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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 Nov 01. 2020

입이 돌아갔다 11년 만에 또,

7번 신경마비 벨마비 안면마비 구안와사. 이름도 많아요. 아무튼 재발

병상에 누워있으며 할 수 있는 건 몇 개 없다. 자거나,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거나. 그게 아니면 스마트폰을 들고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에서 뛰어노는 것. 다른 어느 때보다도 작고 좁은 세상이 펼쳐진다. 아픈 내 몸과 트럼프, 바이든이 무슨 상관. 코로나가 몇 명인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뉴스가 궁금하겠는가. 행복한 다른 이들의 SNS 속 #일상 은? 더더욱 관심이 없다.


내가 처한 이 상황의 동지들을 찾는다. 병의 원인부터 치료기 등, 병원의 광고마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다 읽는다. 그중 내게 위로가 되는 건 투병기. 같은 병을 앓은 사람들이 남겨둔 몇 자가 왜 그리 고마운지. 이틀도 안돼 인터넷에 공개된 투병기는 다 읽었다. 이 병은 흔하다는데(진짜요?) 투병기는 몇 없다. 그래서 적는다. <아무튼 재발> 이 시리즈의 결말은 알 수 없다. 하루빨리 이겨내 조기 종영하길 바랄 뿐. 나에게도, '구안와사 완치' 등을 검색해 이 글을 마주한 독자에게도 그게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재발(再發)

재발이다. 26살, 이 나이에 안면마비가 처음이 아니다. 12년 전 처음 발병했다. 중학교 1학년 사춘기가 채 오기도 전에 왼쪽 얼굴이 마비됐다. 중2까지 약 6개월가량 이어졌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니 없었다. 재발 전까진.


일요일 밤, 어딘가 불편했는데 언젠가 겪은 일이었다. 낯선 움직임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았다. 12년 전 어느 날 밤, 그래 그날 밤과 같았다. 심지어 왼쪽 얼굴이라는 것도 똑같다. 양치를 하고 입을 물로 헹구는데.. 물이 찔끔 샜다. 누가 보면 그냥 튄 거라고 여길 양이지만 확실했다. 내 입이 제대로 안 다물어져 샌 거였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발병 경과도 12년 전과 똑같았다. 처음엔 편두통이었다. 평소에도 임파선이 약한 터라 임파선이 부었고, 열이 났으며 귀 뒤가 지끈거렸다. 이번엔 좀 오래간다 싶었는데 그 전날 오래 작업한 자세가 문제였겠거니 하며.. 괜히 운동도 열심히 했다. 일요일 낮부턴 감출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애써 웃는 느낌이 들었는데, 통증 때문에 그런 거라고.. 아파서 웃는 데 불편한 거라고.. 생각했다. 근육이 점점 마비된 거였는데.. 다행히 눈치 빠른 간은 술을 별로 안 땡겨 했다. 칭찬해 내 간.


양치하며 직감한 나는 잠에 들 수 없었다. 자고 나면 어떻게 돼 있을지 직감으로 알았으니까. 그때 그날처럼 마비가 덜컥 찾아오겠지. 안 자면 마비가 안 될까? 이런 상상을 하다 결국 잠에 들었다. 그런데 만약에 ... 진짜 안 잤으면 마비가 안 됐을까?



이미 수차례 검색했을 거고, 직접 겪은 사람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애석하게도) 증상을 두 번이나 겪은 내가 정리해보자면.. 7번 뇌신경이 마비되는 순서는 이렇다. 아 나는 말초성이고, 철저히 내 경험에 따른 기술이다.

1) 2~3일 동안 한쪽 귀 뒤가 아프다. 이때까진 편두통이나 임파선 붓는 거랑 증상은 같다.
2) 마비되기 전날 오후 3시, 한쪽 눈이 뻐억뻐억 감긴다. 이 느낌은 겪어봐야만 안다. 감는 속도가 늦고 동공의 위치가 옮겨지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3) 마비되기 전날 오후 6시, 이제는 볼로 내려온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다. 분명 웃고 있는데 애교살과 광대가 안 올라온다.
4) 마비되기 전날 오후 9시, 한쪽 귀만 앰프가 달린다. 차를 타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이어폰을 꼈을 땐 잘 안 느껴졌다.
5) 전날 밤 양치할 때 물이 샌다. 빼박이다 이건. 입을 제대로 안 댔나? 싶지만 아니다. 두세 번 오물오물할 동안 두세 번 튀자.. 직감했다.
6) 당일 눈을 뜨면 눈물이 난다. 밤새 뜬 눈이었거든요.
7) 이가 보이게 안 웃어진다. 제일 무서운 입의 마비가 시작된 거다.


월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웃어봤다. 왼쪽 입이, 눈이 안 웃어졌다. 그리곤 곧장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마비를 직시하고 슬퍼서 흘린 눈물이 아니다. 위의 6)에 해당하는 이 병의 증상, 악어의 눈물이었다. 말초성 안면마비의 경우 눈이 완전하게 감기지 않는다. 정말 말 그대로, literally 뜬 눈으로 잠을 자야 한다. 바짝 말라버린 눈엔 억지로 짜내는 눈물이 흐른다. 그게 바로 악어의 눈물. 악어의 눈물 후에는 울화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거울 앞으로 향하기도 전에 얼굴은 눈물로 범벅됐다.


신경과로 향했다. 20분도 안 걸리는 거리가 구만 리 같았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느라 일부러 노래가 나오는 주파수로 내내 바꿨다. 그 덕에 위의 4), 귀도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양쪽 귀의 울림이 확연히 달랐다. 마비된 쪽, 왼쪽 귀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반응했다. 고음인데 소리가 크면 최악이었다. 귀로 들어온 그 소리는 눈과 입꼬리까지 찌릿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엄마처럼.


12년 전엔 한의원에 먼저 갔다. ‘풍은 한방이지!’라던 그 시절, 몰랐다. 급한 거 빠른 거 응급한 거 그건 양의다. 발병한 지 3~4개월이 넘었을 때, 매일 한의원에 가 치료를 받아도 좀처럼 호전이 없자 그때서야 신경과를 갔다. 순서가 완전히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이미 마비가 된 후엔 신경과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적었다. 통증이 심하면 신경을 잘라내는 수술 정도..? 회복을 위한 치료는 없었다. 발병 즉시 마비가 더 진행되는 걸 지연시키고 멈추는 게 신경과의 처방(스테로이드)이었다.


링겔과 약봉지. 상태를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수술대에 눕혀서 응급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병원에선 고작 주사 한 대와 무려 엄청난 양의 약을 줬다. 내일도 병원에 오라면서 20정 가까이 든 약을 처방했다. 하루 만에 저걸 다 먹으라니! 병원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거지 뭐. 이 병이 정말 엿같은 병이라는 건데 발병 이유를 모른다는 거다. 이유를 알아야 제거를 하고 해결을 할 텐데. 문제는 일어났지만 원인은 모른다.


원인 후보는 있다. 1)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2) 코로나는 아니지만, 바이러스 3)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찬 바람.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 스스로 원인을 찾아볼 뿐, 확실하진 않다. 12년 전에는 독서실 찬 바닥에서 잔 게 이유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재발하고 나니 그냥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되는 건가 싶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트레스가 뭐가 있었나...싶지만 그땐 스트레스 매니징을 못했을 테니까..


그러면 지금은? 어릴 때부터 1)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에 시달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 건강이 신체 건강으로 이어지는 데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이에 스트레스 매니징을 꽤나 빨리 익혔다고 생각한다. 일정 게이지가 차오르는 게 느껴지면 바로 조치를 취해 대응했다. 그렇게 넘기다 못 넘기면.. 이렇게 되는 건가? 끔찍하게도 의사 선생님의 말도 비슷했다. 재발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일정 주기로 재발할 수도 있고(나는 대략 10년 주기라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일정 정도를 못 버티면 그때마다 재발할 수도 있다고.


그.런.데 설사 스트레스 때문에 마비가 왔다 한들, 마비된 얼굴을 보며 받는 스트레스는 그에 비할 바가 못된다. 스트레스가 1단계부터 10단계까지 있다고 하면, 이건 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100단계로 로켓을 쏘는 셈이다. 앞서 말한 증상 별로 차근차근 스트레스 단계가 올라가는 게 아니란 말이다! 어? 눈이 잘 안 감기네 1단계! 어라아? 귀가 울리네 4단계! 이게 아니라고..정말 못된 병..

   

첫 주는 신경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게끔 주의해야 하는 때라 무조건 절대 안정이라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종합 비타민, 비타민 D, 오메가3, 크릴 오일 등등 눈에 보이는 영양제는 다 털어 넣었다. 하루 한 번은 13~15정을 한꺼번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밥도 든든히 먹었다. 밥 먹고, 약 먹고, 잤다. 잘 때는 안대를 꼭 꼈다. 자는 동안 눈을 만져서도 안 되고 뜬 눈을 조금이나마 덜 건조하게 하기 위해서다. 12년 전에는 몰랐는데 이게 제법 효과가 있다.


지난주에 동물원에 다녀왔는데(아 벌써 꿈만 같아라) 사자는 하루에 18시간씩 잔다고 한다. 딱 그 삶이다. 잠에 야박한 편인 나는 자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게 오히려 스트레스인 사람이다. 그러다 스트레스 최고조(10단계)면, 무기력과 우울감에 휩싸여 잠만 잔다. 이번에는 회복을 위한 의지로 그토록 잔 건지, 무기력과 우울감이 재운 건지 잘 모르겠다. 첫 주를 마치며 신경과 선생님께 잠을 엄청 잔다고 했더니, 그럴 이유가 없다며 갸우뚱하셨다. 그러더니 내 얼굴을 보곤 항우울제를 처방에 넣으셨다. Merci Beaucoup!


첫 주 동안 신경과는 월화토 3회, 한의원은 화목 2회 다녀왔다. 약물 치료는 전부 신경과의 스테로이드 포함 처방에만 의존했다. 월-화 하루 사이에 마비 진행이 금방 더뎌져서 수요일부턴 호르몬 약을 조금 줄이긴 했다. 한의원에도 스테로이드를 맞았다는 점을 밝혔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안 좋아하니까 중간에서 조율을 잘해야 한다. 난 둘 다 좋은데.


외출은 거의 없었다. 하더라도 병원까지는 무조건 차를 이용했다. 찬 바람을 맞는 게 위험해서 내가 사랑하는 가을바람을 맞을 수가 없었다. 차로 이동하든, 아주 짧은 거리를 걷든 모자와 안경, 마스크를 썼다.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쓰는 게 의무화라 내겐 다행이다. 12년 전에는 나 혼자 마스크를 쓰고 다녔는데. 그 기억은 끔찍하다. 나중에는 그냥 안 쓰고 다녔다.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 입이 돌아간 게 덜 튀었던 시절이니.


첫 글은 최대한 감정을 정제해서 쓰려했는데, 조절이 안 된다. 이래서 나는 사건이 좀 지나가고 감정이 진정되면 기록하는 편인데.. 뱉어낼 곳이 필요했다. 첫 주 동안은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마비가 진행된다.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다. 반면에 해야 하는 일은 어찌나 가혹한지.


나야 지금은 일터에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일터와 중요한 미팅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말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래 뭐 일적으로 책임지는 거야 으른이니까 마땅히 해야 한다.


제일 힘든 건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다. 약속을 취소하는 것부터 일일이 개인적으로 연락해 내 병을 알리고 내 병에 대해 설명하고..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게 나한텐 너무 힘들었다. 철저히 이기적인 입장이다. 계속 병을 이야기하고 이 엿 같은 상황을 전하며 되짚는 게 누적되는 데서 오는 피로감. 뭐 좋은 일이라고 그리도 알리고 톺아보는가. 그래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속도 있지만, 12년 전 경험에 따르면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정말 영영 안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막막함이 날 너무도 짓눌렀으니까.



재발 6일 차 씀.

다음 편에선 한의원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

https://brunch.co.kr/@chal/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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