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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 Oct 31. 2018

노인을 위한 드라마는 없다

출처 - MBC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해!"

  얼마 전 시작한 일요드라마 <내사랑 치유기>에서 극 중 손녀 최이유(김다현)가 37년 전 잃어버린 딸을 그리워하는 할머니 정효실(반효정)을 답답해하며 한 대사다. 드라마 속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녀, 손자에게 어려운 존재다. 실제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하기에 편한 존재는 아니지만 드라마 속 할머니, 할아버지는 유독 그렇다. 드라마 속 노인은 권위 있는 회장님이거나,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부모(주로 엄마여서 주로 시어머니), 그게 아니라면 보호의 대상, 약자로 그려진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드디어(?!)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 인구(65세 이상)가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다. 통계청은 2060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총인구 중 41%가 노인일 것으로 전망한다. 그런데 드라마에선 고령사회를 실감할 수가 없다. 죄다 젊은 사람들이다. 노인이 등장해도 우리 집의 할머니, 할아버지랑은 좀 다르다. 위의 세 캐릭터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는 드라마 속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으니 말이다.

직접 2018년 MBC 드라마의 노인 통계를 내봤다. 2018년에 종영한 드라마는 16편, 현재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는 5편으로 2018 MBC 드라마(종영 시점 기준)는 총 21편이다. 홈페이지 등장인물 페이지에 소개한 인물을 기준으로 분석했다.

  21편 드라마 각각의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등장인물 수는 평균적으로 15.3명이다. 그중 노인 수는 평균 0.8명으로, 등장인물의 단 6%에 해당한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14.3%인데! 절반보다도 작은 비중이다. 21편 중 9편의 드라마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에는 노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4편(<숨바꼭질>, <시간>, <검법남녀>, <데릴남편 오작두>)을 제외하고는 1 또는 0이라 모스부호인 줄 알았다. <밥상 차리는 남자>가 소개하는 등장인물이 24명으로 가장 많은데, 노인은 한 명뿐. 노인들이 비교적 많이 보는 일일드라마·아침드라마·주말드라마는 어떨까? 분석대상 중 총 8편이 이에 해당한다.(<내사랑 치유기>, <비밀과 거짓말>, <부잣집 아들>, <이별이 떠났다>, <데릴남편 오작두>, <전생에 웬수들>, <역류>, <밥상 차리는 남자>) 이 8편의 평균 노인 비율은 8%로 전체 평균보다는 다행히 2% 높다.


  다행일까? 8편 속 노인은 총 12명인데 그중 회장님은 2명(<내사랑 치유기>, <비밀과 거짓말>), (친정 or 시)어머니는 5명(<부잣집 아들>, <이별이 떠났다>, <데릴남편 오작두>, <전생에 웬수들>, <밥상 차리는 남자>)이다. 어머니들 중 <부잣집 아들>과 <밥상 차리는 남자> 어머님은 회장님은 아니지만 부자다. 가족드라마 외 평일 프라임타임 드라마까지 다 합치면 부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더 많다. <숨바꼭질>은 3명의 노인이 나오는데 최보살 역을 뺀 2명이 회장님이시다. 그런데 나해금 회장(여성)은 회사보다 집 안에서의 권력자로 그려진다. 반면 문태상 회장(남성)은 회사에서의 모습이 부각된다. 여성 노인은 부자든 아니든 늘 '엄마'의 역할이다. 드라마 속 노인들이 좀 더 다양하게 그려지면 좋겠다. 주체적인 노인 캐릭터가 나온다면 노인 시청층도, 노인이 아닌 시청층도 반기지 않을까? 제2의 삶을 펼친다거나, 친구들과 연대한다거나... tvN의 <꽃보다 할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재밌어했는지를 생각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MBC

  <데릴남편 오작두>가 내가 뽑은 2018 MBC 드라마 노인통계 1위다. 6명이라는 많은 숫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캐릭터 면에서다. '구라마을 삼인방'이라는 카테고리로 노인 셋이 똘똘 뭉친 연대를 잘 그려냈다.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흔한 할머니 부대다. 명장 오금복 역할은 누군가의 아빠, 남편, 가장보다는 명장으로서, 주체로서의 모습을 부각한 캐릭터다. 가족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노인을 가족의 일원보다는 하나의 주체로 그린 <데릴남편 오작두> 같은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란다.


  드라마에서도 노인이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이유는 실제로 TV 시청자가 노인이기 때문이다. <2017년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를 살펴보자. 이건 방송통신위원회가 낸 통계다. 하루 평균 방송 프로그램 시청 시간(TV 수상기 이용자) 1위는 70대 이상(4:25), 2위는 60대(3:54)다. 젊은이들의 이야기, 그저 가족 안에서의 노인 이야기보다 노인들이 더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를 찾아야 한다.


   노인이 아닌 연령대에게 '노인'의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또 다른 캐릭터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디어 속 노인은 부자에 모정, 부정도 엄청나 "불편한 존재"이니 머릿속에서도 "불편한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드라마 속 회장님과 시어머니를 보면서 '아우 늙으면 저렇게 돼? 늙기 싫다!'는 생각은 나만 드는 생각이 아닐 것이다. 갇힌 틀 속 노인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사는 노인을 보여 주자. 멋지게 늙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도한 명쯤은 있지 않은가 -


  2060년엔 노인이 40%가 될 것이라는데, 그땐 나도 노인일 테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노인도 드라마 속 사회의, 현실 사회의 구성원이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니,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좀 더 솔직한 노인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나왔으면 싶다. 그리고 그 드라마가 MBC 드라마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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