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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Aug 12. 2020

슬기로운 육아생활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나는 마흔한 살에 결혼을 하고, 마흔두 살에 아이를 낳았다.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라 주위에서는 보나 마나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을 거라고 했다. 회사에는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병원을 다니는 나보다 어린 직원도 여럿 있었고, 또 아예 아이를 포기하고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웬걸, 너무 기대를 안 해서였을까? 허니문 베이비가 덜컥 들어섰고, 결혼 이듬해 나는 건강하고 예쁜 딸아이를 출산했다. 



* 50일 아기 사진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멀리 떨어져 사는, 친정과 시댁 부모님들이 모두 연로하셔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도 않았다. 의류 시장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었으므로, 지금 집에 들어앉으면 경력 단절이 될 게 뻔했다. 


하지만 목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엄두는 나지 않았고 (아침에 데려다주는 것부터가 일이다.>. <), 회사를 다니고 육아를 하면서 살림을 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나이 때문인지 회사일 만으로도 체력은 쉽게 고갈되었고, 나는 본래 육아나 살림에 별 취미가 없었고, 또 슈퍼우먼도 아니었다. 


사회는, 주위에서는 내게 일인 삼 역을 거뜬히 해내는 슈퍼우먼이 되길 바랐지만, 이기적인 나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 단디 핼퍼린 구인 사이트를 통해 아이를 봐줄 도우미 이모를 알아봤다. 


이모의 고용 조건은 이랬다. 


-    근무 시간 : 월~금 근무, 7:30 AM ~ 7:30 PM

-    법정 공휴일 휴무, 여름휴가 있음, 야근 수당 지급

-    급여 : 180만 원

-    집 근처에 사시는 분/반찬 잘하시는 분 우대 


산모 스무 명 정도가 입소해 있던 산후조리원에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고, 삼 개월의 출산 휴가 후 복직하는 사람도 내가 유일했다. 산모들은 대부분 이미 회사를 그만뒀거나, 프리랜서거나 또는 일 이년의 육아휴직을 신청했다고 했다. 모두 자기가 직접 아이를 키울 거라고 했다. 




아이를 집에 데리고 온 첫날, 아이가 밤새 보채고 울어서 밤을 꼬박 새웠다. 

이런 게 육아라면 정말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해서 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다음 날, 한 시간 간격으로 이모 세 분의 면접을 봤고, 우리 앞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아이를 케어한 이모를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몸조리도 해야 했고, 임신과 출산으로 불어난 살도 빼야 했기에 이모에게는 바로 출근해 달라고 했다. (사실 나 혼자 아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이모 덕분에 나는 출산 휴가 동안 이모가 해주는 밥을 먹고, 책을 보고, 편하게 낮잠을 자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며 온전히 쉴 수 있었다.  


출산휴가가 끝나갈 무렵에도 나는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육아의 달인, 이모가 있었으니까. 


풀타임으로 고용한 이모의 급여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이모는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아이 케어는 물론이고 살림까지 도맡아 해 주셨다. 


아이를 보고 있는 중에 전화라도 올라치면 이모는 


“근무 중입니다. 일곱 시 넘어서 전화드릴게요.”


라며 바로 전화를 끊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장성한 아들 둘이 있는 이모는, 딸을 키워보고 싶었다던 이모는 내 아이를, 친 손녀처럼 예뻐해 주셨고, 정성으로 양육했다.  




내가 이모를 구하고 출근하자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모. 르. 는. 사. 람. 에게 아이를 맡길 수가 있냐며, 온갖 나쁜 보모에 대한 흉흉한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마지막에는 꼭 CCTV 설치는 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나도, 집 거실과 방에 CCTV를 설치했지만 한 번도 보지는 않았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본들 또 어쩌랴, 나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눈 앞에 있던 이모를 엄마처럼 잘 따랐고, 세 돌이 지나고부터 다니기 시작한 어린이집 적응도 잘했다. 나는 해외 출장이 잦았고, 회사일로 바빴기 때문에 이모 얼굴 볼일도 거의 없었다. 평일에는 퇴근 시간이 일정한 남편이 이모를 퇴근시키고 육아를 맡았다. 주위 사람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모가 키우는 아이는 예의 바르게, 건강하고 밝게 자랐다. 


산책길에 담쟁이 배경으로 한 컷


나는 어린아이가 있는 직장 맘이었지만, 다른 여직원들과 다르게 아이 때문에 회사에 늦거나, 급하게 휴가를 내야 하거나, 어린이집에 가봐야 한다거나 또는 일하다가 쫓아가야 할 일이 없었다. 병원 진료는 물론, 아이에 관한 모든 일들은 이모가 나를 대신해서 처리했다. 


이모는, 나에게 아이와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아이의 일상이 담긴 사진을 하루에도 수십 장씩 찍어서 보내주었다. 특히 오후 산책길에 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사놓고 입혀 보지 못한 옷들을 꺼내 입히고 다양한 연출로 사진을 찍어 보냈다. 나는 시시각각 이모가 보내는 아이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일을 했다. 


나보다 이모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아이는, 내가 출근할 때는 ‘안녕히 다녀오세요’라며 배꼽 인사를 했고, 이모가 퇴근할라치면 가지 말라고 이모의 다리를 잡고 사정없이 울어 재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조금, 아니 많이 서운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을 머금고......)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서, 이모는 아저씨의 은퇴에 맞춰 곧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더 이상 아이를 봐줄 수 없다고 내게 통보했다.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바빠진 나는 돌봄 사이트에서 다시 아이를 봐줄 이모를 구했다. 다행히 근방에 사는 이모 여럿이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본 후, 갈비 집을 십 년 했다는 이모를 다시 고용했다. 




내가 이러저러해서 이모를 새로 구했다고 하자, 사람들은 또다시 입을 모아, 애를 그렇게 방치(?)하면 쓰냐고, 너는 모성애도 없느냐며, 지금이 아이에게 제일 중요한 시기라며, 이모에게 웃돈을 주고서라도 잡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모 손에 큰 아이는, 엄마는 일을 하러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아이는, 새로 고용한 이모에게 달싹 붙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을 했고, 일곱 살이 된 지금도 그 이모가 아이를 봐주고 있다. 


요즈음은 신랑이 출근하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이모가 유치원 하원에서부터 신랑이 퇴근해서 집에 오는 시간까지 하루에 세 시간씩 아이를 돌봐준다. 짧은 시간에도 이모는 짬짬이 집안 청소며 빨래를 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정성 가득한 솜씨로 우리가 먹을 저녁까지 해 주신다. 급여는 매달 칠십만 원 정도 드린다. 


갈빗집을 경영했던 이모는 음식 솜씨가 장금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좋았고, 집에서 반찬을 하실 때마다 우리가 먹을 것을 늘 조금씩 덜어오신다. 이모 덕분에, 나의 복인지 아이가 타고난 복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 걱정 없이, 반찬 걱정 없이 오늘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 심지어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닌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지금 이모를 계속 쓸 예정이다. 

서로 잘하는 것을 해야 일의 효율도 오르고,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으니까.  


아마도 내가 일찍 결혼을 했더라면, 돌봄 이모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진작에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아이를 늦게 나아서 그런지, 아이의 손짓하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얼마나 사랑스럽고 소중한지 모른다. 하고 싶은 만큼 여행도 해 보았고, 놀아도 봤기에 결혼 후에는 온전히 일과 아이에게 집중하는 삶을 산다. 


나는 아직도 싱글인 친구들에게, 혼기가 찬 회사 여직원들에게 결혼은 늦게 해도 괜찮다고, 아니 늦게 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결혼해도 된다고 얘기한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믿으라고.

세상에는 아직 선량한 사람들이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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