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빙하가 다 사라져 버린다면?

— 사라져 가는 카롤라 빙하 순례

by 찰라


낭가체를 떠나 간체 방향으로 호수를 따라 달렸다. 여행자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작은 마을을 벗어나자, 풀 한 포기 없는 갈색 산허리 위로 만년설을 인 봉우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눈은 고요했으되, 녹고 있었다. 산은 말이 없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차는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흙먼지가 일었고, 야크와 양 떼가 메마른 들판에서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깡파는 기분이 좋은지 휘파람을 불며 운전했다. 그 여유가 길을 잠시 순하게 만들었다. 반시간쯤 지나자, 하늘을 찌를 듯한 설산들이 솟아올랐다.


“히어, 노진 깡짱.”



깡파가 가리킨 가장 높은 봉우리는 노진 캉창산(7,191m)이었다. 그 곁에는 장상 라모산(6,324m)을 비롯한 5~6천 미터급 봉우리들이 하늘을 막아서 있었다. 그 아래, 거대한 카롤라 빙하가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 덮인 봉우리는 늘 호수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지켜보되 지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산은 분노한 신들이 쉬어가는 자리로 불려 왔다. 티베트인들에게는 이 산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분노와 질병, 재앙을 잠재우는 남성 수호신의 화신이다. 얌드록초의 변덕스러운 물빛과 폭풍이 이 산의 품으로 흘러들어와 눈과 바람 속에서 잠잠해진다고 믿는다.


산 아래서 바라보면, 봉우리는 창처럼 곧고 날카롭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그 창은 찌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받치기 위한 기둥처럼 보인다.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자기 안에서 견디는 자세, 그것이 이 산의 가르침이다. 순례자는 이 산 앞에서 소원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지킬 힘을 주소서."라고 속삭인다. 얌드록초 호수가 감정이라면, 노진 캉창산은 절제다. 그래서 나는 내 분노가 쉴 자리를 찾을 때 이 산을 떠올린다. 높아서가 아니라 끝까지 버텨 서 있기 때문이다.



깡파는 차를 세워 우리에게 빙하의 장관을 보여주었다. 구름과 설산의 경계가 흐려져,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산인지 알 수 없었다. 숨은 턱턱 막혔지만, 눈은 떼 지지 않았다. 이 높이에서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못했다. 생명은 오직 얼음의 시간에 의존하고 있었다.


깡패의 말에 의하면 전에는 빙하가 길 가까운 데까지 닿아 있었다고 했다. 단지 사진 속에서 보던 빙하가 아니라 가까이서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의 빙하였다. 빙하는 말이 없었다. 다만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신의 산 노진 캉창산의 몸에서 흘러내린 얼음이다. 티베트인들은 이 산을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한다. 그래서 빙하는 풍경이 아니라 혈관이다. 수천 해 동안 바람과 햇빛이 새긴 주름이 얼음 위에 남아 있고, 그 주름 사이로 시간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흐른다.


"숨이 차요!"


차에서 내린 아내가 바람을 등지며 말했다. 고원의 바람이 가슴을 친다. 숨은 짧아지고, 생각은 길어진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는다. 서두를수록 숨이 먼저 항복하기 때문이다. 빙하 아래에는 작은 물길이 시작된다. 얼음이 녹은 물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


서서히 녹아 흐르는 얼음은 곧 호수가 되고, 다시 초원으로 스며들어 얌드록초 호수로 이어진다. 티베트인들이 이 호수를 여신의 심장이라 부르는 이유를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심장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온몸에 생명을 보낸다. 이 물 역시 그렇다.


고개 주변에는 작은 초르텐과 곰파가 있다. 바람에 해진 오색 기도깃발이 하늘에 묶여있고, 순례자들은 말없이 마니차를 돌린다. 그러나 이 고원에서는 오래 머무는 것이 수행이 아니라, 바르게 지나가는 것이 수행이다. 빙하는 가르치지 않는다. 비유도 교리도 없다. 다만 스스로의 속도로만 움직인다.


그 빙하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가까이서 보면 두렵고, 멀리서 보면 장엄하며, 결국엔 지나가야만 하는 고개, 붙잡을수록 숨이 가빠지고, 내려놓을수록 길이 열린다. 카롤라 빙하에서의 순례는 보는 여행이 아니다. 사라지는 연습이다. 욕심 하나, 생각 하나, 조급함 하나를 얼음 앞에 두고 떠나는 연습이다.


티베트 고원의 빙하는 아시아의 급수탑이다. 인더스강, 갠지스강, 메콩강, 양쯔강, 황하—수십억의 삶을 적시는 강들이 이곳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기온이 오르며 눈과 얼음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빙하호수 범람의 위험과, 장기적 수자원 고갈이라는 이중의 위협이 동시에 다가온다.


한때는 영원처럼 보였을 얼음은 이제 가장자리부터 무너지고 있다. 햇볕은 강했고, 공기는 건조했으며, 추위보다 먼저 불안이 다가왔다. UN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보고서는 히말라야 빙하가 2035년 이전에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빙하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겨울에 눈이 얼어 빙하가 되고 여름에 천천히 녹아서 대지와 인간에게 생명의 물을 공급해 주는 것이 빙하다. 그러나 빙하가 사라지면 대지는 점점 사막화가 될 것이고, 생태계는 존재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빙하 아래에는 오래된 초르텐이 서 있다. 그 꼭대기와 기둥 사이에 매달린 타르쵸가 바람에 흔들리며 세월을 말해 주고 있었다. 빙하가 사라지는 날, 이 깃발도 함께 사라질까? 초르텐 옆에는 간이음식점이 있고, 야크똥을 말린 연료가 널려 있다. 빈 병들이 바람에 굴러다녔다.


이 깊은 오지에도 인간의 흔적은 남는다—좋은 것만은 아니다. 히말라야를 수차례 걸었던 고(故) 박완서 작가는 오염되어 가는 산을 보며 이를 ‘모독’이라 불렀다. 신성한 자연을 더럽히는 행위는 결국 우리 자신을 해치는 일이라는 뜻이다. 자연을 모독한 만큼, 인간은 그 대가를 치른다.


우리는 빙하를 떠나 낭추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낭추(浪曲, Lang Chu)는 말 그대로 굽이치며 흐르는 강으로, 물과 바람이 얌드록초로 흘러들기 전, 마음을 정리하는 통로이다. 때문에 낭추계곡의 의미는 연결에 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계곡을 지나 얌드록초로 흘러가듯, 분주했던 사람의 마음도 이곳을 통과하면 조금은 순해진다.


옥빛 호수는 말이 없고, 대신 빛으로 대답했다. 빙하가 오래 품었다가 놓아준 물, 그 물이 계곡의 주름을 따라 천천히 흘러와 여기 멈춰 서 있었다. 물빛은 푸르고, 푸른데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된 위로처럼 깊고 고요했다.


우리는 그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정복의 제스처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세였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듯, 하늘과 산과 물을 향해 몸을 열었다. 숨은 짧아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넓어졌다. 고원은 늘 이렇게 사람을 단순하게 만든다. 불필요한 생각부터 먼저 내려놓게 한다.



룽다와 기도깃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다섯 가지 색은 오행처럼 흩어지고, 흩어지면서도 다시 하나의 흐름이 된다. 그 천 조각들은 누군가의 소원이고, 누군가의 병고이며, 누군가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바람은 그 사연을 읽지 않는다. 다만 공평하게 실어 나를 뿐이다. 그래서 더 믿음직하다.


기도는 여기서 말이 아니다. 묶고, 매달고, 바람에 맡기는 행위 그 자체다. 이 계곡에서 세월은 연대기로 기록되지 않는다. 햇수 대신 색이 바래고, 글자 대신 매듭이 닳아간다. 그렇게 시간은 눈에 보이게 늙는다. 사진을 찍는 순간, 나는 안다. 이 장면은 추억이 아니라 증언이라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 왔다는 증언, 그리고 잠시나마 세상과 화해했다는 증언. 고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많은 것을 건네주었다.


순례자의 시선에서 보면 낭추계곡은 목적지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여정에서 오래 남는 장면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기서는 풍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속도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낭추계곡은 내게 속삭였다. "서두르지 말 것. 모든 물은 결국 호수에 닿는다. 그러니 지금은 흘러도 괜찮다. 그런데... 우리의 깡파는 거침없이 달렸고, 나는 외쳤다.


“깡파, 슬로! 슬로!”


그는 막무가내였다. 고원에서 속도는 때로 운명이 된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좁은 호수 앞에서 차가 섰다. 옥(玉)처럼 영롱한 인공호수였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댐으로 만든 호수라 했다. 황갈색 계곡과 대비되어, 물은 루비처럼 빛났다.


얌드록초 호수를 돌고 돌아, 우리는 마침내 거대한 쿰붐 사원이 있는 간체에 도착했다. 푸른 호수에서 시작된 여정은, 녹아내리는 얼음 앞에서 질문으로 끝났다. 이러다 정말, 히말라야의 빙하가 다 녹아버리는 건 아닐까.

고원은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풍경으로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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