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ICE보다도 긍정적인 이미지 적어…AI에 대한 위협·공포 커져
얼마 전 미국 유력 언론사인 NBC에서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AI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46%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AI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26%, '중립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27%였으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큰 셈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데, '매우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1%에 불과한 반면 '매우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22%에 달했다.
설문조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공화당, 민주당, ICE(미국이민세관집행국), 이란, 레오 14세(미국 출신 교황)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다양한 키워드의 이미지에 대한 긍정·부정 비율도 집계됐다. 가장 긍정 비율이 높은 것은 레오 14세(42%)였고, 낮은 것은 이란(8%)이었는데 AI는 이란 다음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비율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 대비 부정 비율이 높은 차이 순으로 보면 이란(53%)이 가장 높았고 그 뒤를 민주당(22%)이 이었는데 AI가 20%로 3위였다. 참고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 ICE는 18%였는데 부정 비율도 매 높았지만 긍정 비율도 꽤 높았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차이가 적었다.
추가로 'AI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AI가 초래하는 위협이 AI가 가져오는 이득보다 더 클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57%에 달했다. 반대로 'AI가 가져오는 이득이 AI가 초래하는 위협보다 더 클 것"이라고 답한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나머지 7%는 '잘 모르겠다', 2%는 '둘 다 조금씩'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미국인들이 AI를 상당히 좋지 않게 보고 있고, AI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기업들이 전 세계의 AI 혁명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사 결과는 상당히 흥미롭다.
설문조사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최근 2~3개월 내 챗GPT, 제미나이 등 AI 플랫폼을 사용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025년 12월 48%에서 올해 3월 기준 56%로 늘어났다. 응답자의 과반 이상이 AI를 써 봤으며 AI 사용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AI 관련 이슈를 어느 정당이 더 잘 처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공화당과 민주당 둘 다 아닐 것"이라는 응답이 33%로 가장 높았다. 전체적으로 AI를 일상 속에서 쓰고 있으면서도 AI가 가져올 수 있는 위협에 대해 매우 경계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러한 위협에 잘 대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해당 설문조사에서는 왜 AI에 대해 그토록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됐느냐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다만 미국이 AI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는 국가인 만큼, 미국인들은 AI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빠르고 급격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최근 AI로 인해 빅테크들을 중심으로 신규 채용이 줄고, 기존 인력을 레이오프(해고)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또 이민자들에 대한 과잉 진압으로 논란이 된 ICE가 오픈AI의 기술을 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AI가 자칫 공권력 등에 의해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AI 챗봇에 대한 과도한 의존 현상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 등 각종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AI로 인해 근래 들어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AI가 가져올 수 있는 위협과 부작용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AI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실제 행동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AI 개발 반대를 활동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본격화됐고, AI 서비스 활용을 중단하자는 캠페인도 거세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여름,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간 김에 오픈AI 본사가 있다는 건물을 보고 왔다(관련 브런치 글). 그런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전봇대에 'STOP AI'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 벽보가 붙어 있었다. 빨간색 바탕에 흰 글자로 'STOP AI'라고 크게 써 놨으니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동명의 시민단체가 붙인 벽보였다. 벽보 하단에는 돌아오는 금요일에 오픈AI 본사 앞에서 AI 반대 집회를 할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자신들의 홈페이지와 연결된 QR코드가 있었다. 오픈AI 인근에 이러한 전단지를 여기저기 붙인 것이 자못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조금 시일이 지난 뒤 STOP AI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베이 에어리어에 있는 오픈AI 본사 빌딩 앞에서 실제로 시위를 진행한 사진이 게재돼 있었다. 이들은 시위를 통해 AI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며, 작가와 예술가 등 창작자들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AI 기업들이 무단으로 탈취해 도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 정부에서 군사 작전과 전쟁 등에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AI의 오남용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들이 배포한 보도자료도 접했는데, 현재 진행 중인 AGI(일반인공지능) 개발을 영구적으로 중단·금지해야 하며 나아가 오픈AI도 폐쇄(shut down)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TOP AI는 이후에도 샌프란시스코·버클리 등에서 꾸준히 AI 반대 운동을 전개해 왔는데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점차 시위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에게 직접 재판 소환장을 전달했다. 지난해 2월 이곳 활동가들이 오픈AI의 사무실 입구를 봉쇄한 것과 관련해 재판이 진행 중인데, 여기에 샘 올트먼 CEO가 직접 증인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1월에는 버클리의 대로변에 있는 대형 육교에서 'STOP AI'라는 걸개를 다는 활동을 했다. 이와 별개로 전직 STOP AI 활동가였던 인물이 오픈AI 직원들에게 "당신들을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기까지 했는데, 이로 인해 오픈AI가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을 임시 폐쇄하기도 했다. 관련 활동이 점차 과격화되는 면이 있지만 AI의 위험성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이와는 별개로 '큇(QUIT)GPT' 캠페인도 활발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챗GPT 구독을 끊자는 캠페인인데, 캠페인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기준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캠페인 취지를 정리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챗GPT를 본보기 삼아, ICE의 불법 행위와 관련해 이대로 처벌 없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오픈AI 경영진이 트럼프, 공화당 등에 대한 모든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보이콧 운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 논란이 된 ICE에서 챗GPT 기술을 활용하기로 한 사실, 오픈AI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원하는 슈퍼팩(특별정치활동위원회)에 거액을 후원했다는 사실이 캠페인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캠페인 주최 측은 여러 AI 플랫폼 중 챗GPT를 콕 집은 이유에 대해 ICE 요원들의 신규 채용 과정에 챗GPT가 활용되는 등 오픈AI가 ICE에 힘을 보태고 있고, 오픈AI가 미국 국방부와 기술 사용 협약을 맺어 전쟁 등에 활용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으며, 오픈AI의 사장이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의 슈퍼팩에 2500만 달러를 기부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챗GPT의 대안으로 제미나이, 클로드 등 경쟁 AI 플랫폼과 라마, 미스트랄 등 오픈소스 AI의 사용을 권했다. 이 와중에 일론 머스크로 대표되는 '그록(Grok)'의 사용은 "강력히 권장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러한 AI 반대 운동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정부 주도 하에 이뤄지고 있는 이란 침공, ICE의 과도한 공권력 집행 등에 대한 반대 성격도 뚜렷하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제법 나오고 있어 다소 정치적인 색채가 짙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AI 기업들의 기술이 정부 주도의 전쟁, 시위 진압 등에 언제든지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에 나타난 것은 분명하고, 그런 점에서 AI 기능이 외부 요인에 의해 언제든지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지금보다 더욱 고도화된 AI가 유발할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도 분명히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멜빈 크랜즈버그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현재까지 한국에서는 AI에 대한 이미지가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가장 최근 진행된 AI 인식조사는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5 인공지능 인식조사'인데, 'AI 기술이 나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52%에 달했다. 반면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비율은 4%에 불과했고 나머지 44%는 '중립적'이었다. 또 'AI 기술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70%에 이른 반면,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은 7%밖에 되지 않았다. 아울러 AI 기술 발전과 관련해 가장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호기심'이 82%였고, '기대감'도 79%나 됐다. '의심스러움'과 '두려움'도 60% 정도 됐지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우세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AI의 오남용과 부작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불거질 수 있을 테다. 최근 한국에서는 AI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사무실·학교·가정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AI 플랫폼을 사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해 한국의 AI 도입 속도가 전 세계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만큼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고, 이는 앞으로 한국 사회 전반에 AI가 미칠 영향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AI로 인한 채용 문제가 본격화되지 않았다. 정부가 전쟁이나 시위 진압 등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다만 앞으로 AI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지난 1월 말 전 세계 최초로 AI 규제 관련 법인 'AI 기본법'이 시행됐다. AI 중에서도 인간의 권리와 생명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고영향 AI'를 중심으로 규제 방향을 마련하고, AI를 전면적으로 활용한 콘텐츠에 대해서는 워터마크를 통해 'AI 생성물'이라는 사실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것 등이 골자다. 물론 AI 기본법을 통해 AI가 초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위협과 부작용을 촘촘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민감한 분야에서 AI의 오남용 가능성을 기업이 한번 더 살펴보고 관리하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AI'를 구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지만 AI라는 기술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다만 그 강력한 힘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활용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미국에서 AI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진 것은 AI가 누군가의 일자리와 안전, 삶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혁신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치열한 AI 성능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경쟁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신뢰할 수 있는 AI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있다. 지난해 초 중국 '딥시크'의 등장으로 국가별로 AI 성능 경쟁이 엄청나게 달아오르면서, AI 담론에서 'AI 신뢰성'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답이 쉽게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더더욱 치열하게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