 노조는 평소에 단체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 사태로 인해 무려 10년 만에 회사를 대상으로 집회를 열었을 정도였다. 이러한 단체행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노사는 큰 틀에서 이 같은 내용의 인력 조정에 합의했다. 제2노조인 새노조 등을 중심으로 거센 반대 목소리가 나왔고 전면적인 공론화도 됐지만, 결국 위에 열거된 희망퇴직과 자회사 배치 등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사측에서 내세운 인력 감축의 이유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었다. KT는 당시 한창 통신사에서 'AI' 회사로 체질 개선을 외치며 'AICT(AI와 ICT를 결합한 용어)' 컴퍼니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진 기존 통신망 중심 직무들에 대해 전면적인 칼질을 시도한 것이 이번 구조조정의 골자였다. 특히 KT는 국가기간통신망 사업자였고 경쟁사보다 커버리지 범위가 더욱 넓었기에 통신시설·전원시설 등을 관리하는 인원이 아주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에 대해 한꺼번에 인력 감축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매우 컸다.
회사 입장에서는 '합리화'였고 '인력 조정'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말 그대로 떠밀려서 나가는 것이었기에 결코 그러한 정제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구조조정', '칼질' 등의 단어가 관련 기사에 난무했던 상황에서 KT 홍보실은 어떻게든 '합리화'나 '인력 조정' 등으로 기사의 단어를 대체하고자 애를 썼다. 나에게도 연락이 왔고 결국 데스크의 지시로 제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더욱 선명한 단어를 놔두고 모호한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렇게 4000명 정도가 KT를 떠났다. 그러나 대상자 중 2000여 명 정도는 본사에 남는 편을 택했다. 하지만 그들의 앞으로의 생활에는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었다. 시작부터 조짐은 좋지 않았다. 직무 전환 대상자들에게 관련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한 임원은 "자회사 전출을 안 하면 고문관·꼴통"이라고 폭언했고, 다른 임원은 "자회사로 가지 않으면 모멸감도 있고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압박했다. 당시 KT 임원들은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인원들을 내보내기 위해 전국 지사들을 돌아다니며 설득을 위한 설명회를 하던 상황이었다.
거듭된 설득에도 본사에 남는 편을 택한 이들은 일제히 '토탈영업TF'라는 새로운 영업 조직으로 발령받았다. KT는 해당 TF에 대해 "공백 상권의 영업력 강화를 위한 토털 셀러 역할을 수행한다"라고 설명했다. 정리하면 각종 KT의 기업용 솔루션과 제품·상품들을 개인 또는 법인 고객에게 방문 판매하고, 고객 민원 등을 관리하는 역할이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 퍼진 KT의 지국에 배치돼 각 지역별로 담당을 맡아 관련 업무를 했다.
물건을 팔라고 하니 말은 참 쉽지만, 이렇게 발령받은 이들은 그간 하던 업무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업무에 단기간의 교육만 받고 곧바로 뛰어들어야 했다. 당연히 정해진 연간 영업목표를 달성해야만 한다. 더욱이 기존 KT의 영업 조직이 각 제품과 상품의 성격별로 조직이 전문화됐던 것과 달리 토탈영업TF는 그야말로 이것저것 잡다한 것을 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 체계 자체가 부재했다고 한다. 회사에서도 사실상 급조한 조직이었으니 제대로 굴러갈 가능성은 애초에 많지 않았다.
김 부장에서 평생 영업만 해 왔던 허태환이 케이블 관리를 위해 맨홀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 절망했듯, 이들은 평생 케이블 관리 등 현장 업무를 해 왔다가 갑자기 영업 실적을 쌓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렇게 토탈영업TF에 배치된 직원만 2000명이 넘는다. 사실상 떠나라는 압박이라는 것을 이들도 잘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회사에서 버티는 편을 택했다. 하지만 TF가 생긴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이 현재까지 무려 6명에 달한다. KT새노조의 조사에서는 해당 TF의 직원 4명 중 3명이 불안감과 우울감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통신 3사의 그간 대규모 구조조정 사례들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 열거한 사례 외에도 통신 3사 모두 희망퇴직을 최근 들어 꾸준히 받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 3사 모두 내세우는 이유는 다들 비슷하다. 'AI 전환'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업 가치 제고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겠지만, 그 대가로 수많은 직원들이 예상치 못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KT, 2003년 이용경 사장 주도 5000여 명 구조조정.
*KT, 2009년 이석채 회장 주도 6000여 명 구조조정.
*KT, 2014년 황창규 회장 주도 인력 감축 단행. 총 8500여 명 구조조정.
*LG유플러스, 2022년 창사 첫 희망퇴직. 희망퇴직 신청자 650명 정도.
*SK텔레콤, 2025년 AI CIC 소속 직원 1500명 대상 희망퇴직 공고, 임원 30% 감축.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김 부장'은 그래도 나름 현실을 잘 반영한 드라마로 꼽히지만, 앞선 사례를 봐도 실제 통신사의 구조조정은 이보다 훨씬 냉혹하게, 가차 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한꺼번에, 드라마의 김낙수와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들만 수천 명이 늘어나게 된다. 회사에 어렵사리 남더라도, 끊임없는 자괴감과 압박감, 고뇌에 시달리다가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한다. 사실상 회사가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가혹한 상황에 수많은 사람들이 처했다. 그리고 이들은 그러한 상황을 오롯이 감내해야만 했다. 이러한 구조조정이 통신 3사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그렇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하다. 취재를 하면서도 그러한 현실의 차가움을 느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