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싸를 떠나며...

— 망명길에 올랐던 달라이 라마를 생각하며...

by 찰라



이제 라싸를 떠나야 할 시기가 온 듯했다. 머문다는 것은 머무름으로 끝나지 않는다. 떠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곳이 나를 통과해 갔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라싸에서 렌터카로 5일간 티베트 고원을 지나 네팔로 넘어가기로 했다. 비행기는 빠르지만, 순례자에게 빠름은 미덕이 아니다. 산은 걸어서 건너야 하고, 마음은 굽이굽이 돌아야 제자리를 찾는다.


우리는 바낙숄 호텔(Banak Shol Hotel)에 있는 FIT—티베트 관광국이 운영하는 중국국제여행사—를 찾아갔다. 뚱보 여직원은 비교적 친절했다. 처음엔 15일짜리 카일라스 산 성지순례를 상담했다. 그러나 아내의 건강을 생각하면 욕심이었다. 수행은 오래가야 하고, 사랑은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운전사가 달린 렌터카로 네팔로 넘어가는 4박 5일의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렌터카 순례코스는 이랬다.


2046E24A4F0BA13F2B.jpeg 렌터카로 라싸에서 네팔로 넘어가는 순례길 코스

라싸 → 얌드록초 호수 → 간체 → 시가체 → 사캬 → 롱푸사 →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초모랑마) → 팅그린 → 장무 → 코다리 → 네팔.


보통은 4~5명이 합승해 비용을 나눈다. 나는 야크호텔 게시판에 안내문을 붙였다. 연락처와 숙소 룸 넘버를 적고, 한글로 큼지막하게 써 두었다. '한국인 2명 확보'란 문장 하나에 마음이 놓였다. 길은 혼자보다 여럿이 안전하다.


기도는 통했다. 사진작가 S선생이 먼저 찾아왔고, 이어 Y 군, 대구의 H 선생이 합류했다. 독일인과 말레이시아인 두 명도 있었지만, 기간이 맞지 않았고, 인원이 많아지는 건 번거롭고 위험했다. 우리는 네 명으로 확정하고 5월 24일을 D-Day로 정했다. 허가서는 23일에 나온다고 했다.


23일, 다시 FIT 사무실. 뚱보 여직원은 웃으며 중국 공안국 여행허가서와 여권을 내밀었다. 잔금도 치렀다. 문제는 차량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라싸에서 가장 좋은 차”라며 안심시키고는, 다음 날 새벽 5시에 야크호텔 정문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고원 길에서는 자동차 상태가 곧 생명이다. 확인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미 물은 건넜다.


새벽 5시. 배낭을 메고 야크호텔을 나섰다. 라싸를 떠나려고 하니 불현듯 조국을 등지고 라싸를 떠나야 했던 달라이라마가 떠올랐다. 며칠간 머문 정든 라싸를 떠나려고 해도 마음이 허전하고 아픈데, 내 나라, 내 백성을 남겨두고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의 길을 떠났던 달라이라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달라이라마는 1959년 3월 17일 야밤에 라싸를 탈출하여 14일 동안 걸어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을 했다. 그의 저서 'My Land and My People'에 나온 내용을 간추려서 잠시 그때의 망명의 길을 따나야만 했던 달라이 라마의 심정을 잠시 살펴본다.




나는 그날 밤, 숨을 낮추고 발을 고르며 길에 올랐다. 라싸의 불빛은 이미 뒤로 물러났고, 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으로만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왕이 아니었다. 왕좌를 버린 사람의 두 발이었다. 나와 함께 걷는 이들은 적었다. 적을수록 안전했고, 조용할수록 살아남았다.


달은 밝았고, 밝음은 위험했다. 그래서 우리는 별빛만을 빌렸다. 나는 밤에 걷고 낮에 숨었다. 낮의 히말라야는 너무 크고, 밤의 히말라야는 그저 지나갈 만큼이었다. 숨이 가빠질 때마다 멈춰 섰다.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다음 한 걸음을 위한 준비였다.


고개를 넘을 때면 산소가 말라붙은 공기가 폐를 긁었다. 머리는 아팠고, 손끝은 저렸다. 그러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맑았다. 나는 더 이상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이 나를 가볍게 했다. 짐은 많지 않았다. 보리가루 한 주먹, 차 한 모금, 그리고 내려놓지 못한 책임 하나. 책임은 무거웠지만, 그 무게는 나를 똑바로 걷게 했다.


밤에는 잠들지 않았다. 그저 누워 눈을 감았을 뿐이다. 오두막이 있으면 감사했고, 없으면 별을 덮고 잤다. 불은 피우지 않았다. 연기는 흔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적 없이 남아야 했다. 날이 밝으면 다시 숨었다. 계곡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돌아갈 수 있는가? 대답은 늘 같았다. 돌아갈 자리는 이미 비웠다. 며칠이 지났는지 세지 않았다. 날짜를 세면 마음이 흔들렸다. 다만 하루의 길이만을 잰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침내 국경의 능선이 보였을 때, 나는 기쁨보다 고요를 느꼈다. 넘었다는 감각보다 비워졌다는 감각이 먼저였다. 그때서야 알았다. 이 길은 탈출이 아니라 돌아오지 않기로 한 서원이었다는 것을. 나는 산을 정복하지 않았다. 산이 나를 시험했고, 나는 시험을 통과했다. 통과의 기준은 단순했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미워하지 않는 것.


이제 나는 다른 땅에 선다. 그러나 이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몸은 국경을 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걷고 있다. 걷는 한, 나는 망명자가 아니라 순례자다. 그리고 오늘, 이 길을 글로 걷는 당신에게 말한다. 히말라야는 벽이 아니다. 사람이 낮아질 때, 산은 늘 길을 남긴다.


— 이 발걸음은 달라이라마의 것이었고, 동시에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참고자료 : Dalai Lama, My Land and My People, McGraw-Hill, 1962.






어둠속에 멀어져 가는 라싸


세월이 흘러, 나는 아픈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순례자가 되어 달라이라마가 떠났던 망명의 길 앞에 서 있다.

그 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을까. 지금처럼 차가 길을 대신해 주지 않던 시절, 그는 거의 두 발로 이 길을 건넜다.


나는 안다. 지프 한 대를 렌트해 이 길을 간다는 것조차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라싸에서 네팔까지, 지도 위로는 한 줄이지만 실제 거리는 1,200킬로미터에 이르는 험로다. 고원의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비포장 도로, 덜컹거리는 낡은 차량, 끝없이 흔들리는 차창 밖 풍경. 그 흔들림 속에서 아내의 숨을 먼저 살피고, 다음 커브를 조심해야 한다.


자동차로 가는 이 여정도 이토록 버거운데, 그는 이 길을 밤에는 걷고 낮에는 숨으며 사람의 속도로 통과했다.
그 사실이 이제야 몸으로 와닿는다. 나는 속도를 낼 수 없다. 아내의 고통이 나의 속도이고, 이 여정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길은 여행이 아니라 다시 한번 낮아지는 연습이 될 것이다.


망명의 길은 떠나는 사람의 용기를 시험하지만, 따라가는 사람에게는 남아 있는 것들을 돌보는 책임을 묻는다. 나는 그 질문을 품은 채 아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가 걸어서 넘었던 길을 나는 오늘, 사랑의 속도로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태우고 갈 자동차는 출발시간 1시간이 지나 6시가 넘어도 오지 않았다. 여행사에 전화도 할 수 없는 시간. 기다림은 고원의 공기처럼 얇았다. 6시가 훌쩍 지나서야 낡은 도요타 한 대가 멈춰 섰다. 야크무늬가 새겨진 낡은 모자를 쓴 기사가 내리더니 묻는다.


“미스터 초이?”


턱으로 차를 가리키며 타란다. 사과도, 설명도 없다. H 선생의 얼굴이 굳었다.


“당신, 우리 기사 맞나?”


대답은 없다. 그는 대답 대신 백미러로 우리를 힐끗 보더니 액셀을 밟았다. 그런 그를 보다 못해 H 선생이 운전면허를 요구했다. 확인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표정으로. 그제야 무뚝뚝하게 내민 면허증. 이름은 강파단증(强巴旦增). 우리가 계약한 자동차의 운전사가 맞았다.


“늦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분위기가 험해지자 내가 중간에 나섰다.


“어차피 늦었습니다. 그냥 갑시다. 미스터.”

부드럽게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지요?”


“깡파.”
“뭐, 깡패?”


우리는 발음을 오해하고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야크뿔이 그려진 중절모, 콧수염, 검은 선글라스—솔직히 말해 정말 ‘깡패’처럼 보이긴 했다. 웃음은 얼어붙은 공기를 녹였다. 내가 물었다. 그는 서투른 영어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소?”
“디스 모닝 라싸 컴.”


오늘 새벽에야 라싸에 도착했단다. 잠도 못 잤을 게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우리는 손짓 발짓으로 합의했다.


“미스터 깡파, 슬로, 슬로 드라이브.”
“오케이.”


렌터카 운전사 깡파. 그는 5일 동안 우리의 이동과 생명을 책임진 강한 운전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라싸를 출발했다. 포탈라궁이 점점 멀어졌다. 정이 들었던 도시였다. 라싸여, 안녕! 도시를 벗어나자 동이 터왔다. 해발 4,000미터를 넘는 길에서 낡은 도요타(계약당시 랜드로바가 도요타로 바뀌었다)는 털털거리며 얌드록초 호수를 향해 달렸다. 만년설 위로 구름이 휘감겼다 풀어졌다. 산은 늘 이런 식으로 마음을 시험한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이 길은 쉽지 않다는 것을. 4,000~5,000미터의 고도, 고산병, 낡은 차. 그러나 비행기로 에베레스트를 넘는 건 순례가 아니다. 걸어서 가지 못해도, 바퀴로라도 땅을 밟고 가고 싶었다. 하노이에서 라싸까지 걸어온 우리의 몸은 이미 선택을 끝냈다.


이것은 여행이 아니라, 목숨을 건 순례였다.
그리고 그날 새벽, 순례의 바퀴가—드디어—굴러가기 시작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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