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정부를 흠집내려고 일부러 가짜뉴스를 생산했을까

대한상의의 '상속세 보도자료' 오류에 대한 정치권 일침, 본질 어긋났다

by 챠크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토요일에 '고의적 가짜뉴스'를 무분별하게 게재했다며 경제 5단체 중 한 곳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를 SNS에서 직접 저격했다. 대한상의가 며칠 전 언론에 배포한 '상속세수 전망분석 및 납부 방식 다양화 연구' 보도자료가 잘못된 보고서에 기반을 뒀다며, 이를 "사익도모와 정부정책 공격을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해 유포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대한상의와 보수언론의 가짜뉴스 유포는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라고 날을 세웠다. 대통령과 여당이 콕 집어 지적하자 결국 대한상의는 부랴부랴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사과문을 냈다. 대한상의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까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사과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X에 '가짜뉴스'를 겨냥하며 올린 글.


이 대통령과 여당이 분노한 부분은 대한상의가 '상속세 감면'이라는 재계의 단골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검증이 부족한 데이터를 무리하게 활용했고, 이를 "상속세 때문에 부자 2400명이 한국을 떠났다"이라는 자극적인 메시지로 보도자료를 통해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것이 수많은 언론사들의 기사를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는 점은 이 대통령의 분노를 더욱 키웠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대한상의와 함께 '보수언론'을 비난한 이유다. 여기에는 마치 보수언론들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고의적으로 경제계를 옹호하고 대통령을 깎아내렸을 것이라는 가정이 포함돼 있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리하게 보고서를 내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대한상의도 잘못했고, 이를 검증 없이 그냥 기사로 작성한 수많은 언론사들도 잘못했다. 그러나 언론사들이 정말 이재명과 민주당 정권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검증 없이 이러한 기사를 작성한 것 아니냐는 논리에 대해서는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언론이 정권에 흠집을 내고 이를 위해 여론을 호도하려는 '시커먼' 의도를 가지고 그런 행위를 했다기보다는, 그냥 언론사 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에 가깝다.




약 8년 반 정도 기자로 근무하면서 실감한 점은 언론사들이 기업이나 기관 등에서 내는 보도자료를 기사화할 때 실제 꼼꼼히 살펴 검증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솔직히 나 역시 기자 시절 수많은 보도자료를 작성해 왔지만 이것이 진짜 맞는지 검증해야겠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이번 사태도 이러한 부분의 연장선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다. 기자들은 출근하면 그날 쓸 기사 계획과 하루 일정 등을 정리한 '일보'를 제출한다. 관련해 부장의 이런저런 주문을 듣고(보통은 잔소리 혹은 불호령이다), 쏟아지는 주요 취재처의 보도자료를 기사화하다 보면 1~2시간은 그냥 지나간다. 이후 이날 발제한 기사를 쓰면서 점심시간 혹은 오전·오후 적당한 시간에 짬을 내 취재원과 식사나 티타임 등을 한다. 물론 중간중간 터지는 이슈들도 체크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기사 마감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부랴부랴 기사를 마감하면 또 내일 뭐 쓸지를 고민해야 하고, 내 기사가 신문지 면에 이상 없이 실렸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종종 있는 저녁 술자리도 고려해야 한다. 거의 매일 이러다 보니 보도자료 하나하나에 대해 하루 만에 따져보고 검증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시간이 좀 지나고 검증 기사를 쓰는 경우는 있지만.


2) 업무적인 관성도 작용한다. 대한상의는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경제5단체'로 묶이는데 이들이 내는 자료나 보고서 등은 이들을 주로 취재하게 되는 산업부에서는 중요하고 신뢰성 높은 자료로 간주된다. 논조가 재계 친화적인 보수언론이나 경제지(한국경제·매일경제·머니투데이 등)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웬만하면 기사화하라고 하고, 지면 기준으로도 중요한 기사로 취급돼 앞부분에 실리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자료는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이 한국을 떠난다"라는 자극적인 메시지였기 때문에 더욱 이들 매체의 구미에 맞았다.


서울 숭례문 인근에 위치한 대한상의 건물. 이곳에는 출입기자들이 상시로 머무르는 기자실이 있다.


자극적인 메시지일수록 의심을 해 봐야 하는 것은 맞다. 아무리 신뢰성 높은 출처라고 여겨지더라도 결론이 다소 파격적이라면 이런 결론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면밀히 살필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래도 설마 대한상의인데 잘못된 출처를 인용했겠어'라는 생각에 그냥 빠듯한 시간 속에서 후딱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대한상의의 경우 보통 출입기자단에게는 보도자료 배포 예정일 전날 오후에 미리 자료를 전달하고 다음날 아침(보통 오전 6시다)에 맞춰 나가도록 엠바고를 설정한다. 마감시간 이후 보도자료가 배포되기에 이를 검토할 시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앞에서 말했듯 기사 마감 이후에도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개별 보도자료에 대한 검증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는 한다.


3) 데스크들이 검증을 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이들 역시 빠듯한 시간과 업무적 관성 문제가 작용한다. 데스크들끼리 그날 신문에 어떤 기사를 실을지에 대한 회의를 매일 하루에 2번 이상 하지만, 핵심 사안은 1면을 무엇으로 할지, '종합면'이라 불리는 2~6면을 어떤 기사로 채울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이 낸 발제들의 중요도 순서를 체크하지만 발제의 바탕이 된 보도자료가 정말 맞는지에 대한 체크까지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 부분을 하나하나 살필 시간도 없고, 이미 각 부서에서 일보를 취합할 때 얘기가 끝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상술했듯 경제5단체의 자료는 웬만하면 내용도 괜찮고 틀리지도 않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정말 그날 다른 이슈가 너무 많지 않다면 웬만하면 지면에 포함되는 편이다.


4) 논조 부분에서의 관행도 작용한다. 상술했듯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재계 친화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꼭 정권이 더불어민주당이냐 국민의힘이냐를 따나서 그냥 꾸준히 상속세와 같은 각종 세제 감면(쉽게 말해 부자 감세), 최근 화두가 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와 우려 등 재계의 구미에 맞는 기사를 꾸준히, 많이 낸다. 즉 이재명 정부에 흠집을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가짜 뉴스' 확산에 동조했다기보다는 그냥 재계를 대표하는 취재처에서 중요한 보도자료를 냈으니 우리도 이에 맞춰서 써야겠다에 가깝다. 일부 경제지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사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 역시 경제지가 관성적으로 하는 친기업적 정책에 대한 당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심지어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현재 상속세가 불합리한 면이 있어 개편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도 이 정도는 안다.




결과적으로 대한상의의 무리한 어젠다 확대 시도와 함께, 한국 언론사와 기자들의 관행이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가짜뉴스는 민주주의 적"이라는 강력한 말로까지 연결된 셈이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그 와중에 중간중간 커버해야 할 이슈도 너무 많으니 디테일한 사안에 대해 하나하나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설마 이게 틀렸겠어'라는 안일함이 작용했고 결국 사달이 났다. 이러한 빡빡한 시스템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이 여러 문제점들을 양산해 왔고 그 문제를 고치기 위해서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꾸준히 나왔다. 이렇듯 문제의식은 크지만, 그것이 실제 업무에 적용되기까지는 너무 걸림돌이 많다는 것이 참담한 현실이다. 물론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하고, 전면적인 체질 개선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문제를 알면서도 방치해 두면 언론사의 신뢰도는 점차 낮아질 것이고 결국 이는 언론계 전체의 손해다.


다만 이번 일을 계속 정치적인 사안으로 프레임을 씌우려는 양대 정당의 발언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언론이 (의도를 가지고) 가짜뉴스를 유포했다는 극단적인 워딩을 대변인 공식 멘트로 활용했고, 이에 국민의힘도 "기업들의 목소리를 묵살시키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기업을 무시하는 정부"라는 강한 표현을 써 가며 맞불을 놨다. 어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고, 한국경제신문의 2대 주주가 SK텔레콤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SK를 중심으로 "기업 입틀막"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국민의힘에서 제기했다는 '받은글'이 돌기도 했다...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이는 대한상의의 무리한 어젠다 확대 시도와 언론계의 전반적인 관행이 만들어낸 촌극에 가깝다고 본다. 기자들과 자주 교류하고, 기자 출신들이 많은 정치권에서도 이를 아예 모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보수언론의 가짜뉴스 유포' 프레임을, 국민의힘은 '기업 손목을 비트는 이재명 정부' 프레임을 자기 마음대로 씌우며 어떻게는 사태를 더욱 키우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그 과정에서 결국 기자들만 또 "기레기가 기레기짓했네"라며 욕먹는다. 기자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고 반성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정부를 흠집내려는 대단한 의도를 가지고 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나는 정치권이 이렇게 아전인수격으로 모든 사안을 해석하는 게 참 싫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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