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 엘사 사건을 바라보며
엘사의 얼굴이 부서졌다.
사이코패스, 분노 조절 장애, 찌질한 일베와 못되먹은 무뢰한까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CCTV 화면 속 남자를 수식하는 세간의 단어는 다양했다.
타인의 정성을 무참히 부수는 광경을 본 대중들은 분노했고 나 역시 안타까움을 느꼈다.
뉴스와 인터넷에 탄식 섞인 말들이 오가던 중, 어느 가수의 발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도 있을 뿐더러 그 폭력은 자신을 향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를 나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이 있지만, 동시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다.
우리는 정말 그 남자를 끔찍한 인간 말종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공개적으로 입장 표명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진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목격한 화면 속 남자는 틈만 나면 언제든지 폭행을 일삼을 잠재적 범인(犯人)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에게 주먹질은커녕 이렇다 할 위협조차 가하지 못할 소심한 범인(凡人)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그의 눈에는 행복한 세상이 아니꼽게 보였을 것이다.
한껏 들뜬 사람들의 표정과 눈뭉치를 굴리며 일상을 즐기는 풍경이 심기에 거슬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못마땅한 그의 눈에 들어온 휘황찬란한 자태의 엘사는 분노를 증폭시키는 도발적인 먹잇감이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참다 못해 주먹을 휘둘렀고 눈사람은 부서졌으며 잠깐이지만 화가 풀려 통쾌함을 느낀 남자는 다시 일상 속으로 걸어갔을 것이다.
내가 추측한 남자의 속마음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애꿎은 화풀이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한 남자의 화풀이에 이렇게까지 공분을 토할 필요가 있을까?
인류 사회는 분노를 제어하는 방법을 체득하며 진화해 왔다.
고대에는 갈등이 생기면 다짜고짜 칼부터 들이댔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가급적 대화를 통해 이를 원만히 해결하려 한다.
또한, 당한 만큼 그대로 되갚아주겠다는 함무라비 법전에서 출발한 사회 규율 시스템은, 가해자를 처벌하기보다 교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순간의 화를 표출하지 않고 적절한 방식으로 배출하는 것이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적합하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진화는 사회라는 큰 틀에 국한된 것이 아닌, 개인의 삶 속에서도 관찰된다.
친구를 때리던 아이는 상대방의 울음을 목격하고 대상을 동물로 옮긴다.
개미를 밟아죽이던 아이는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금 대상을 식물로 옮긴다.
화단에 핀 꽃을 마구 꺾던 아이는 이제 생명 존중 사상을 깨닫고 길바닥에 버려진 깡통을 걷어찰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으로 진화해 왔다.
개미를 밟거나 꽃을 꺾는 행위가 바람직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화는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기에, 그 과정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밟고 올라야 할 층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눈사람을 부수는 행동은 그것을 기분 좋게 감상하는 것보다는 분명 낮은 단계에 위치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유기묘를 발로 차거나 아파트 옥상에서 벽돌을 떨어뜨리는 행동보다는 분명히 나은 행동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지향점은 거시적인 진화의 과정이지, 찰나의 순간이 아니다.
고대 어류의 희부연 눈은 가까운 물체를 식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있으나 마나 한 존재 같지만, 명암을 구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없는 것보다는 생존에 유리한 기관이다.
사람의 꼬리뼈도 얼핏 생각하면 불필요한 흔적 기관에 불과하지만, 거추장스럽게 긴 꼬리를 달고 사는 것보다는 편리하게 진화했다는 반증이다.
명암이라도 분간할 수 있는 눈이 있었기에, 꼬리가 없어지는 방향을 택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진화 과정의 어느 한 순간을 떼어다 놓고 그것의 우스꽝스러움을 조리돌림 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도 않을 뿐더러 우스울 뿐이다.
CCTV에 찍힌 수 초의 영상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과 성향을 평가하려 드는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여러 층계를 오르고 어떤 사람은 여러 층계를 일일이 밟아나가야 한다.
누군가 먼저 올랐다 해서 아래층에 있는 사람을 힐난할 필요도, 그래야 할 당위도 없다.
나는 그가 사람들이 욕하는 것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악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도덕이라는 계단의 어느 중간 지점에 놓여 있는 흔한 개인 중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그 남자의 분노가 앞으로는 눈사람이 아닌 길바닥의 깡통이나 FPS 게임 속의 적군이 되기를 바란다.
화나는 일도 많고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타인의 정성과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이번 사건(혹은 해프닝)이 그에게 중요한 계기이자 다음 층계로 올라가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혹시 아는가, 다음 겨울에는 거리의 눈사람들을 구경하며 흐뭇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롭고 마음 넓은 사람이 되어 나타날지.
덧붙여, 화풀이의 대상이 잘못됐다는 비난을 핑계로 남자에게 과도한 화풀이를 하는 언론과 대중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한 개인을 향해 필요 이상으로 악의를 표출하는 그 화풀이의 방식은 과연 올바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
(* 진화라는 개념에는 '좋음' 혹은 '나쁨'의 가치 판단이 존재하지 않으나, 문맥상 해당 개념을 직선적인 '발전'의 의미에 빗대어 표현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