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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May 14. 2023

여전히 까칠한 김대표입니다만


김 대표는 스스로 우아하다. 물론 말로만이다. 시도때도 없이 우아함을 고집하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우아해질 가망이 없어 보인다. 

         


사실, 소싯적에는 더없이 우아했다고 김대표는 설파한다. 내성적인 성격에, 앞에 나서지 못하는 소심함에, 어쩌다 인사말이라도 할라치면 목까지 빨개지는 수줍음에. 그러니 늘 뒤에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것이 극치에 이르러 우아함에 도달했다고. 그런데 아무도 믿지 않은 게 문제였다. 

아니다 싶은 일에는 목소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잘못된 서류에는 붉은색 팬이 피바다를 이루고, 종사자 교육에는 열변을 토하고, 약속을 어길 때는 그야말로 얄짤 없고. 침묵이 금인 시대는 지났다고 표현이 금인 세상이라며, 뒤로 빼는 사람에게는 자비심이라고 일원 반 푼어치도 아깝다는 김 대표가 어딜 봐서 우아하다고 하겠는가. 우와~~ 놀랠 밖에.


어쩌다 사람이 이렇게 베(버)렸을까. 이 바닥에서 살려고 보니 그리됐다고 두리 뭉실 변명하지만 결코 녹록지 않은 지난날이었다.  예를 들자면 업무상 통화를 할 때도 목소리가 떨렸다. 특히, 관공서와의 통화는 더욱 심했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수직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지레 겁을 먹어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인가. 구청 직원과 통화를 하다 목소리가 트이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터져버렸는데 당장 사과하러 오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수화기가 부서져라 쾅, 놓고 말았다. 목청을 고도로 올려붙였던 까칠함이 도대체 어디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일까.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자신도 모르게 폭발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때부터이다. 김대표의 까칠함이 대물림된 것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관공서와 통화를 하는 직원들에게 당당하게 일하라고 1년도 안되어 바뀌는 그들보다 우리가 훨씬 유능한 전문가라고 설파한다. 기죽을 것 하나도 없다고!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터인가 수화기 놓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대고 '그래서 수화기 부서지겠냐' 며 한마디로 지원사격한다. 대물림은 비교적 성공이어서  요즘 직원들이 구사하는 까칠함은 한 수 위다. 당당하고 조용하고 담담하며 심지어 친절하기까지 하다. 하~ 움직이는 까칠함이라니.  



가끔 공무원을 그만두었다는 글을 본다. 혹, 김대표 같은 사람들 때문인가 후회반, 미안함 반,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이란 직종도 녹록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지만 김 대표의 까칠함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럼에도 우아함을 강조하는 김 대표를 보며 은밀하게 웃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 성질이 베(버)린거라고. 그러니 산재처리를 해줘야 한다고.  


그래서 그 공무원은 사과하러 왔느냐고? 그쪽에서 반쯤 오고 김대표도 반쯤 가서 중간에서 공평하게 만났다. 껄적지근한 사과가 오갔다. 그리고 그날 이후 구청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김 대표가 쌈닭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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