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쿄 워홀 2주차
고작 이러려고 워홀 왔나?
점심께 느지막이 일어나 바나나 한쪽으로 두 끼를 한꺼번에 해결할 때도,
찌는 듯한 더위에 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달콤한 음료수가 아닌 밍밍한 생수를 집어들 때도,
언제나 이 문장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돈이 부족하면 으레 찾아오는 불행의 순간들이지만, 텅 빈 지갑이 내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큰 불행이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집세는 선불이었다. (10월 집세를 9월 말에 미리 지불하는 방식)
하지만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 중개업체는 이 중대한 사실을 내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10월 말까지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에 맞게 돈을 계산해서 가져온 나는 셀프-대공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야 했기에, 당장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구해야 했을 테지만, 이 나라를 제대로 즐겨보기도 전에 노동의 현장에 투입된다는 사실과, 원하던 근무 환경과 상관없이 돈을 조금이라도 더 주는 곳을 찾고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 내키지 않았다.
그마저도 연락 한 번 없이 혼자서 셀프-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던 시간 속에서, 돈이 최대한 들지 않는 하루를 보내야 했기에 점점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선풍기와 냉장고의 회전날 밖에 없는 방 안에서, 나는 우울한 습기 속에 서서히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인생에서 두 번은 겪기 어려울 듯한, 묘한 기적.
일본에 도착한지 3일이 채 되지 않은 날, 나는 그때 한창 중고 가전/가구들을 구입하며 방 안을 채워넣는 중이었다.
그날도 동네 주민인 (곧 비자가 끝나는) 한국인 워홀러 분이 중고 가구를 무료로 나눔해 주신 날이었다.
그분은 좌식 의자를, 나는 목재 수납장을 어깨에 짊어지고 5분 거리의 길을 (땀으로 샤워를 하며) 걸어오면서 몇 마디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귀국하기 전에 필요없는 물품들은 나한테 버려달라는 농담 3 진담 7의 인삿말(?)을 남긴 채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그러다 연락이 온 것은 며칠 전. 세제가 남아서 주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별 생각 없이 동네의 카페로 향했다. 자그마한 감사의 표시(과자)와 함께.
나눔러 분은 세제 하나가 아닌 커다란 쇼핑백을 탁자 위에 올려놓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용 비닐봉투, 탈취제, 바디워시, 쇠고기고추장(!) 등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용품들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 이게 다 뭐냐고 물었다.
그분이 말하길, 어떻게 하다보니 내 블로그를 알게 되었고, 그 블로그의 글쓴이가 며칠 전 중고 거래를 했던 바로 나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블로그 글을 보다 보니 자신도 한때 가난한 워홀러로서 살았던 기억이 떠올라 짠하기도 하고, 사람이 좋은 것 같아 보여 더 얹어주시기로 했다는 것.
내가 감사함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자, 그분은 다소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쪽이 괜찮은 사람이라서 괜찮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그러니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그전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던 눅눅한 우울감들이 한순간에 폭포수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정말 괜찮은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묘한 대견함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랐다.
돈이야 원래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아르바이트야 결국 어떻게든 구하겠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정말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큰 힘이 됐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는 괜찮지 않은 사람, 나아가서는 얼마든지 나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에 너무 매몰돼서 정작 나의 괜찮은 점을 놓쳐 왔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 경험을 통해 할 수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만, 아마 워홀이 끝나는 그날까지도 이번 일은 잊지 못할 듯 싶다.
워홀, 아마 이런 경험을 하려고 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