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을 찾아서] 돈카츠 준
요즘 서울에 사장님 혼자 하는 작은 식당들이 많아진 것 같다. 식당이 크지는 않아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지는 않지만, 입소문을 타고 나름대로 유명해져서 지도 앱 등을 보면 꽤 많은 리뷰가 쌓여 있다. 이런 식당들은 아무래도 사장님 혼자 하다 보니 손님이 몰리면 음식이 나오는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짧지 않은 기다림이 맛이라는 보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돈카츠 준'이 바로 그런 식당이다.
가게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돈가스를 튀기는 와중에 "어서 오세요"라고 외친다. 홀서빙을 맡은 종업원은 따로 없고, 주방에서는 오늘도 사장님 혼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도 혼자 왔으니 바 형태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을 한다. 아무래도 사장님 혼자라서 주문은 주로 키오스크로 받고, 음식이 나오면 배식대에서 직접 들고 가야 한다. 물과 밑반찬, 각종 소스 등도 당연히 셀프다.
이곳에 세 번 정도 왔는데 로스카츠 정식과 특 로스카츠 정식, 그리고 모듬카츠 정식을 각각 먹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로스카츠와 특 로스카츠, 히레카츠, 모듬카츠, 치즈카츠 등 메뉴가 단순했는데 사람이 많이 와서인지 최근에는 소바나 우동을 중심으로 한 정식과 '준 정식'이라는 반반 메뉴도 새로 선보였다. 그래도 역시 돈가스 전문점에서는 돈가스를 먹어야 하니 올 때마다 늘 돈가스 정식을 주문하곤 했다.
주문을 받으면 음식이 금방 나오지는 않는다. 3차례 갔는데 보통 주문 후 음식이 나오기까지 15~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때마침 손님이 없으면 그래도 생각보다는 금방 나오지만, 먼저 온 손님이 몇 분 계시면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나는 늘 퇴근 후 왔기에 여유롭게 기다릴 시간이 있었다. 돈가스와 같이 먹을 각종 소금과 소스, 밑반찬 등을 준비하면서 좀 기다리다 보면 내 주문번호가 불린다.
첫 방문 때 먹었던 특 로스카츠.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살코기 위에 마치 소고기처럼 살짝 덜 익힌 듯한 선홍빛 살이 붙어 있고, 그 위에 비계(지방)가 두툼하게 얹어져 있다. 정확히는 덜 익혔다기보다는 완전히 '웰던'으로 익히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다. 부드럽게 씹히며 넘어가는 살코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계가 살코기와 어우러져 고소함을 더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먹을 때는 꼭 소금을 찍어서 살코기 부분과 비계 부분을 같이 먹어 보는 걸 추천한다. 만족감이 상당하다. 일반 로스카츠는 특 로스카츠보다는 살코기 비중이 높고 선홍빛이 덜한 편이다. 내 입맛에는 역시 특 로스카츠가 이름값을 한다고 느꼈다.
마지막 방문 때 먹었던 모듬카츠. 로스카츠와 히레카츠를 같이 맛볼 수 있다. 로스카츠가 상대적으로 기름진 고기맛을 느낄 수 있다면 히레카츠는 지방 비중이 적어 상대적으로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고기로 이뤄져 있다. 실력이 그닥인 집에 가면 가끔 히레카츠에서 퍽퍽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곳 히레카츠는 퍽퍽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바삭한 튀김옷과 부드러운 안심살이 밥과도 잘 어울린다. 같이 나오는 로스카츠는 특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적당하게 붙은 비계와 야들야들한 등심살의 조합이 최적이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금인 '한라봉 소금'은 돈가스의 맛을 더욱 배가한다. 기존 소금에 한라봉을 가미해, 소금 특유의 쓰고 떫은 맛을 줄이고 상큼함을 함유했다. 돈가스에 이 소금을 찍어 먹으면 짭짤함과 함께 고기 맛이 부각되면서도, 끝맛으로 느껴지는 상큼함이 자칫 느껴질 수 있는 느끼함을 살짝 잡아준다. 한마디로 고기와 찰떡궁합이다. 이와 함께 기본으로 제공되는 분홍빛 소금은 마트에서 요즘 많이 볼 수 있는 '히말라야 핑크 솔트'다. 말 그대로 정석적인 소금 맛으로 한라봉 소금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여기에 매달 달라지는 '이달의 소금'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이거는 직접 먹어보진 않아서 여기서 뭐라고 말할 수는 없을듯하다.
보통 돈가스는 돈가스 소스에 찍어먹는 경우가 많지만, 좋은 고기의 맛을 가장 온전하게 맛보기 위한 가장 좋은 조미료를 꼽자면 단연 소금일 테다. 소고기구이를 먹을 때 으레 소금을 찍어먹는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그만큼 돈가스 자체의 맛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소금을 부각하는구나 싶었다. 아니면 함께 제공되는 와사비를 찍어 먹는 것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고기의 기름진 맛을 와사비의 강렬한 톡 쏘는 맛이 제대로 잡아준다.
한라봉 소금은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깨알같은 읽을거리도 제공한다. 정성스레 적힌 한라봉 소금에 대한 설명을 보면, 과장된 표현이 없음에도 이 소금에 대한 큰 자부심이 느껴진다. 실제 짭짤함과 함께 어렴풋이, 그러면서도 너무 튀지 않게 느껴지는 상큼함을 맛보면 이러한 정성 어린 설명에 더더욱 공감하게 된다. 그렇게 사장님이 꼼꼼하게 쓴 지시 사항을 숙지하고, 음식이 나올 때 사장님의 가이드대로 음식 먹을 준비를 하면 더욱 맛있게 돈가스를 맛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각종 소금과 함께,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도 짧지 않다 보니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까다롭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손님들에게 맛있는 돈가스를 더욱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손님들에게 더 세심하게 신경쓴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테다. 사실 돈가스 자체가 맛있으니 그냥 먹어도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맛이지만, 이런 곳에 오면 그래도 한 번은 사장님이 일러주는 방법을 따라 먹어 보자. 확실히 왜 그렇게 먹으라고 했는지 납득이 가는 맛이다.
일본식 돈가스 집이 요 몇 년 사이 부쩍 늘었지만 사실 "엄청나게 맛있다"라고 할 만한 곳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맛있는 돈가스 집을 찾는 이들에게 '돈카츠 준'은 한번쯤은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점심에 와서 푸짐하게 즐겨도 좋고, 저녁에 가볍게 한 잔 하면서 즐겨도 좋겠다. 비록 상황에 따라 음식이 나오는 데 시간이 좀 걸릴 수는 있지만, 맛을 보게 되면 기다린 시간이 낭비됐다고 느끼지는 않을 만하다. 돈가스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요즘치고는 가격도 나쁘지 않다. 로스카츠 정식과 히레카츠 정식은 1만3900원, 특 로스카츠 정식은 1만6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