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 에피소드05 -- 길기상님 편
이 인터뷰는 2014년 2월 지앤선 티스토리 블로그를 통해서 소개되었던 인터뷰를 다시 브런치에 재등록하는 글입니다. 개발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기획된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블리자드 코리아(=Blizzard Battle.net team)에서 근무하시는 길기상님이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보냈을 때 흔쾌히 응해주시며 "좋아하는 일로 꿈을 이루기…”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한편으론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너무 부끄러웠다. 그전까지는 그저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을 뿐 나는 명확한 주제를 정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길기상님은 오히려 나보다도 차분히 인터뷰를 이끌어주셨다.
인터뷰 당시에는 이직을 준비 중이셨고, 그 이후 뵈었을 때는 판교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 중이시라는 소식을 들었었다.
Q 우선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본인 소개부터 해주세요.
A 2007년 블리자드 코리아에 입사하였다. 미국 본사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본사에서 job offer가 와서 본사에서 3년간 일을 한 후, 현재는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서 Battle.net팀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DB 관련 업무를 주로 해왔다. 미국 본사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나 가족 문제 때문에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다들 가고 싶어 하는 미국에 안 가시려고 이직을 하신다니… 궁금했지만 이 질문을 뒤에…
Q 프로그래머가 된 계기랄까, 언제 프로그래머가 되야겠다 결심하게 되셨어요?
A 학생 12명이 다니는 분교가 있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강해서 이런저런 것들에 관심이 많다가 ebs 교육방송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고등학교까지도 컴퓨터를 만져본 적이 없었으나 대학 때 컴퓨터를 보면서 그동안 억눌렀던 호기심이 폭발한 듯한 느낌이었다. 대학은 집안 사정상 국립대학의 물리학과(장학금 때문에)에 가게 되었는데, 수업 외 시간에는 거의 전산과 실습실에서 생활을 했고 조교수님의 건유로 컴퓨터과학과로 전과를 하게 되었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컴퓨터와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좋아하는 과목은 과학이라서 과학은 열심히 했지만 좋아하지 않는 과목은 전혀 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만져본 적도 없어 심지어 자판을 노트에 그려서 해본 적도 있다. 전과하고 나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컴퓨터를 산 후, 눈뜨자마자 컴퓨터만 했다. 사실 어릴 때 꿈은 과학자였다.
대학 수업을 통해 컴퓨터에 대해 배웠고 연구실에서 밤새 선배들이랑 스터디 등을 했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많은 걸 다 하려고 하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윈도우 기반으로 시작을 했다. 그때부터 웹프로그래밍 쪽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db나 오라클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그쪽은 너무 어렵기도 했다. 3학년 때 병영 특례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마침 서울 쪽에서 웹프로그래머를 뽑는 곳이 있어서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태요’ 카페Taeyo’s .Net을 말씀하심에서 익히며 취업하고 병특을 받게 되었다. 웹(닷컴) 붐에 잘 편승했다고 생각한다.
Q 업계에 들어와서 가장 영향을 받은 개발자를 꼽으라고 하면 어떤 분을 꼽으시겠어요???
A 처음 업계에 들어왔을 때는 인적 네트워크가 전혀 없었다. 그 후 ‘태요’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그분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이직하면서 자바 관련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자바서비스넷에서 커뮤니티 활동을 했다. 그 커뮤니티에서 조금 더 깊이 있는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부족함을 느껴서 공부하게 되었다.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했다기보다는 많이 참조했다고 하는 편이 맞다고 말씀하셨다. 매번 내가 대답에서 혹 오해를 하게 될까 봐 부연설명을 꼭 해주시는 편이었다.
Q 블리자드 코리아에 입사하게 된 배경은???
A 후배 중에 한 명을 병특을 같이 하자고 서울로 데리고 왔는데, SI 프로젝트를 하다가 블리자드 코리아에 입사를 하였다. 그 후배가 미국 본사로 가면서 공석이 생기고 추천을 통해 입사하게 되었다. 사실 게임 회사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블리자드라는 회사에서 많은 지식을 깊게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입사를 결정하였다.
Q 본사로 가시기로 결정하면서 영어에 대한 걱정은 없으셨나요?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셨어요???
A 사실 미국으로 가면서 가장 두려웠던 점이었다. 먼저 간 후배가 영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의 깊이 중요하다고 조언을 해줬다. 글로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실 영어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회화가 전혀 되지를 않더라. 기초가 부족해서… 그래서 차라리 조금 쉽게 접근하자 싶어서 ‘한일’이라는 선생님이 쓰신 아주 쉬운 문법책을 가지고 공부하였다. 암기 방식이 아닌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 성인일수록 말하는 것보다는 많이 쓰고 많이 듣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걱정하니 “내가 당신을 뽑은 게 영어 때문이면 그냥 homeless를 뽑지 뭐 하러 너를 뽑았겠냐”라고 상사가 이야기해주었다.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하고 다음에 영어!!! '영어를 못해서...'라는 것은 어쩌면 노력하지 않는 자신에 대한 핑계 아닐까? 아이가 외국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정말 어려운 일이 많았다. 미국 생활은 가족과 같이 갔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아이들이 적응을 못하든가, 부인이 적응을 못하든가. 그런 문제로 퇴사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을 때 블리자드에서 아이들이 클 때까지 한국에서 근무하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우와~ 정말 좋은 회사다!!! 그만큼 길기상님이 붙잡고 싶은 직원이라는 뜻도 될 테고...
Q 해외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것과 한국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것의 차이점이나 장단점을 말씀해주세요.
A 한국의 엔지니어는 수동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일정이나 진행방식 등에 대한 개발자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미국은 프로듀서가 항상 개발자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실제적으로 미국은 야근이 거의 없고 한다고 해도 야근수당을 받기 때문에 모든 프로세스가 야근을 하게끔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SI는 갑을병정이 있고 개발자는 항상 병정에 해당하는 하도급이 있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는 환경으로 야근은 필수적이다. 미국과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기가 너무 쉽지 않다. 그래도 굳이 한국에서 일하는 게 좋은 점을 꼽자면, 한국은 기술에 대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가능하다. 해외는 회사 내의 커뮤니티는 활발하지만 다른 회사와의 커뮤니티가 너무 어렵다. 세미나가 많이 있긴 하지만 지역적인 문제-하루 이상이 걸리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다. 땅덩어리가 넓으니 이런 문제가 있구나...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신 이유는 아이 문제 때문이었나요???
A 가족문제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가족이 해외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일을 하는 것도 행복하려고 하는 것인데, 가족과 떨어져서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한국에도 점점 개발자의 환경을 고민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작은 회사지만 복지나 기본 마인드가 좋은 회사들이 많아져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물론 교육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그런 면에서 미국이 좋지만, 학교 가기 전까지의 아이들의 보호나 관리가 한국 정서와 다르게 독립적으로 키우다 보니 한국 스타일로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대해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다. 미취학 아동의 어린이집 비용은 (어릴 때일수록) 상당히 비싼 편이었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면(스스로 작은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때), 다시 미국으로 갈 생각이 있다. 일단 한국에서 노력해보려고 한다. 사회 환경이 어떻든 행복한 개발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시라고 말씀하셨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해외에서 개발자로 지내는 것도 말씀하신 대로 '행복'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역시 모든 것들은 스스로 겪어보기 전엔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Q 개발자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A 한국에서 SI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일정을 못 맞추는, 아니 맞출 수 없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서 내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 너무 힘들다. 이런 개발 환경에서는 일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개발자로의 수명을 연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Q 함께 일하기 싫은 프로그래머가 있나요???
A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프로그래머!!! 컴퓨터와 대화(혼잣말로)를 하면서, 사람과는 대화가 안 되는 분들이 있더라. 그런 분들과 일할 때는 힘들었다. 프로젝트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팀워크인데, 팀워크가 안 되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다. 사실 컴퓨터를 하게 되면서부터 눈 뜨고 감을 때까지 컴퓨터만 했던 적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사람과의 대화가 없어지더라.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만 그런 개발자가 존재하는 듯하다. 외국은 개인적인 이야기는 안 나누지만, 회사 내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많다.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해야 프로젝트가 잘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은 의사소통을 할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저 지시한 대로 맞추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정말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인터뷰를 통해 여러 분들이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개발자와 일하기 힘들다고 하신 걸 보면, 아직 한국에는 그런 개발자들이 많은가 보다. 내 주위에는 한 분도 없는데...
Q 직원을 뽑기 위해 인터뷰어로도 많이 활동하셨을 텐데,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또 그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시나요???
A 미국에서도 한국 지원자들을 인터뷰해본 적이 있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열정'이다. 얼마나 그 일이나 분야에 대한 열정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냥 단순한 업무적 지식 외에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공부하거나 깊이 있게 파고드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나의 지식을 남들과 공유해서 의견 교환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열정이 필요하다. 내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남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생각도 중요하게 본다. 지금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면을 개선해나가려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를 좀 여러 번 길게 하는 편이다. 미국의 경우 : 서류접수 —> 숙제(이틀 정도) —> 방문 인터뷰를 통한 코딩 테스트 —> 인성 인터뷰. 한국의 경우: 전화 인터뷰 —> 방문 인터뷰 —> 상급자 인터뷰의 식으로 진행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지식보다는 경험 위주의 질문을 하고, 족적이 남을만한 것들을 물어본다.
Q 이 일(직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미국에서는 게임 런치 하는 날 샴페인을 터트리거나 비어타임을 갖는다. 한국은 회사 안에서 음주를 하면 퇴사의 사유가 되는 곳이 많다고 하셨다. 이해가 될 듯 안 될 듯하다. 한국에서는 해외보다 만취자들을 많이 본 경험으로^^;;;; 개발자들이 팬한테 사인을 해주는 행사도 있다. 블리자드의 모든 게임은 개발자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아블로 프로젝트 후 담당한 개발 부분에 내 이름이 들어갔을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그 무엇을 느끼게 해줬다. 한국에 있을 때도 웹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공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보람이 있었다. 특히 사용자들의 좋은 피드백을 받았을 때 성취감을 더 느낀다. 또한 내가 개발한 시스템이 사용자들의 편이에 도움이 될 수 때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개발자로 일하면서의 매력은 그 무엇보다 성취감인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성취감은 중독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개발자로서 사회생활(회사 생활)에 대한 조언을 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A 사회적이란 것 자체가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많은 커뮤니케이션이나 인맥 네트워크를 위한 활동도 필요하다고 본다. 의지를 가지고 많이 찾아다니고 참여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이런 노력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더욱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온오프믹스를 통해서 진행되는 여러 모임에 가능하다면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하셨다. 스펙을 쌓는다는 것이 자격증이나 영어공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다양한 경험이나 인성을 나타낼 수 있는 블로그나 SNS 활동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OCP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최고로 인정받지만 한국에서는 조금만 공부하면 딸 수 있는 자격증이더라.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딱히 필요한 자격증이 아니라고 보는데, 특별히 필요성을 못 느끼면서도 한국에서는 자격증을 따려고 한다. 그것보다는 나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 토익 시험을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다. 하긴 토익 점수가 없으면 졸업이 안 되는 학교도 많으니... 정작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거의 인정도 안 해주는 시험인데...
Q 요즘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프로그래머에게 정말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한 것일까요???
A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만 할 것이라면 사실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란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학문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 프로젝트에 대해서 개발자가 기술적인 것 외에 의견을 함께 하고 싶다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Q 사용자나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10가지 기능을 요구하는 서비스에서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최우선 순위를 생각해서 진행하면 조금은 유동적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발자가 조금 더 능동적으로 생각한다면 일정 조정에서도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사용자를 조금 더 생각하자면 10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구축하기보다는 중요한 5가지를 더 완벽하게 구축하고 나머지를 업데이트를 통해서 추가하면 되고 그 부분은 지시한 사람과도 타협이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어진 기능을 그냥 구현하려고 하기보다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왜 이걸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면 어떨까? 내가 고객이 되어보기도 해야 한다.
Q 프로그래머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으세요???
A 프로그래머 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6개월 정도 프로그래밍 강의를 해 본 적이 있는데, 어쨌든 그것도 관련 분야였다. 만약 전혀 다른 분야를 선택했다면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믈리에를 했으면 잘하지 않았을까 막연히 생각한다. 오~~ 저 소믈리에 자격증도 있어요.라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너무 진지하셔서~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은 상상은 잘 하지 않는다. 나중에 취미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직업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 있으면서 골프를 쳤었는데, 재미있더라. 퇴직하고 나면 골프는 계속하고 싶다.
Q 취미가 있으신가요???
A 딱히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 간단한 운동이라고 해야 하나? 미국에서는 골프를 했는데. 최근에는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세바시의 정진호 님의 강연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 아이들하고 놀 때 그림 그리는 것이 좋더라. 그림을 그림으로써 우뇌를 이용해서 상상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취미인데도 과학적으로 접근하신다^^
Q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재충전은 어떻게 하시나요???
A 오래 앉아서 하다 보니 어깨나 목이 많이 뭉치기 때문에, 스포츠 마사지나 찜질방의 사우나 등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운동을 좋아해서 미국에서는 많이 했는데 한국에서는 헬스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하고는 있지만 재미는 없다.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일정에 대한 중압감이 생기기는 한다. 스트레스라기보다는 긴장 상태가 지속된다고 봐야겠다.
Q 최근에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어떤 것이 있으세요???
A 그림 그리기!!! 강좌도 들어보고 책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 찾아보고 있다. 한국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자기 실천 과제를 찾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림이다. 이건 정말 나 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재주가 있으신가 보다. 아~ 그리신 그림 하나라도 보여달라고 할걸... 그 생각을 못했네~
Q 최근에 가장 짜릿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A 세바시를 최근에 알게 되고 관심을 갖다가 ‘나머지 45분’이라는 팟캐스트를 알게 되었다. 그걸 들으면서 정진호 님 외 여러 분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세바시는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45분'이라는 팟캐스트는 처음 들었다. 인터뷰 후 찾아서 들어봤는데, 세바시의 15분 동안 이야기한 내용 등에 대해 나머지 45분 동안 이야기한다는 개념의 팟캐스트였는데 재미있었다. 자주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동영상을 통해서 세바시도 많이 접하려고 하고 있다.
Q 본인 스스로 어떤 개발자라고 생각하시나요???
A 지금은 좀 모르겠는데, 앞으로는 행복한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것들을 위해 노력하는 개발자!!! 행복한 개발자가 되고 싶은 개발자!!! 결국은 나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나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남들에게도 나의 경험을 나눠주는, 강연이나 책으로 전해줄 수 있는 그런 개발자가 되고 싶다. 살다 보면 행복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런 과정에 있다.
Q 후배 개발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A 솔직히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단 하나, 늦게 시작했지만 간절함이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일단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정말 간절함이 있는가???’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맞다면, 힘들 때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처음 올라와서 고시원 작은 방에서 후배(미국 본사로 가면서 나를 블리자드에 추천한)랑 둘이 생활하였다. 생활적으로도 힘들었고, 예전에 일할 때는 야근이 잦았고 집에 못 들어간 날도 많았다. 그렇지만 꿈을 이루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보니 그런 과정들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이거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없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경험해보고 찾으려고 해보는 것이 학생 때는 더 중요한 것 같다. 잘하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꼭 어릴 때부터 잘할 필요는 없다. 평생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초중급 개발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회사를 바꿀 수 있으면 바꾸려고 노력하면서(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이직을 해서라도) 한 분야에 대해서 깊게 팔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열정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때에 다른 분야에도 접근하는 방법을 대입시킬 수 있다. 수박 겉핥기 식 지식은 지금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오래갈 수 없다. 적어도 내가 그 분야에서는 ‘나만의 경험’ ‘나만의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야를 고르는 방법으로 미래의 기술 중에서 선택해서 깊게 파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매주 토요일 (빅데이터 분석) 스터디 참여 중이다. 빅데이터 분석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된 강의도 듣고 공부도 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은 앞으로 더욱 중요한 분야가 될 것이고,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믿고 그만큼 노력하려고 한다.
구글링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하고 그 상태에서 멈추지 말고, 문제의 원인을 이해하고 조금 더 깊이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노력이 중요한데 개발자들은 그럴 시간조차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개발자들이 여유가 없다고 하지만 모바일 게임이나 SNS를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그 시간이 어찌 보면 모두 여유시간이니 잘 활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씀해주셨다.
인터뷰 후 느낀 점…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머를 꿈꿔온 분들이 결국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개발자들을 부러워하곤 했었다. 무언가 타고난 천재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길기상님의 경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컴퓨터를 만져 본 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남들보다 조금 늦었을지 모르지만 본인의 꿈을 정한 후 확신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꿈을 이루신 분이었다. 그 노력이 있었기에 좋아하는 일로 꿈을 이룬다는 것은 열정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꿈을 꾸고 꿈을 이룬다는 것은 감히 아무도 나에게 ‘늦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 인터뷰였다. by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