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돈 좀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몇 년 만에 연락 온 제자의 연락. 무슨 일일까.
이희연. 희연이는 내가 삼성 드림클래스에서 만난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였다. 당시 희연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희연이는 집안에서 부모님과의 갈등이 많은 친구였다. 삼 남매의 장녀로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했는데, 부모님은 늘 희연이를 탓하거나 희연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우울증이 있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안에서 희연이는 외로워했고 상처 받았다. 집이 희연이에게는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상처 받으면서도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 가족에 대한 애정이 강해 늘 최선을 다하던 아이. 그 아이가 몇 년 만에 연락을 한 것이다.
집을 나왔다고 했다. 집을 나와서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돈이 문제가 아닌 듯했다. 위태로워 보였다. 그전에 들었던 희연이의 이야기들이 떠오르면서 희연이 곁에 누군가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어디서 지내냐 물으니 남자 친구 집에 있다고 했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스쳤다.
'희연아 일단 만나자. 쌤이 밥 해줄게.'
그리고 집으로 희연이를 초대했다. 사실 이건 희연이만을 위한 말이 아니었다. 난 희연이에게 돈이 아닌 사람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 영화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이다. 희연이의 인생 속에서 기억에 남는 이벤트를 만들어 주고 싶달까.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선생님을 따라 하고 싶었달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설렘으로 희연이를 초대했다.
집에 다른 사람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엄마를 어렵게 설득해, 희연이를 초대했다. 나는 무얼 만들어 인상적인 기억을 만들어줄까 고민했다. 희연이에게 먹고 싶은 것도 물어보고 메뉴를 결정했다. 그때 당시 맛있게 먹고 좋아하던 요리인 오야꼬동을 만들고 감바스를 하기로 정했다. 장을 보는 시간은 신이 났다. 그냥 너무 재밌었다. 내가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난 참 멋진 선생님이야.’ 싶은 생각으로 마음이 차올랐다.
희연이는 내가 해준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감바스는 처음 해봐서 마늘이 탔는데 탄대로 또 맛이 괜찮았다. 다행히 희연이도 맛있게 먹었다. 따뜻한 밥을 해서 먹이는 것이 내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희연이는 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계속 싸우다가 결국에는 너무 힘들어서 나왔다고 했다. 남자 친구는 매우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하고 밥을 먹고 나서 희연이는 우리 집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냥 그 순간도 나는 좋았다. 무언가 낭만적이었다.
희연이가 잠에서 깬 뒤에 나는 희연이를 지하철 역까지 배웅했다. 희연이에게 몸에 대한 당부부터 해서 이러저러한 당부를 하고 10만 원을 건넸다. 속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희연이를 힘껏 안아주며 힘들 때는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고, 쌤이 함께 할 거라고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희연이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희연이에게는 그 이후에 다행히 큰일은 생기지 않았다.
누군가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은 선천적인 선한 마음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닌 거 같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순수하지 못 한가 싶은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에는 이 또한 선행하는 마음의 한 모습인 거 같다. 백종원도 그랬다. 좋은 일을 한번 하니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주고 그게 기분이 좋아서 또 선행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더라는. 오로지 타인만을 위한 선행이 아닌 나를 위한 마음도 들어간 선행도 나쁘지는 않은 거 같다.
*이름은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