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불 조각정원을 방불케하는 서암정사

-지리산 칠선계곡에 숨겨진 작은 하늘정원

by 찰라


안양문 우측에 관세음보살이 따라주는 감로수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푸르고 허공엔 흰 구름이 몇 조각 둥둥 떠가고 있다.


눈 아래는 작은 연못이 펼쳐저 있고 연못 주변에는 아름다운 수목이 들어서 있다. 오미조밀한 정원이 마치 지리산 자락에 펼쳐진 작은 하늘 정원을 방불케한다. 푸른 소나무 사이에 붉게 물들어 있는 단풍나무 들이 한송이 꽃들이 피어있는 느낌을 준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른 후 우리 일행은 석굴법당 위에 있는 비로전으로 향했다.



서암정사 경내를 순간부터 우리는 마치 극락세계를 유람하는 몽매한 중생처럼 얼이 빠져 있었다. 돌계단을 따라 비로전으로 올라가는 데 양 옆에서 선 대나무에서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대나무가 내는 소리인가, 바람이 내는 소리인가? 그대 생각에 따라 분별이 되리라. 바람이면 바람이지 왜 또 분별을 하려고 하는가? 이 중생심은 어이 할 수가 없다.


비로전으로 올라가는 대나무 숲과 돌계단


계단 끝자락에 아치형의 돌탑 문에는 '광명운대(光明雲臺)'란 노란 글씨가 단정한 전서체로 음각되어 있다. 구름처럼 많은 불보살이 상주하는 곳이렷다!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돌탑 뒤에는 법계관(法界關)이란 글씨가 판석에 예서체로 음각되어 있고, 문 좌우로는 갈겨쓴 초서체가 물 흐르듯 새겨져 있다.


動靜一源(동정일원) 동과 정이 둘이 아니며,

往復無際(왕복무제) 가고 옴이 둘이 아니다.


법계관


비로전 입구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바가 없으며, 또한 어디로 가는 바가 없는 까닭에 여래라 하지 않는가. 정과 동도, 가고 옮도, 모두 하나의 마음에 있음이렷다. 돌문을 들어서니 우선 독수성과 산신이 정좌하고 모습이 보인다. 그 아래는 회광조심(廻光照心)이라 석판 밑에 작은 석실이 있다. 그 자리에 고요히 앉아 부처의 광명이 비추일 때까지 수행을 하겠다는 선방일까?


산신


석실 바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마치 거대한 바위를 포개 놓은 듯한 암벽이 나온다. 그 암벽의 맨 위쪽에는 비로자나불상, 아래 좌현에는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우현에는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협시불로 비로자나불을 떠받들고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는 선재동자가 합장을 하고 선지식을 간절히 구하고 있다.


사자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


선지식을 구하고 있는 선재동자


연화대에 정좌를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은 결인(結印-양손을 가슴에 올리고 수인을 하고 있는 자세)을 하고 있다.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 하나라는 비로자나불만이 취하는 독특한 수인 자세다. 비로자나불은 고개를 꺾어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자칫 놓치기 쉬울 정도로 직각으로 음각되어 있다. 노사나불이라고도 하는 비로자나불은 산스크리트어로 "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이다. 티베트, 네팔 등에서 널리 숭배되는 최고의 부처이다.


비로자나불


주산 신은 산신령에 해당하는 상으로 본래 도교에서 유래되었지만 불교는 모든 토속신앙을 수용한다. 손에 파초선을 든 채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의 모습이 어쩐지 시골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산신의 뒤에는 쟁반을 받쳐 든 동자가 시봉을 하고 있다.


독수성은 천연바위에 천태산 소나무, 구름, 공작을 배경으로 마애상 형식으로 부조되어 있다. 긴 눈썹을 옆으로 휘날린 채 왼손에는 석장을 들고, 오른손에는 염주를 돌리고 있다. 독수성은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을 하여 정각을 얻은 나반존자를 일컫는다. 운문사 위 사리암에는 나반존자 기도만을 드리는 곳인데, 영험이 큰 대신 매우 엄하고 까다로워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며 삿된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오히려 화를 입힌다고 한다.


독수성을 시봉하고 있는 동자

독수성 왼쪽에는 한 동자가 사슴 두 마리와 함께 과일 바구니를 들고 독수성을 시봉을 하고 있다. 사슴은 영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두 마리의 사슴이 한층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독수성 앞에는 돌로 벽을 쌓고 돌로 이엉을 한 작은 돌방이 하나 지어져 있다.


용왕전


비로전을 내려와 왼쪽으로 올라가니 용왕전이 나온다. 용왕 역시 민간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바다, 강, 호수 및 기타 갖가지 물과 그곳에 사는 생물들을 관리하고 지배하도록 옥황상제에게 명령을 받은 물의 왕이다. 또한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 불법에 합당한 소원을 들어줄 수가 있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샘을 집수한 큰 물통을 뒤에 두고 꾸며져 있다. 물의 소중함을 신성시하여 신격화하기 위함이다. 양편의 벽에 박은 주련은 물의 소중함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용왕전 앞에는 붉은 나리꽃 한 송이가 곱게 피어나 있다.

無盡淸淨泉 (무진청정천) 다함이 없는 맑고 청정한 샘이여,

如天甘露水 (여천감로수) 바로 천상의 감로수로다.

衆生得飮者 (중생득음자) 중생이 이 물 얻어 마시면,

悉皆獲淸凉 (실개획청량) 모두 청량함을 얻으리라.


용왕전과 단풍


용왕전 뒤에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


"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색깔을 빚어낼 수 있을까요!"

"오직 자연만이 빚어낼 수 있는 색깔이지요."


감탄! 감탄! 또 감탄!



용왕전에서 내려와 범종루에 이르니 느닷없는 연못이 나온다. 연못에는 파란 연잎이 돋아나 있고, 십장생을 나타내는 조형물 사이로 비단잉어가 유유히 유영을 하고 있다. 거북이는 입으로 물줄기를 쏘아대고 관세음보살이 들고 있는 호로병에서는 감로수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칠보연지


관무량수경에 "극락정토에는 연꽃이 피어 있는 큰 연못이 있는데 물은 맑고 깨끗하여 바닥이 들여다보이고 꽃들은 황금빛으로 빛난다. 극락정토의 성중(聖衆)들은 이 연지에 둘러앉아 설법을 듣는다”라고 적혀 있다. 이런 산중에 연못을 조성하여 연꽃과 물이 흐르니 암자 전체가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장독대를 지나 공양간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석굴법당을 바라본다. 저렇게 숲으로 덮여 있는 곳을 발견한 원응 스님의 염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안에 수십 년 사를 하여 온 것은 혼신의 힘을 다한 불심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경지다.





아래쪽 길로 걸어 나가니 배송대(拜送臺)가 나온다. 들어올 때는 위쪽 대방광문을 통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조각이다. 배송대는 영가를 서방정토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것으로 아미타불이 좌보처에 관세음보살, 우보처에 지장보살을 거느리고 반야용선을 타고 있다. 반야용선은 영가를 저승으로 태워가는 배를 말하는데, 이는 죽은 시신을 묘지로 이운(移運)할 때 용, 봉황, 연꽃 등 아름답게 치장을 한 상여를 가리킨다.


배송대


이제 서암정사를 떠날 시간이다. 좁은 공간에 오목조목하게 새겨놓은 아미타불 세계, 이는 마치 극락정토 피안의 세계와 같다. 이 피안의 세계를 떠나 사바세계로 가야 한다. 입구 돌기둥에 새겨진 음각이 사바세계로 돌아가는 자의 마음을 달랜다.


森羅萬象各別色 (삼라만상각별색) 삼라만상 온갖 모습이 제각기 다르지만

還鄕元來同根身 (환향원래동근신) 고향으로 돌아가면 본래 같은 뿌리라네.



모든 일은 때가 있다. 억지로는 되지 않는 법.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서원과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한 부단한 수행정진, 그리고 간절한 기도가 없으면 결코 이루기 어려우리라. 서암정사는 50년간 긴 세월을 두고 원응 스님의 대원력과 간절한 기원으로 세워진 암자가 아닌가?

서암정사 법당에서는 가을 하늘처럼 맑고 청량한 염불소리가 목탁소리와 함께 지리산자락에 울려 퍼지고 있다.


염불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리산 자락은 평화롭기만 하다. 원응스님의 대원력처럼 남북이 화기애애해지고 평화통일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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