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신들의 안식처,
얌드록초 호수

- 티베트 고원의 푸른 심장, 얌드록초 호수 순례기

by 찰라


라싸를 출발하여 두 시간이 조금 지났을까. 평지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자동차는 어느 순간 숨을 고르듯 속도를 낮추며 가파른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언덕을 향해 오르는 길목에 작은 다리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앞에 티베트 전통 복장을 한 여인 경비원이 서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쇠줄을 걸어 다리를 막아섰다. 더는 갈 수 없다는 손짓이 단호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녀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어젯밤 눈이 많이 내려 길이 얼어붙었고, 지금 이 고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 설명은 길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고원에서는 자연이 먼저 결정하고, 인간은 그 결정을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는 그 쇠줄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여행의 일정이 아니라, 자연의 판단 앞에 서 있는 존재가 된 순간이었다.


빙판길을 슬금슬금 이어가는 고물 렌터카


그러나 깡파는 이 길을 택하지 않으면 얌드록초 호수로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선택지는 없었다. 깡파는 다리 앞에 선 여인과 티베트 말로 한참을 주고받았다. 말은 짧고 낮았지만, 그 사이에는 이 고원을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는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길을 아는 자의 고집이었고, 위험을 감수해 본 자의 침착함이었다.


얼마나 설득을 했을까. 여인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마침내 쇠줄을 풀어 다리를 열어 주었다. 그 순간 우리 일행은 동시에 숨을 내쉬었다. 휴—안도의 박수, 격려의 갈채가 깡파를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그 박수는 곧 성급한 축하였음이 드러났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고갯길은 눈이 눌어붙은 빙판 그대로였다. 길은 길이 아니라 미끄러운 의지의 시험대였다. 바퀴가 한 번만 헛돌아도, 차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질 판국이었다. 그 아래에는 어떤 구조도, 어떤 변명도 없었다. 단번에 콩가루가 되어 사라질 높이였다.


그런데도 깡파는 핸들을 움켜쥐고 기어가듯 차를 몰았다. 서두르지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았다. 급할수록 천천히—그는 그 법칙을 몸으로 알고 있었다. 평생 이런 길을 오르내리며 익힌 감각이, 그날 그의 손끝에서 조용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오금이 저려왔고, 심장은 괜히 방광을 자극했다. 농담으로 넘길 여유조차 사라진 자리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작음을 정확히 자각하게 된다. 그날 우리는 깨달았다. 이 고원에서 길을 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며, 사람은 다만 허락받은 만큼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해발 4,000미터, 얼어붙은 길은 가본 자만이 아는 감각이 있다. 숨은 짧아지고, 생각은 느려지며, 판단은 자연에게 넘어간다. 자동차조차 그 사실을 아는 듯했다. 엔진은 잔뜩 겁을 먹은 짐승처럼 낮은 소리를 내며, 슬금슬금 기어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식은땀으로 등을 적시고 있었는데, 정작 운전석의 깡파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핸들은 그의 손 안에서 가볍게 좌우로 움직였다. 위급할수록 여유를 찾아야 한다—말로만 듣던 문장을 그는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깡파는 참 대단한 친구야.”
“그러게 말이에요. 우리는 저 아래 절벽을 바라보기도 힘든데…”
“어휴, 간이 콩알만 해지는데요.”


말은 농담이었지만, 웃음은 붙지 않았다. 고개 아래로 스치듯 보이는 절벽은 말이 없었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었다. 우리는 그날 두 번 놀랐다. 처음에는 위험한 빙판길에 놀랐고, 두 번째는 그 길을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깡파의 운전 솜씨에 놀랐다.


그리고 마침내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때—세상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파란 호수가, 마치 누군가 커다란 푸른 휘장을 한 번에 걷어 올린 듯, 눈앞에 펼쳐졌다. 말로만 듣던 얌드록초 호수였다. 라싸에서 254킬로미터, 산자락 사이사이를 휘감고 도는 물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색은 물이 아니라 터키석 그 자체였다.


“히어, 깜바라! 깜바라! 데어, 깡창! 깡창!”


깡파는 아이처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올라온 이 고개가 캄바라(Kamba la, 4,794m) 고개이고,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이 노진 캉창산(7,191m)이라는 설명이었다. 그의 이름과 비슷한 발음의 지명들이 왠지 모르게 정겹게 들려, 나는 속으로 혼자 웃음을 삼켰다. 우리는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느라 이미 숨이 바닥이었고, 그래서 더더욱—갑자기 나타난 비취색 호수 앞에서 말문을 잃었다.


“우와… 이건 정말 터키석 같아요.”
“호수 전체가 푸른 보석이네요.”

"옴 마니 반메훔."



나는 푸른 호수를 향하여 합장을 했다. 위험한 만큼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우리는 방금 지나온 빙판길도, 절벽도, 식은땀도 모두 잊어버린 채 그 풍경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푸른 보석처럼 빛나는 호수 뒤로는 만년설을 머리에 인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솟아 있었다. 하늘에는 흰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호수의 빛깔만은 요지부동—마치 누군가가 물감을 한 번에 쏟아부어 놓은 듯했다.


캄바라 고개에는 돌탑이 층층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 룽다와 타르쵸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기도는 소리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그 깃발들이 먼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날 나는 배웠다. 고원에서는 길이 사람을 시험하고, 정상에서는 아름다움이 모든 공포를 잠시 용서해 준다는 것을.


얌드록쵸 호수는 해발 4,488미터, 고원의 숨이 가장 푸르게 고이는 곳에 자리한 호수다. 얌드록초 호수는 남쵸, 마나사로바와 함께 티베트가 생명처럼 품어온 3대 신성한 호수 가운데 하나로, 티베트인들은 이 물을 두고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라 부른다. 분노라기보다는, 인간의 욕심과 경솔함을 단호히 밀어내는 엄정한 고요에 가까운 이름이다.


얌드록초를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라는 불리는 데에는 티베트 고원의 신화와 숨결이 함께 얽혀있다. 먼저, 호수의 색과 표정이다. 얌드록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꾼다. 에메랄드 빛으로 웃다가 납빛으로 가라앉고, 갑자기 검푸른 분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급격한 변화는 고원에서 신들의 감정으로 읽혔다.


둘째는 폭퐁의기억이다. 바람은 이 호수에서 쉬지 않는다. 순식간에 몰아치는 돌풍, 맑던 수면을 갈라놓는 먹구름. 그래서 티베트인들은 "신들이 분노를 풀지 못할 때 이곳에서 쉬어간다."라고 말한다. 셋째는 금기와 전통이다. 얌드록초 물을 함부로 퍼가거나, 호수를 훼손하는 일은 오래도록 금기였다. 이 호수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생명과 운명을 품은 신성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형의 상징성이다. 얌드록초 호수는 여러 갈래의 만과 물줄기로 찢어진, 마치 거대한 용이 몸을 틀어 누운 형상이다. 용은 힘과 분노, 그리고 보호의 상징이다. 분노한 신이 머물러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스스로를 감싸 안는 형상이다. 그래서 안식처라고 한다. 호수는 분노조차 쉴 곳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준다. 사람도, 신도, 분노도 잠시 내려놓을 자리가 있어야 다시 맑아진다.



"나는 무엇을 쉬게 하러 왔는가?"


호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얌드록초 호수에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분노를 내려놓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얌드록초는 전갈의 형상을 닮았다. 꼬리를 말아 고원을 감싸 안은 모습은 위협이 아니라 경계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호수를 ‘전갈 호수’라 부르며, 쉽게 다가서지 않고 먼저 마음을 낮춘다.


티베트인들은 말한다. 얌드록초 호수가 마르면, 티베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말은 신화이면서 동시에 생태의 언어다. 고원의 물은 곧 땅의 숨이고, 나라의 맥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캄바라 고개에서 넋을 잃고 호수를 바라보다가, 가파른 언덕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다행히 내리막은 남향이라 눈이 많지 않았다. 긴장이 풀리자, 길 위의 풍경도 다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때 깡파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카메라를 든 흉내를 내며 말했다.


“포토! 포토 타임!”

“깡파, 땡큐!”


깡파는 늘 무뚝뚝해 보였지만, 그날은 유난히 여유로웠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우리도 서두를 수 없었다. 호수라 해도 여기는 해발 4,500미터, 빨리 걷는다는 발상 자체가 사치였다. 우리는 모래톱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닐며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제 속도를 되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미스터 초이, 고우 고우!”


깡파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호수를 돌아보았다. 얌드록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서두르지 말 것. 아름다움 앞에서는, 먼저 숨을 고를 것. 깡파는 호수 앞에 멈춰 선 우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현실로 돌아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이제 가야 한다는 신호였다.


우리는 다시 고물 차에 몸을 싣고 얌드록초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남북으로 130킬로미터, 동서로 70킬로미터. 이 거대한 호수는 한눈에 허락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보려는 마음을 접고, 다만 따라가야만 했다. 물은 산자락을 감싸 안으며 끝없이 이어졌고, 차창 밖으로는 푸른 수면이 천천히 미끄러졌다.


얼마쯤 달렸을까. 호수는 늪지로 바뀌었고, 늪지 옆에는 야크와 양 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고원에서는 빠름이 미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불필요한 속도가 하나씩 내려앉았다. 늪지를 지나던 중, 오른쪽으로 갑자기 작은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약 4,500미터, 낭가체였다.


얌드록초 호수 고원속의 마을 낭가체


여행자들이 간체로 가는 길에 잠시 숨을 고르는 곳. 순례자의 시간에서는 쉼표처럼 놓인 마을이다. 여행자의 마음속에는 '잠시 내려놓는 곳으로 기억된다. 차에서 내려 몸을 펴니, 바람이 묻는다. "이제 괜찮겠느냐?"라고. 고원의 마을답게 마을은 소박했다. 기념품 가게 몇 곳,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허기를 달래줄 간이식당들이 바람처럼 흩어져 있었다. 삶은 여기서도 간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라싸 레스토랑’이라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 모모와 툭파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김이 오르는 국물 한 숟갈에 목을 타고 내려가자, 고원의 긴장도 함께 풀렸다. 야크차 한 잔까지 마시고 나니, 마음은 이미 절반쯤 낮아져 있었다.


느긋해진 표정으로 다시 차에 오르자, 깡파는 휘파람을 불며 핸들을 잡았다. 새벽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길 위에는 부드러운 오후의 리듬이 흐르기 시작했다. 같은 사람, 같은 차, 같은 길이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길은 다시 우리를 깨웠다. 낭가체를 떠나 간체 방향으로 호수를 따라 달리자, 풍경은 점점 더 메마르게 변했다. 풀 한 포기 없는 갈색 산허리 위로 만년설을 인 봉우리들이 드러났다. 그 눈은 고요했지만, 자세히 보니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곧 거대한 빙하가 하늘에 매달리듯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5,560미터, 카롤라 빙하였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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