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도 해외서도 찬밥 신세…AI 수혜는 못 입고 쇼크는 쇼크대로
지난해부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주식시장 상승을 줄곧 이끈 것은 AI였다. AI가 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속, 이를 위한 막대한 인프라 구축으로 반도체·데이터센터·전기 등에 대한 투자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반도체·소프트웨어·원자력·로봇주 등을 중심으로 주가가 빠르게 올랐다. 나스닥의 경우 최근 조정을 받고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주가가 꽤 높다. 그런 가운데 AI의 발전과 큰 관련이 없는 업종들은 주가 상승에서 소외됐다.
이 중 가장 소외된 종목을 꼽자면 바로 게임주가 아닐까 싶다. 게임업계에서도 최근 AI를 게임 개발에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고 일부 게임사들은 자체 AI 개발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본업 자체가 AI와는 큰 연관성이 없고 당장 AI로 큰 돈을 벌 만한 아이템도 없다 보니 AI로 인해 드라마틱하게 실적 혹은 실적 기대치(가이던스)가 상승하지는 않았다.
'AI 랠리'를 비껴가면서도, 반대로 최근 거세지고 있는 'AI 파괴론' 등 AI로 인한 부정적인 요소에는 직격탄을 맞았다. AI가 기존의 게임 개발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최근 국내외 게임사들의 주가를 큰 폭으로 떨궜다. 여기에 빅테크와 각국 정부들의 AI 투자 경쟁으로 메모리 반도체와 GPU 등의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스위치 등 게임 콘솔 기기를 제조하는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이 역시 게임사들의 주가 하락에 큰 요인이 됐다.
실제 엔씨소프트·크래프톤·카카오게임즈 등 대다수의 국내 게임주들은 시장의 전반적인 상승 흐름과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한국거래소 테마지수 42종 가운데 유일하게 수익률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 'KRX 게임TOP10 지수'라고 한다. 이러한 게임주의 약세는 꼭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해외 유수의 게임 개발사들과 퍼블리셔(유통사)들도 지난 1년간 주가를 방어하는 데 애를 먹었다.
지난해 10월 21일 상장한 글로벌 게임 ETF인 'RISE글로벌게임테크TOP3 Plus'의 지난 3개월 수익률은 마이너스 24.6%다. 코스피 대비 상대수익률은 자그마치 마이너스 46.2%에 달한다. 가장 비중이 큰 두 종목인 소니와 닌텐도의 주가가 하필이면 해당 ETF 상장 이후 급격한 하락 추세에 빠진 탓이다. 이 기간 국내 대표 게임 ETF인 'TIGER 게임TOP10'의 수익률이 마이너스 2.6%였으니, 오히려 최근에는 한국 게임사보다도 흐름이 더 안 좋았던 셈이다.
개별 종목들의 추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같은 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먼저 미국과 일본 업체들을 보자. 일본 게임업체 중 시가총액 1·2위인 소니와 닌텐도는 나란히 전년 동기 대비 주가가 하락했다. 이는 미국 게임사 시가총액 1·2위인 로블록스와 테이크투인터랙티브도 마찬가지다. 일본 대형 게임사들인 캡콤과 세가 역시 두 자릿수 하락세를 면치 못한 가운데, 상승세를 보인 스퀘어에닉스와 넥슨이 유독 눈에 띈다. 특히 넥슨은 지난해 하반기 다른 게임사들이 나란히 조정을 받은 가운데 홀로 잘 버텼다.
공통적으로 6개월 전인 2025년 8월에는 상승 추세를 보이다가, 이후 급격한 하락세로 돌아서며 결국 전년 대비 주가가 떨어지고 말았다. 특히 로블록스는 6개월 전 대비 거의 반토막나다시피했고, 유니티는 절반 넘게 떨어졌다.
참고
소니는 스마트폰, TV, 이미지센서, 마이크로 LED 등 다른 사업들도 많이 하기에 '게임주'라고만 보기는 어려우나, 콘솔 게임기의 대표주자인 플레이스테이션을 생산하고 산하에 여러 게임 개발사들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게임주로 분류했다. 넥슨은 지배구조 최상단에 한국 기업(NXC)가 있기에 한국 기업이 맞지만, 중간 지주회사인 넥슨 재팬이 일본 시장에 상장해 일본 업체로 분류할 수도 있다. 유니티는 직접 게임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 그래픽의 핵심인 게임 엔진이 주력인 업체이기 때문에 게임주로 분류했다. 일렉트로닉 아츠(EA)는 분류에서 제외했는데, 2027년 사우디아라비 국부펀드(PIF)에 인수되는 특수한 상황이 주가 상승에 크게 반영됐다고 봤기 때문이다. 더욱이 EA는 2027년 중 상장폐지 예정이다.
이번에는 홍콩과 유럽 거래소에 상장된 게임사들을 보자. 전반적으로 유럽 대형 게임사들은 폴란드의 CD프로젝트를 제외하면 큰 폭의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유비소프트는 1년 전에 비해 무려 62%가 떨어지면서 최근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의 줄어드는 입지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된 모습이다. 미국과 일본 업체들과는 달리 유럽 게임사들은 1년 동안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국 업체인 텐센트와 넷이즈는 그래도 잘 버틴 편이었다. 6개월 전 대비로는 적잖게 하락했지만 그래도 1년 전보다는 증가한 수치다. 중국 정부가 게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두 곳은 게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 감안해야 한다.
이처럼 일부 잘 버틴 곳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글로벌 게임사들이 시장에서 박한 평가를 받는 경향은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말 구글이 공개한 '프로젝트 지니 3'는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의 화두 중 하나인 'AI 파괴론'을 게임업계로 확산시켰다. 풍경과 캐릭터에 관한 각각의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실사 그래픽으로 구현된 풍경 속에서 사용자의 조종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캐릭터가 뚝딱 구현됐다.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AI로 기존의 지난한 개발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는, 게임사가 가지고 있었던 개발 노하우마저 AI를 통해 훨씬 효율적으로 대체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더 컸다.
아직 AI 모델의 한계로 '프로젝트 지니 3'에서 구동할 수 있는 게임의 한계는 60초에 불과하다. 조종 과정에서 캐릭터 반응이 다소 늦고,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과 다채로운 캐릭터들과의 상호작용까지 구현하지는 못해 한계가 뚜렷하다. 또 게임은 그래픽 외에 스토리, 음악, 게임 내 고유한 규칙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이뤄진 종합예술 작품이다. 따라서 게임업계에서는 단지 게임 그래픽을 간편하게 AI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AI 파괴론'의 근거는 되지 못하며, 오히려 현재의 개발 과정을 AI를 통해 더욱 효율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가능성'으로 움직인다. 어쩌면 아직 멀었거나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비극을 미리 예측했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 지니 3가 발표된 날 게임사들의 주가는 나란히 하락했고 특히 게임 엔진을 전문으로 만드는 유니티의 경우 낙폭이 더욱 컸다.
'AI 파괴론'이 먼 미래라면, AI발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한 게임기 제조 비용 상승은 현실이 됐다. D램과 SSD, GPU 등 부품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가격이 치솟고 있다. 닌텐도는 이달 초 실적발표에서 '닌텐도 스위치 2'의 생산과 관련해 D램의 가파른 가격 상승을 언급했다. 일단 소비자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대량생산 등으로 공정 효율화를 해 비용을 절감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기기 제조 비용이 매우 높은 수준이며 스위치 2를 판매하면 판매할수록 닌텐도가 손해를 보는 상황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등장했다.
'플레이스테이션 5'를 제조하는 소니 역시 D램 가격 인상에 타격을 받고 있는데, 연초부터 이를 타개하기 위해 PS5의 가격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PS5는 이미 프로 버전 기준 10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역대 시리즈 중 가격이 가장 비싼 상황이다. 이렇듯 부품 가격 상승으로 가격 인상이 현실화된다면 자연히 기기 판매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지난해 말부터 소니와 닌텐도의 주가는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AI가 게임사들의 주가에 악재로 작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게임사들이 가뜩이나 나란히 본업인 게임 사업에서 물음표가 달린 상황에서 AI가 게임사들의 미래 산업 경쟁력에 더욱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실제 지난해 게임사들이 저마다 내세웠던 주력 게임들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거나, 혹은 출시가 연기된 사례들이 상당히 많았다. 테이크투 인터랙티브 산하의 락스타게임즈는 최대 기대작인 'GTA 6'의 출시 일정을 올해 5월에서 11월로 미루겠다고 지난해 발표했다. 기존 출시 일정은 2025년 가을로 지금쯤 이미 출시됐어야 하는데 1년을 미룬 셈이다. 이 때문에 매 분기마다 전년 대비 개선된 실적과 상향된 가이던스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시장은 매출 확대 시점이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는 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캡콤은 '몬스터 헌터: 와일즈'의 출시 후 아쉬운 흐름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출시 초반인 2025년 1분기에는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최신작이라는 기대감 속 출시 한달여 만에 10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으나, 2분기 들어 판매량이 급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김이 빠르게 샜다. 게임 내 콘텐츠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빈약하다는 혹평이 이어졌고, 각종 버그 등으로 인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의 불편함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초반 '역대급' 판매량에도 결국 지속성을 이어 나가는 데 실패했다.
11비트 스튜디오의 '프로스트 펑크 2'와 패러독스 인터랙티브가 배급(퍼블리싱)을 맡은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 2'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 그치며 주가에 악영향을 줬다.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블러드라인 2'의 경우 3억5500만크로나(지난해 11월 환율 기준 약 450억원)에 달하는 개발 비용을 손상 처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게임사에 준 타격이 꽤나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세가 역시 2023년 '앵그리 버드' 시리즈로 유명한 핀란드 게임사 '로비오'를 야심차게 인수했지만, 이번 분기에만 눈물을 머금고 약 313억엔(2925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대작 게임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도 게임사에 대한 우려가 커진 요인이 됐다. 관련 개발 프로젝트에는 못해도 수백명에 달하는 인력이 투입된다. 인건비는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도 점차 많아지는 추세라 매년 게임 개발 비용은 증가 추세다. 또 수준 높은 개발자 확보를 위한 IT업계의 경쟁이 요 몇년간 더욱 치열해지면서 게임사들의 인건비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 개발 기간이 길어진다면, 시장에서는 수익이 몇 년째 나지 않는 사업에 막대한 인건비를 몇 년간 쏟아부었다고 간주하게 된다. 결국 잠재적 비용 증가와 영업이익 감소로 인식하고 주가가 조정을 받는다. 앞서 언급했던 'GTA 6' 발매 연기로 인한 테이크투 인터랙티브의 주가 하락 역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우려다. 만일 이렇게 장기간 공들여 개발한 게임이 흥행에 실패하면, 게임사가 받는 재무적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유비소프트의 주가가 하루 동안 10% 넘게 폭등한 일이 있었다. 2026년 3분기 회계연도 실적 발표에서 2027년 11월 만기가 도래하는 약 5억유로의 채권 상환을 위한 충분한 현금이 있다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유비소프트의 높은 영업비용으로 인한 지속 가능성과 관련해 시장 우려가 컸고, 이것이 주가를 하락시킨 주 요인이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도 볼 수 있다.
유비소프트는 2024년 '스타워즈 아웃로', '엑스디파이언트' 등 장기간 개발에 몰두했던 기대작들의 잇따른 부진으로 큰 악재를 맞았다. 지난해 어렵게 출시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스'도 수차례 발매를 연기한 뒤였다. 매출 감소 속 전 세계 곳곳에 퍼진 산하 스튜디오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문제가 제기됐고 결국 유비소프트는 스튜디오 일부를 폐쇄하고 직원을 감축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 나가고 있다. 과거 흥행작을 잇따라 쏟아내던 시절에는 이러한 구조가 어느 정도 용인됐지만, 게임 경쟁력이 하락하자 시장은 더욱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게 됐다.
결론적으로 게임주는 지난 몇 년간 시장에 충분한 매력을 줄 수가 없었다. 시장 전반을 AI라는 거대한 테마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게임주는 AI와의 긴밀한 연관성을 만들지 못했다. 더욱이 게임주가 가치주가 아닌 성장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보니 역시 성장주 성격이 강한 AI 관련 종목들과의 차별성을 갖는 것도 어려웠다. 같은 성장주면 비전이 보다 확실한 빅테크, 반도체, 클라우드 관련주에 돈이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임주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게임을 잘 만드는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시장에서 기대를 잔뜩 모았던 타이틀들의 출시가 연기되거나, 출시되더라도 게임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결국 흥행에도 악영향을 미친 사례가 너무 많았다. 이러한 흐름이 올해는 달라져야 한다. 콘텐츠만 잘 만들어진다면, AI로 인한 각종 변수들도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본다. 올해는 가뜩이나 본업 경쟁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AI 악재까지 겹치니 투자자들이 등을 돌렸다고 봐야 한다.
올해 출시되는 대작 게임으로는 락스타게임즈의 'GTA 6', 캡콤의 '바이오하자드 레퀴엠'과 '프래그마타' 등이 꼽힌다. 한국 게임 중에서는 3월 출시 예정인 펄어비스 '붉은사막'이 가장 기대를 모은다. 이들 게임이 시장의 기대만큼 흥행을 해 준다면, 결국 시장에서도 주가 상승으로 응답해 줄 것이다. 게임을 취미로 즐기는 한 명의 게이머로써, 그래도 게임사들이 좋은 게임을 많이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