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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lna Sep 13. 2022

특별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기

어린 시절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의사가 될 거야! 하기도 하고, 외교관이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야지! 했던 날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하니까.

나는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특별한 재능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내가 꿈꾸는 것은 미래의 어느 날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 인생은 가능성과 성취로만 가득 찬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뿐이었을까?

10대 시절의 나는 내가 특별하게 예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 지금으로선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

남들과 비슷한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카락이 그때는 얼마나 특별하게 여겨졌는지.

난 내가 조금 더 커 어른이 되면 걸어 다니기만 해도 시선을 끄는 사람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너무 예뻐서 너무 인기가 많으면 어떡하지?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해보았다.


그렇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을 언제나 ‘주인공’ 일 것이라고 믿었다.

어디서나 눈부신 성취를 이루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며, 그래서 늘 운명적인 사건에 휘말리는.

특별한 경험과 특별한 사랑을 하고, 어디서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주인공


말이 나온 김에, 내가 생각했던 미래의 나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멋진 패션센스와 외모를 가진,

쉬는 날엔 여가를 즐기고, 꼭 나만큼 멋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이었다.

세상 어둠이라고는 모르는 화사한 인생의 우아한 나 자신. (이쯤 되면 미드를 너무 많이 봤나 싶기도 하다.)



사실 ‘주인공보다는 ‘조연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나는 내가 수능에 좌절해 대입을 적당히 타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매일 열심히 일해도 텅장을 보며 한숨 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퇴근 후 탈탈 털린 정신으로 여가는커녕 설거지나 하면 다행이라는 것을,

솟아난 흰머리와 늘어진 뱃살을 보며 속상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만큼의 재능과 외모를 가진 사람은 지천에 널렸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인생이 흔하디 흔한 그 어떤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거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다는  어쩌면  삶이 특별하지 않고 평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 같다


나만은 특별하고 다를 것이라는 신뢰의 붕괴.

나도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고, 구질구질할 수 있으며, 내 인생에도 외롭거나 처량해지는 순간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사실.

어쩌면 따사한 햇빛과 꽃잎부는 날보다는, 눈비 쌓이는 날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인지.

그 깨달음이 어느 날 갑자기 훅 들어차서 내 현실감각을 건드렸다.

내 경우에는 나를 엄청 특별히도 생각했는지, 뼈저리게 길고 아픈 깨달음이었다.


조금 서글퍼졌다.

이렇게 평범하게 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했나 싶은 허무함

왜 내가 조연일지도 모른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하는 배신감

앞으로의 나도 별 볼 일 없이 지루하게 살고 있을 것 같은 아득함, 뭐 그런 마음들이 무섭게 몰려온다.


그런데 그렇다고 나마저 내 인생을 구석으로 밀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꿈꿨던 것과는 한참 다른 모습이더라도, 그래서 지겹고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어쨌든 완결까지는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면, 조금 달리 보이는 것도 있다.

따분하고 평범한 와중의 웃음과 재미, 우울하고 어두운 와중의 기쁨 같은 것들.

특별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가치 없다고 치부하기는 안타까운 것들이었다.



모든 인생들 사이의  인생이 주변부 일지는 몰라도,  인생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하나의 주인공이니까.

그리고 그런 ‘나’라는 주인공의 일생을 끝까지 지켜볼 유일한 시청자 역시  하나뿐이니까.

애틋한 애정으로 다짐해본다. 특별하지 않은 인생이라면 특별한 사랑으로 지켜내고, 지켜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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