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덜 깬 태금이가 매일 아침 알람처럼 내뱉는 첫마디다. 26개월이 됐지만 잠투정이 심해 여전히 한방에서 잔다. 다행히 침대는 따로 쓰고 있다. 분리수면은 남편만 성공한 탓에 서재방에서 잔다 안방은 태금이와 엄마 차지다.
'아직 새벽이야...'
애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도 태금이는 단호하다. 6시 30분이면 아침이지. 그럼, 일어나야지 이제. 아기 침대의 가드를 내리고 태금이를 번쩍 들어 올린다. 매미처럼 엄마 몸에 착 붙어서 우유를 달라고 속삭인다. 그래 우유 먹자. 굿모닝이야.
두 돌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말이 트였다. 옹알이도 적었고 엄마아빠 말수도 적어 걱정이었는데 태금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어차피 육아는 걱정의 연속이고 그 걱정은 관에 들어가야 끝난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그걸 안다고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개월수가 늘어나는 만큼 그에 맞는 발달과업이 있고, 쫓아가지 못하면 안 된다는 불안이 있다. 건강만을 바라던 신생아 때는 미처 몰랐던 불안.
언어에 관한 걱정이 한창 컸을 때는 '어른들의 대화를 많이 들어야 한다'는 조언에 화가 나기도 했다. 친정 시댁도 멀고 주변에 친구들도 없는데 도대체 어떤 어른을 만나야 한다는 건가. 요즘말로 독박육아를 하다 보니 나야말로 어른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태금이를 유모차에 태워 돌아다니면서 동네 할머니들과 경비아저씨, 편의점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는 게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로 주차놀이를 하던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자리 업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자리가 없다고? 무슨 말이지? 알고 보니 주차 자리가 없다는 소리였다. 남편과 주차장에서 나누는 대화가 아이의 귀에 꽂혔던 모양이다. 자동차를 쭉 늘어놓고 노란 차를 가져와서 외친 거다. 여기 주차할 자리가 없다고. 확실히 대화를 통해 배우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구나 싶었다.
그날 이후 아이 앞에서 남편과의 대화를 의식적으로 늘렸다. 어차피 절대적인 시간을 늘릴 수는 없으니 있을 때라도 노력해 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고 배우는 것'의 효과가 크다면 자주 보여주는 수밖에. 평소에는 아이의 행동을 중계하면서 혼잣말을 하고 책 속의 언어를 자주 들려주었다. 점점 말을 듣고 따라 하려는 아이의 변화가 보였다. 그러다 아이가 뱉은 두 번째 문장.
'아빠 저리 가주세요~~'
엄마랑 놀 거니까 저리 가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저런 말을 자주 했던가? 기가 막힌 태금이의 말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어느덧 26개월이 된 태금이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재밌어요. 신나요. 무서워요. 싫어요. 이건 뭐예요. 저 사람은 누구예요. 어디 가는 거예요. 뭐 하는 거예요. 제한된 어휘로 표현하기 답답한지 온몸을 이용해 설명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아이는 더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거다. 어리둥절한 채 세상에 태어나 궁금한 것 투성이었을 거다. 이제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이해하게 됐고 세상과도 가까워졌으니 더더욱.
언어를 배우며 신나 하는 아이를 보면 신기하면서도 기특하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무기를 얻었으니 조금 더 용감하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겠지. 한편으로는 또 다른 불안이 고개를 든다. 말을 알아듣고 표현할 수 있으면 시작하게 된다는 훈육. 설득과 협박이 난무하는 새로운 육아가 시작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