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개의 불상이 숨위는 간체, 쿰붐 초르텐
얌드록초를 떠나 두 시간 남짓 달리자 성곽에 둘러싸인 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위절벽 위에 솟은 간체종이었다. 바위 능선 위에 붙어 있는 성은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성채처럼 우람했다. 전쟁의 기억을 품은 돌들이 이제는 순례자의 발걸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체종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얄룽 왕조의 마지막 왕 팔코르찬의 궁전을, 간체의 군주 팍파 팔상뽀가 군사 요새로 개축한 곳이다. 네팔과 라다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는 이 성은, 지금도 바람을 방패 삼아 서 있었다. 나는 성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권력은 성을 쌓지만, 기도는 길을 만든다고.
간체는 요새 아래 조용히 몸을 낮춘 도시다. 라싸에서 260km. 네팔과 부탄에서 티베트로 들어오는 길목, 차마고도의 마방들이 히말라야를 넘기 전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던 곳. 중국의 영향이 비교적 적게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도시는 이미 충분히 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티베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탑이 이곳에 있다.
“여기서 점심을 먼저 먹고 천천히 구경하세요.”
깡파가 성 앞에 있는 음식점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내와 나는 사원 입구 타쉬 레스토랑에서 2위안짜리 국수를 한 그릇씩 먹었다. 새벽부터 달려온 몸에 국수 국물이 스며들었다. 후루룩—허기를 달래는 소리는 언제나 진실하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입장권을 끊고 사원 안으로 들어섰다. 때마침 싸가다와(Saga Dawa, ‘싸가’는 석가, ‘다와’는 달이라는 뜻이다)기간을 맞이하여 순례자들과 티베트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다. 티베트에서는 석가모니의 탄생, 성도, 열반이 모두 싸가다와 기간인 한 달에 겹친다. 그래서 한 달 전체가 불탄월이 된다. 사람들은 채식하고, 금욕하며, 보시로 하루를 채운다.
정문을 지나자 넓은 마당이 펼쳐졌다. 중앙 마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간체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이 자리에 모인 듯했다. 빽빽했지만 혼란은 없었다. 군중은 소음이 아니라 호흡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싸가다와는 하루의 기념일이 아니라, 한 달 동안 이어지는 마음의 자세다. 부처님의 탄생과 깨달음, 그리고 열반이 한 달에 겹쳐 있다고 믿는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말을 줄이고, 고기를 내려놓고, 욕망을 접는다. 기도는 입술에만 머물지 않고 생활로 번진다.
사원 마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도 소란은 없었다. 서로 밀지 않았고, 앞서지 않았으며,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 질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사람처럼. 둥첸의 낮고 깊은 소리가 하늘을 울릴 때, 그것은 연주가 아니라 한 달 동안 축적된 숨의 합창처럼 들렸다.
싸가다와의 기도는 크지 않다. 다만 오래 쌓여, 한 번에 울린다. 이 달에 행한 작은 선행 하나가 평소보다 더 큰 울림으로 돌아온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래서 이 달의 기도는 간절하기보다 조심스럽고, 열정적이기보다 단정하다. 아내는 내 손을 잡은 채 조용히 말했다.
“이건 축제가 아니라… 약속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싸가다와는 부처님을 기념하는 달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약속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광장에 들어서니 둥첸이 "부~~~ 웅, 부~~~ 웅~~~" 하고길게 울렸다. 독수리 부리 같은 모자를 쓴 스님들이, 자신의 키보다 큰 관을 입에 대고 숨을 불어넣는다. 둥첸, ‘큰 관’이라는 뜻의 이 악기는 티베트를 상징하는 소리다. 주석과 놋쇠로 만든 관은 길게는 6미터가 넘는다. 소리는 낮고 깊어, 가슴이 아니라 뼈를 울린다. 곁에서 한 노스님이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이, 아이처럼 천진해 보였다.
이어 응아(대고), 까링(태평소를 닮은 관악기), 룰모(바라)가 합을 맞추자 가면을 쓴 이들이 등장해 덩실덩실 참(Cham)을 추기 시작했다. 금강무다. 악귀를 몰아내는 춤. 불교와 샤머니즘이 겹쳐진 이 가면극은 화려하면서도 엄숙했다. 우리는 바닥에 앉아 잠시, 말 없는 공부를 했다.
광장의 축제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우리는 오늘 시가체로 떠나야 하므로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광장 뒤편으로 가니 흰 벽과 붉은 띠가 겹겹이 숨 쉬는 사원 단지가 나타났다. 펠코르 최데(Pelkhor Chöde)이다. 한마디로 말해 “서로 다른 길들이 한 지붕 아래서 공존하는 티베트 불교의 드문 장소”다. 사원 하나가 아니라, 사원·불탑·승원들이 어깨를 맞댄 하나의 수행 세계이다.
간체의 펠리코 최데는 15세기에 세원진 대규모 사원 복합체로 '위대한 법이 순환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겔룩파, 사캬파, 카큐파 등 서로 다른 세 불교의 종파가 한 사원 안에서 동시에 수행해 온 유일한 장소다. 이는 티베트 불교 역사에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쿰붐 초르덴은 높이 35미터, 9층 구조의 불탑이다. 내부에는 108개의 방, 10만 기의 불상이 있다. 그래서 ‘쿰붐(십 만탑)’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경전을 한 번 독송하면, 다른 곳에서 천 번을 읽은 공덕과 같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사람들은 흰 카타를 바치고, 풍경 소리를 기다린다. 그 소리를 한 번만 들어도 짐승이 인간으로 환생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믿음은 증명보다 오래 산다.
푸른 창공 아래 금빛 탑 앞에 서니, 저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하늘에서 내려온 건축물처럼 보였다. 구름 한 조각이 탑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례자들은 탑을 돌며 “옴 마니 반메 훔”을 쉼 없이 읊는다. 아내와 나는 탑 앞에서 말없이 합장했다. 말은 필요 없었다.
탑 옆 쭉라캉 대법당은 스님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에는 창건 당시의 불화가 남아 있었다. 사진은 금지. 대신 눈으로 오래 저장했다. 이 법당에는 겔룩파, 사카파, 까규파 법당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하고 있었다. 9대와 10대 판첸라마의 사진도 그곳에 있었다. 평화는 이렇게 조용히 존재한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쏟아졌다. 옥상까지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중절모를 쓴 노인들의 얼굴에는 계산 없는 미소가 있었다. 순진무구하다는 말이, 이때만큼 정확한 적이 있었을까. 여기서는 옳고 그름 보다는 각자의 길을 존중하는 침묵이 먼저 흐른다.
싸가다와가 되면 펠코르 최데는 사원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심장이 된다. 광장은 순레자로 가득 차고, 둥첸 소리가 하늘을 흔들며, 참(Cham) 가면무가 악귀를 몰아낸다. 펠코르 최데는 무엇을 믿느냐를 묻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사원이다.
밖으로 나온 아내는 다시 한번 사원을 돌아보고 싶다고 했다. 아마 큰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 마다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사원으로 들어갔다. 사원에 들어서자 아내는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탑도, 사람도 아닌 하늘을 먼저 올려다보았다. 펠코르 최데의 마당은 생각보다 넓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지만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이상하네요."
아내는 내게 속삭였다.
"이렇게 많은데... 하나도 시끄럽지 않아요."
사람들은 말 대신 움직임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밀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앞사람의 속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내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광장에서 둥첸 소리가 "부~~~ 웅~~~" 하고 길게 울릴 때 아내는 반사적으로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그 소리는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니라 몸 안에서 일어나는 진동 같다고 했다.
"저 소리... 아픈 데를 피해 가지 않아요. 치유의 소리처럼 들어와요."
아내는 눈을 감고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그 소리가 자신의 몸 어딘가를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쿰붐 초르텐 앞에 섰을 때, 아내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홉 층의 탑, 셀 수없이 많은 불상들보다 아내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탑을 도는 사람들의 속도였다. 누구도 빠르지 않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았다. 각자의 사정이 그 속도 안에서 조용히 허락되고 있었다.
아내는 탑을 돌며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옴 마니 반메훔"을 염송 했다.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기도가 몸 안쪽에서 훨씬 더 또렷하다는 것을. 대법당에 들어가 벽화를 오래 바라본 뒤 아내는 사진을 찍지 못하는 곳이 오히려 좋다고 했다.
"여긴... 기억으로만 남겨야 할 것 같아요."
밖으로 나왔을 때 햇살이 쏟아지고 깃봉에 매달린 카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내는 그 앞에서 말없이 합장을 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여기 오고 싶어요."
그날 펠코르 최데는 아내에게 병이 낫는 곳이 아니라 견뎌도 되는 곳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깡파와의 약속은 수행처럼 지켜야 한다. 카타와 타르초를 겹겹이 단 깃봉이 하늘로 솟아 있었다. 수많은 소원과 축복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린다. 우리는 다시 합장하고, "부웅~~~ 부응~~~ " 둥첸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는 쿰붐 초르덴을 뒤로했다. 덜컹거리는 깡파의 지프가 시가체를 향해 출발했다.
간체는 그렇게—바람의 성으로,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