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가면 다시 한번 관음사에 가야지 했던 다짐을 오늘에야 지키게 되었단다. 사실,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 사소함에서 시작되거나 혹은 스쳐 지나다가 문득 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니?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결심은 아이러니하게도 관음사가 아닌 그 입구 아미헌이란 카페 겸 식당 때문이었단다. 몇 년 전인지도 가물가물하니 아주 오래전 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때 정성스럽게 차려낸 사찰음식 한 상(한 상이라야 정갈한 찬 3가지 정도에 밥과 국이 전부였단다)을 먹고 커피 한 잔을 시켜 창밖을 바라보는데 비가 내리더라. 빗금처럼 기운 빗줄기를 보며 내 인생처럼 기울었구나 생각했던 것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축축하고 어지러운 마음에 휘몰아치는 비바람이 되레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 커피의 온도로 몸이 따듯해졌던 것도 같고. 날씨도 마음도 훤한 날 다시 한번 오고 싶단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나는 제주의 수많은 관광지를 두고 왜 그곳에 갔던 것일까. 그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사람도 없고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잘 알려지지 않은 그곳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은 일만은 확실한 것 같아. 그 이후로 낯선 곳을 찾아 다녔단다. 낯선 곳이야 말로 스스로에게 더 기대게 되고 그만큼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으며, 들여다 보는 만큼 괜찮아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다행히 오늘은 연한 비가 보슬보슬 날리더니 이내 멈추고 산허리를 두른 띠구름도 흩어진 후라 사부작사부작 톺아보기 좋았단다. 입구에서부터 경내까지 쭉 뻗은 길 양 옆으로는 제주 기념물로 지정된 왕벚꽃 나무들이 온통 푸르렀어. 꽃을 피우고 지우고 한 후에라야만 비로소 푸를 수 있는 여유랄까. 전체적인 규모에 비해 그 크기가 옆 건물들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한 대웅전을 나 역시 조용히 들여다보았단다. 미륵대불 전 너른 뜰을 지나 나한전으로 오르는 길은 저 혼자 한적하더라. 150여 미터의 길을 올랐을 뿐인데 방금 지나온 경내와 달리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었어. 풍경도 없이, 소리도 없이 산 풍경과 어우러진 나한전 기둥에 몸을 기댔단다. 눈을 감아 나도 풍경이 될 때 그때서야 바람도 나를 스치고 흔들며 자연 한 점으로 품어준다는 걸 왜 매번 망각하는지... 그렇게 한동안 있은 다음에야 쉼이 깊숙이 잦아든다는 것도 잊었더라. 그 힘으로 살아왔고 또다시 살아가면서 말이야.
저 멀리 온통 빽빽한 제주시내 앞바다엔 나가는지 들어오는지 배가 한 척 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기서, 저들은 저기서 각각의 모양대로 시간을 지나고 있는 현상들이 뜬금없이 귀해졌던 이유는 뭐였을까.
저 멀리, 하늘, 바다, 시내, 산
나무계단을 타고 다시 내려오는 길, 땅에 떨어진 꽃잎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단다. 가까이 가보니 초등학교 4, 5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꽃잎 하트를 짓고 있었는데 스마트폰이나 게임기가 아닌 꽃잎을 쥔 손이라니. 어쩐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부디 그 꽃잎 같은 손으로 꽃 같은 것들을 만지고 지으면서 살길 바랐단다.
나한전을 뒤로하고, 꽃을 짓는
더 말끔해진 아미헌에서 키오스크로 채소국수를 주문했어. 툭툭 손가락 터치로 하는 키오스크 주문이 영 적응이 안 되었지만 담백한 국수 맛에 불편한 키오스크쯤이야 금세 까먹고 말았지. 바람도 없고 비도 내리지 않았고 내 인생도 오늘은 뽀드득했단다.
‘삶의 목표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되는 것보다 어제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달라이라마의 글을 마음에 새기기도 했으니. 굳이 다시 와야겠다는 결심 같은 건 하지 않았어.
제주 4·3 당시 무장대 도당 사령부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는 관음사, 조선 숙종 1702년 억불정책으로 제주의 모든 사찰들과 폐사된 이후 200년간 제주에는 사찰이 존재하지 않았대. 관음사를 복원하고 제주 불교를 재건한 해월당 스님이 한 일 중 하나가 여성의 사회참여 지원이었다고 해. 왠지 종교가 든든해지지 않니. 세상 속에 있는 종교가 세상 사람을 보듬은 단순한 사실이 무엇보다 따듯해지더라. 좋은 것들이 빛나는 순간을 목격한 오늘이었어.