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잉카, SF의 대표적 상징이지만…AI 등과는 달리 상용화까지 한세월
2024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통신 박람회 중 하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을 방문했었다. 여러 전시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가장 독특했던 것은 바로 플라잉카, 그러니까 '하늘을 나는 자동차'였다.
플라잉카는 한때 '사이언스픽션(SF·공상과학)'의 상징이었고, 미래 시대를 예측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해 왔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가상현실(VR) 등 SF 속 다른 기술들이 어느덧 우리 일상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반면, 플라잉카는 아직 다소 거리가 있는 미래 기술로 여겨진다.
그런 플라잉카를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2024년 기준으로) 1년여 후에 출시하겠다고 나서며 MWC 2024에 나섰다. '알레프 에어로노틱스'라는 이름의 이 스타트업은 전시장에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부스를 차리고 실제 크기의 절반 정도로 축소한 '알레프 모델 A'의 시제품을 선보였다. 모형을 전시한 것이라 직접 탑승할 수는 없었지만 자동차 형태의 차체가 큼지막한 날개나 프로펠러 없이도(실제로는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작은 프로펠러가 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을 자신 있게 내세운 것 자체가 인상깊었다.
마침 현장에 짐 두코브니 알레프 에어로노틱스 CEO가 있어 간단하게 얘기를 나눴다. 두코브니 CEO는 이미 해당 모델에 대한 사전 주문을 받고 있다며, 투자 유치와 규제 등이 변수지만 잘만 하면 2025년 말 실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자신들의 플라잉카는 순수 전기로 운행되며, 테슬라 등 다른 전기차 업체들의 전기차보다 에너지 효율이 훨씬 좋다고 강조했다. 도로 주행 최고 속도는 시속 56km로 빠르지는 않지만, 하늘에서는 시속 177km 정도로 빨라진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는 자동차 차체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상적인 제품이라고 자찬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된 형태의 플라잉카를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짐 두코브니 CEO는 MWC 콘퍼런스 연설에도 나서 '알레프 모델 A'의 콘셉트카를 소개했다. 시간이 안 돼 직접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콘셉트카를 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막연하게 SF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플라잉카를 실제로 제작하려는 스타트업의 포부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정말로 플라잉카를 양산하는 전 세계 최초의 기업이 된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2025년 내에 플라잉카를 출시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실현되지 못했다. 알레프 에어로노틱스는 지난해 12월 '모델 A 울트라라이트(MWC 2024에서 공개한 모델 A 대비 보급형 모델)'의 생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는데, 제작에 수개월이 걸리며 사전 주문을 신청한 고객 증 극소수 대상으로만 주문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마저도 정말로 2026년 중에 선보일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으며, 생산 대수가 제한되는 만큼 양산 단계는 아니고 이제야 알파테스트를 시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모델 A'는 플래그십 모델로 출시할 계획인데, 회사 측에서 책정한 예상 가격은 약 30만 달러(한화 약 4억5000만원)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라는 '롤스로이스 드롭테일'과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양산까지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먼 셈이다.
알레프 에어로노틱스 외에도 플라잉카 제작에 뛰어든 여러 업체들이 있다. 슬로바키아의 클라인 비전(Klein Vision), 네덜란드의 PAL-V, 미국의 ASKA와 샘슨 스카이(Samson Sky), 오스트리아의 사이클로테크(Cyclotech), 중국의 샤오펑(Xpeng)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이들은 모두 몇 년 전부터 플라잉카 개발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 왔다. 그러나 출시 전 필요한 각종 인증과 시험 비행 등을 마쳤다는 소식들은 간간이 나오고 있지만, 현재까지 실제 고객 인도로 이어진 곳은 아직 없다.
플라잉카에 대한 양산 체제를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선 개발 난도가 굉장히 높다. 자동차와 항공기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그만큼 충격에 강하면서도 가벼운 소재가 필요하다. 여기에 이·착륙 과정에서 드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고, 이를 짧은 순간에 폭발적으로 출력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량·고출력의 배터리는 필수다. 문제는 그럴수록 배터리의 무게는 무거워지고 자연히 차체 무게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빠른 속도의 배터리 충전도 요구되고, 그러면서도 배터리 과열을 막기 위한 철저한 조치도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들이 연구개발 단계에서는 물론 양산 단계에서도 발목을 잡는다. 한마디로 자동차와 항공기에 요구되는 서로 다른 기술들이 한 번에 높은 수준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와 항공기를 겸하는 만큼 적용받는 규제도 강력하다. 자동차든 항공기든 실제 운행을 위해서는 다양한 인증 절차가 필요하다. 도로에서든 공중에서든 사고는 일어나지만, 그 사고 양상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당연히 인증 과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출시에 필요한 인증으로는 충돌안전, 배기가스 배출, 소음 등과 관련한 인증이 있다. 전기차의 경우 1회 충전당 전기차 주행거리 관련 인증도 받아야 한다. 항공기 출시에 필요한 인증으로는 감항인증(비행안전 적합성 인증), 형식인증(설계 등의 항공기술기준 충족 인증), 제작인증(항공기 양산 체계를 설계대로 갖췄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인증) 등이 꼽힌다. 여러 인증 과정 중 하나라도 길어진다거나, 인증에 실패하게 된다면 양산까지 걸리는 길은 더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속 그나마 가장 양산에 근접한 곳으로 보이는 곳은 샤오펑이다. 샤오펑은 올해 1월 미국에서 열린 IT박람회 'CES 2026'에서 올해 안에 세계 최초로 플라잉카를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샤오펑은 지난해 CES에서 자신들의 플라잉카 모형을 공개했는데, 회사 측은 작년 말부터 시험적으로 생산을 시작했으며 연간 1만 대를 생산할 수 있도록 라인을 갖췄다고 밝혔다. 다만 샤오펑이 양산을 예고한 플라잉카는 모듈형 방식으로, 비행 기체를 실은 지상 차량이 도로 주행을 하고 여기서 기체가 분리돼 하늘을 나는 방식이다. 즉 자동차 형태로 도로를 달리면서 바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일반적인 플라잉카와는 좀 다른 방식이다.
다른 업체들도 예상 생산 시점을 몇 차례 밝혔고, 사전 주문을 받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실제 생산까지 이어진 곳은 없다. 그나마 네덜란드 'PAL-V', 미국 '샘슨 스카이' 등이 실제 생산까지 근접한 것으로 여겨진다.
PAL-V는 지난해 4월 유럽항공안전국(EASA)으로부터 플라잉카에 대한 '기술적 이의 없음(NTO) 인증'을 받았다. 또 중동에 플라잉카를 체험할 수 있는 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시장 선점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당초 2022년 즈음 출시 시점을 2024~2025년으로 잡았던 것보다는 계획이 늦어졌다. 일단 회사 측에서 발표한 생산 개시 시점은 올해다. 샘슨 스카이는 최근 우즈베키스탄 항공사인 '에어 타슈켄트'에 300대의 플라잉카를 공급하겠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연내 출시 가능성을 높였다. 이미 미국 내 시험 주행은 진행한 상태다. 일단 이 회사는 이전부터 출시 시점을 2025~2026년 정도로 잡은 상태인데, 실제 출시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나머지 업체들은 올해 들어서 비교적 소식이 잠잠한 편이다. 슬로바키아 클라인 비전의 경우 당초 올해 1분기 중 고객 인도 계획을 지난해 5월 플라잉카 시제품을 공개하면서 밝혔지만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다. 만일 예정대로 1분기 중 생산에 성공한다면 세계 최초 타이틀을 움켜쥐게 되는 셈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미국 ASKA는 CES 2023에서 시연에 성공하며 이미 당시부터 사전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미국 연방항공국(FAA)으로부터 여러 인증 절차도 마쳤지만 이후에는 몇몇 제휴·협력 소식을 제외하면 소강상태로 보인다.
이처럼 플라잉카 개발·양산이 어렵다 보니, 향후 공중 수송을 담당하는 미래 모빌리티 수단으로는 플라잉카 대신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를 활용한 공중 교통 체계인 도심항공교통(UAM)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자동차의 외형을 갖춘 플라잉카와는 달리 항공기 형태라 기술적으로 구현이 쉽고, 규제 측면에서도 플라잉카보다는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역시 브이스페이스 등 수직이착륙기 제조업체가 있고, 'K-UAM' 시장 선점을 위해 이동통신 3사, 카카오모빌리티 등 여러 대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도 UAM을 미래 모빌리티로 육성하고, 이를 위해 관련 규제를 푸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측면이 있다.
다만 UAM은 어디까지나 날개·프로펠러가 달린 eVTOL를 쓰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플라잉카와는 차이가 있다. 플라잉카도 비행을 위해 프로펠러 등을 활용하지만, eVTOL은 공중 비행만 가능하고 플라잉카처럼 도로주행은 불가능하다. 또 플라잉카와는 다르게 반드시 이·착륙장이 필요하고, 전용 충전 시설과 관제 시스템 등도 요구되기 때문에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짐 두코브니 알레프 에어로노틱스 CEO도 MWC 현장에서 얘기를 나눴을 당시, 플라잉카와 UAM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들의 플라잉카는 UAM과 달리 별도의 이·착륙장이 필요 없으며,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면서도 외관은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주차가 훨씬 편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플라잉카는 전기차와 분명히 시장이 다르다고 보며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인 수요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UAM이 미래에 도심 내 확고한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로 자리잡더라도, 플라잉카도 나름의 수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SF 속 풍경이 더 이상 SF로 끝나지 않고 있다. SF의 상징과도 같았던 플라잉카마저도 가까운 미래에 정말 우리 일상 속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참고: 이 글은 '브랜드뉴스'에 기고해 2026년 3월 12일 게재된 기사를 일부 재가공해 제 브런치에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