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페망고 Nov 10. 2020

상처만 남은, 아이들을 위한 할로윈 여행

결혼 전에 나는 항상 혼. 자. 여행을 다녔다. 

먼 나라 네팔도, 카오스의 나라 인도도, 심지어 남아공의 요하네스 버그에서 버스를 타고 희망봉을 찍고 짐바브웨까지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피붙이 동생과 함께 가더라도 반. 은 무조건 양보해야 여행이 순조롭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외롭더라도 나는 늘 혼자 다녔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일곱 살이 된 딸아이는 엄마보다 친구와 노는 걸 더 좋아했고, 행여 우리 가족만 여행을 가게 되면 여행지에서 친구를 급조해서라도 함께 놀거나, 아니면 내가 계속 딸아이의 친구가 되어 놀아줘야 했다.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친구들 엄마 셋과 함께 있는 단체 카톡 방에서 은세 엄마가 할로윈 파티는 어떻게 할 거냐며 의견들을 내 보라고 했다. 


서아 엄마는 작년처럼 키즈 카페의 파티룸을 빌려 놀자고 했고, 예린이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아무래도 실내는 찝찝하니 이번에는 넓은 야외에서 노는 건 어떤지 물었다. 


은세 엄마가 나에게 ‘언니는 어떻게 하는 게 좋아?’ 하고 물었다. 엄마들 중에 내가 제일 연장자였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던 나는 갑자기 여행이 떠나고 싶어 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동안 내심 별러왔던, 딸에게 친구들과 일박을 하며 ‘파자마 파티’라는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졌다. ‘파자마 파티’는 어쩌면 모든 워킹맘들의 숙원 사업인지도 몰랐다. 회사에 매어 있는 시간이 많아서 나는 유치원 행사에도 거의 불참했고, 또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도 소원했다. 나는 속으로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상상의 나래를 폈다.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생각인지도 몰랐다) 


“내가 제천에 있는 리조트 부킹 할 수 있는데, 미세먼지도 없고 하니 단풍 구경도 할 겸 이번엔 거기 가서 놀까? 산속에 있어서 경치도 아주 좋거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좋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당장 추진하자고 했다. 말을 꺼낸 은세 엄마가 먹거리 준비를 맡고, 여행 재정을 담당하기로 했다. 나와 서아 엄마는 차를 가져가기로 했고, 얼마 전 옆 동네로 이사 가고, 유치원도 옮겼지만 여전히 같이 만나는 - 자영업을 하는 예린이 엄마는 토요일에 시간을 뺄 수 있게 아르바이트를 미리 구해 놓겠다고 했다. 리조트에서도 할로윈 축제를 하는 만큼 각자 아이들 할로윈 의상도 준비해 오기로 했다. 


처음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아이들은 물론 덩달아 엄마들도 신이 났다. 토요일에 일을 해야 하는 학원 선생님 은세 아빠, 특근을 해야 하는 서아 아빠 그리고 자영업을 하는 예린 아빠 때문에, 이번 여행은 오. 붓. 하. 게 엄마와 딸들만 가기로 했다. 




내가 아직도 싱글인 절친에게 이번 주말에 딸 친구 엄마들이랑 일박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하니 친구가 화들짝 놀랐다. 결혼하더니 정말 많이 변했다며. 나는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다며 잘 다녀오겠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 들뜬 마음으로 유치원 근처 마트 앞에 모두 집결했다. 가서 달랑 일박을 하고 올 예정인데, 다들 커다란 트렁크를 하나씩 끌고 왔다. 나는 우리가 5박 6일의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줄 알았다. 


차는 엄마와 딸이 세트로 타기로 했고, 은세와 예린이라 가위바위보를 했다. 접전 끝에 은세가 이겼고, 은세는 우리 차를 골랐다. 우리 차에 타고 싶다던 예린이가 입을 쭉 내밀었다. 딸과 은세는 단짝이었으므로, 같은 차에 타는 것만으로도 둘의 입꼬리는 이미 귀에 가서 걸렸다.

 

하여 이렇게 나눠 타고 출발했다. 


나 운전  딸, 은세 엄마, 은세

서아 엄마 운전  서아, 예린 엄마, 예린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음에도 차가 많이 막혀서 리조트에 도착하니 늦은 오후였고, 다른 엄마들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숲 속으로 탐험을 나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역시나 즐거워했고, 자주 함께 못 논 예린이가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예린이도 나름대로 산책을 즐겼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 예린이를 챙겼다

<리조트 안에 있는 산책로>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은 모두 할로윈 의상으로 갈아입고 저희들끼리 이 방 저 방을 오가며 알아서 놀았다.

아이들 저녁을 챙겨 먹인 우리는 옥외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며 그림처럼 펼쳐진 풍광을 감상했다. 


<...... 안 즐겁니 얘들아? >


예린 엄마는 다음번에는 제주도나 해외도 가보자며 너무 좋다고, 오래도록 이 모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아 엄마와 은세 엄마 맞장구를 쳤고, 나도 너희들만 좋다면 어디들 못 가겠냐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면 다음 여행을 추진해 보자며 거들었다. 


그때 공주 옷을 입은 예린이라 울면서 데크로 나왔다. 


“너 왜 울어?” 예린 엄마가 다그쳤다. 예린이는 산책을 나가기 전에도 제대로 옷을 안 입는다며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고 눈물을 보인 터였다. 


“애들이 내가 하자는 놀이는 안 해, 엄마.” 예린이가 울면서 대답했다. 


술잔을 내려놓은 예린 엄마는 안으로 들어가 애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너희들 예린이가 하자는 놀이도 같이 해줘야 되는 거 아니니? 응?”


“예린이가 하자는 건 재미없어요.”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왜 예린이 하고만 안 놀아? 너희들 못됐네…… 예린이 너는 혼자 유튜브 봐, 그럼.”


예린 엄마가 예린이에게 휴대폰을 건넸고, 예린이는 소파에 앉아 혼자 휴대폰을 봤다.


밤이 깊어지고 주위의 소음도 사라질 즈음, 아이들은 서로 같이 자겠다며 실랑이를 했고, 중재에 나선 예린 엄마는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로 잘 곳을 정하자고 했다. 


하여 은세 모녀와 우리 모녀가 한 방에 자게 되었고, 나머지 둘이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딸과 은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키득거리며 좋아라 했고, 같은 방에서 자지 못하는 서아는 심통이 난 것처럼 보였다. 애들끼리 한 방에서 자고 엄마들끼리 한 방에서 잤으면 했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세트로 자겠다고 했기에 가위바위보로 방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사 가지고 온 술이 다 떨어지자 예린 엄마와 서아 엄마는 편의점에서 술을 사다가 밤새도록 마셨다.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바라던 멋진 풍광, 그리고 좋은 공기>




기온이 쑥 내려간 다음날 아침엔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밥을 해서 아이들을 간단히 먹이고 라면으로 대충 요기를 한 우리는 일찍 출발해서 집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고, 비라도 쏟아지면 대책 없이 고속도로가 꽉 막힐 터였다. 


차는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눠서 탔고(모두 이의가 없었으므로), 차가 막히기 전에 집에 도착하자며 휴게소도 들르지 않기로 했다. 밤늦게까지 논 아이들은 차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향해 달렸다. 밤에 딸이 찡찡거려서 잠을 좀 설치기는 했지만, 딸에게 좋은 추억도 만들어 주고, 엄마들과도 하룻밤을 같이 보내며 끈끈한 우정(?)을 쌓은 것에 만족해했다. 


길가의 나무들은 빨갛고 노란 나뭇잎을 후드드득 떨구며 흔들거렸고, 빗방울은 아침보다 조금 더 굵어지고 또 잦아졌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잠에서 깬 딸이 쉬가 급하다고 했다. 휴게소까지는 10킬로 정도 남았다.

나는 딸에게 휴대폰을 주며 엄마들 카톡방에 


“여주 휴게소에 들를 예정이다, 10킬로 남았다.”라고 카톡을 보내라고 했다.  

 

우리는 휴게소에 도착해 화장실을 다녀온 후, 통감자, 호두과자, 소떡소떡 등 주전부리를 사고 있었다. 그때 서아 엄마와 서아가 알은체를 하며 휴게소로 들어왔다. 우리는 도착해서 보자며 헤어졌다. 서아 엄마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우리는 그대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오는 길에, 화장실 앞에 혼자 서있는 예린이를 만났다. 


“예린아, 넌 왜 여기 혼자 있어?” 내가 물었다. 


“엄마가 화장실 가면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예린이가 대답했다.


“으응. 그래? 알았어. 우린 먼저 간다 그럼.” 


예린이를 혼자 기다리게 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춥다고 내 손을 잡아 끄는 딸아이를 보면서 그냥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에서 구운 통감자를 소금에 찍어 입에 넣으려고 할 때 전화가 왔다. 


서아 엄마였다. 


“응. 왜?”


“언니, 예린이가 혼자 화장실 앞에 있는데,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으응? 엄마 기다린다고 하던데? 우린 추워서 차에서 먹으려고 바로 차로 왔지……”


은세 엄마는 물을 안 사 왔다며 다시 휴게소로 가는 중이었고, 나는 전화를 끊으며 은세 엄마가 곤욕을 겪겠구나 싶었다.  


좀 있다 차로 돌아온 은세 엄마는 아니나 다를까 


“언니, 예린 엄마가 나보고 막 화를 내는 거야. 어떻게 그냥 갈 수가 있냐며…… 그래서 그냥 미안하다고 그랬어…..” 


“으응? 화장실 가면서 예린 엄마가 너 보러 예린이 봐달라고 했었어?”


“아니……” 


“그런데 왜?” 


“몰라 나도. 그냥 막 화내길래 미안하다고 하고 왔어…… 근데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일순간에 기분이 싸해진 우리는 집에 도착해서 만나지도 않고 그대로 헤어졌다.

 

나는 대충 짐정리를 하고 습관처럼 일찍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카톡에 난리가 나 있었다. 


예린 엄마는 어떻게 화장실 앞에 있는 예린이를 두고 그냥 갈 수가 있냐며, 앞으로는 조심해(?) 달라고 했고, 은세 엄마는 우리가 그냥 두고 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예린이는 화장실 앞에 있었다, 말을 하고 가던가, 자기 자식은 자기가 챙겨야지 누구한테 조심하라 마라냐며 따졌다. 이런 정나미 없는(?) 언니들과 그동안 함께 보낸 시간이 아깝다며 예린 엄마는 카톡방을 나간 후였고, 우리의 단란했던 모임은 여행 후 그렇게 쫑이 났다. 


나는 끝도 보이지 않는 카톡 대화를 읽다가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딸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내가 예린 엄마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누구든 자기 자식밖에 안 보인다. 누가 뭐래도 내 새끼가 제일 예쁘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무대 위에서 다 같이 춤을 춰도 내 자식만 눈에 들어오고, 노래를 불러도 내 자식 목소리만 귀에 들린다. 내 자식이 즐거우면 나도 그냥 좋은 거다. 


각기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을 주렁주렁 데리고 가면 이런 사단이 난다는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부처가 아니고서야 기분이 상하지 않을 엄마가 있기나 할까.  





나는 ‘여행 갔다가 쫑난다’는 얘기를 말로만 들었었는데, 그게 바로 우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제주도나 해외여행이라도 가서 이랬다면 정말 난감했을 것이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나중에라도 다른 엄마들과 섣불리 여행 같은 것은 갈 엄두는 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모두 같은 차를 타고 갔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가위바위보 할 필요도 없이, 같은 차에 타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휴게소에 들러 같이 화장실을 갔더라면, 우리가 예린이를 화장실 앞에 남겨 두고 지나쳤을 리가 없다. 어쩌면 그 흔한 ‘소통의 부재’가 화근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예린 엄마는, 함께 여행을 간 우리 모두가 예린이의 보호자가 되어 자기 딸처럼 봐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가,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하지만 나와 은세 엄마는 '우리의 딸'을 위해서 그 바람을 매정하게 저버렸다. 다른 한편으로 알게 모르게 예린 엄마는 우리에게, 혹은 예린이와 잘 놀아주지 않던 아이들에게 쌓인 게 많았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혼자 화장실 앞에 서 있는 예린이를 그냥 지나쳐 온 것은 엄마로서, 또 어른으로써 분명 잘못한 게 맞다. 그렇다고 삿대질을 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기보다는 다른 말로 순화해서 이야기를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코로나 시대에만 필요한 게 아닌 것 같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픈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배려할 때, 지속가능 한 만남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뿌리는 서로 부둥켜 안고 있을 지언정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는 나무처럼, 또는 결코 닿지 않는 섬들처럼. 


                                                                 <숙소에서 바라본 풍광> 

작가의 이전글 남편이 사고를 쳤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